[Opinion] 안녕, 낯선 그대 [사람]

당신을 도려내고 굿바이를 외치다
글 입력 2019.05.2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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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나는 오랜 관계 하나를 잃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그 관계를 놓았다. 워낙 초반부터 친해진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한번 든 생각은 고개를 거두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빳빳이 쳐들었다. 그렇게 평생 갈 줄만 알았던 돈독한 우정은 그것이 구축되느라 들인 시간과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고, 난 그것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호기로운 사람이었다. 사람을 똑바로 응시하는 눈과 대범함, 너털웃음을 지으며 너스레를 떨 줄도 아는 그는 소위 ‘쾌남’이라고 불릴 만했다. 더군다나 대학 입학 직후 만난 첫 번째 선배이다 보니, 내가 그렸던 대학 생활을 척척 해내는 그에게 약간의 존경까지 느꼈던 것 같다. 그가 실제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임을 확실히 알기까지 난 그 모습을 진실로만 여겼다.

알게 된 지 1년여가 지나고, 그의 말이나 행동으로부터 가끔 ‘응?’이라는 의문을 일으키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순간을 몇 번 겪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심스러운 조각들이 충분히 쌓여 이 사람을 놓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뿐,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애초에 그 사람이 세상에 보인 모습은 진짜 그 사람이라기보다, 그가 세상에 보이고 싶은 상(相)이었으니까. 내가 믿고 열심히 가꾼 그 관계도 결국은 거짓 위에 세워진 것이었기에 끝은 정해져 있었다.

그 끝이 지금이 된 이유는 나에 대해 생각할 절대적인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감과 동시에 주변을 바라볼 여유라는 것이 생겼다. 그렇게 차마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못 본 체하던 의심의 단서들을 제대로 짚고 목격하며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저 일상에 허우적대며 쫓기기만 해선 안될 이유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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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충격적이었다. 억울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관계를 떠나보낸 경우는 없었기에 뒤통수를 맞은 듯 얼떨떨했다. 나는 적어도 이렇게까지 친해진 관계에 있어, 느끼고 생각하는 그대로 표현하는 법에 익숙해서, 상대방도 그럴 거라고 속단했다. 내 가까이에서 지속시키고픈 관계라면 응당 들이는 그 모든 비용 또한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껏 무엇을 위해 이 관계를 정성껏 보듬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갈 길 잃은 내 노력에 상실감이 상당했다.

그간의 정으로 관계를 이어갈까 생각도 했다. 또, 표면적으로 너무나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내 결정이 내릴 파장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렇게까지 가까워진 관계를 청산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감정적 소모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언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폭력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적당히 유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진작 알았더라면 나는 애초에 친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나’라는 사람을 더 많이 알고 이해하는 것,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표현할 줄 아는 것임을 고려했을 때, 그것에 전면적으로 반하는 그의 존재를 차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거짓 없이 투명하게 자신을 인정하고 경험하며 단단히 내면을 잡는 것을 원하는 내게, 가장 친한 사람에게조차, 심지어 자신에게까지 거짓된 태도를 유지하는 그는 적어도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인식 여부를 떠나 해당 내용을 결코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임을 알기에 나는 그를 그저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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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름대로 길었던 인연 하나에 이례적인 안녕을 고하며 사람과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 요즘이다. 내게 닥친 변화가 예상치 못하고 불편한 것일 때면 일정 부분 괴로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나 답은 같다. 불편하게 만드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돌아갈 수도 없다. 성장통을 안고 나는 더 자라고 싶다. 많이 아프겠지만 더 나은 나와 내가 바라보는 것을 위해서 기꺼이 감수하며 불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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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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