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리, 조세핀, 그리고 니키타 [영화]

영화 <니키타>
글 입력 2019.05.2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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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희생정신이 아닌 힘과 욕망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 지 꽤 되었다. 총, 칼을 들고 무법지대를 활보한다거나, 악의 세력의 주축이거나 하는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역할에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런 캐릭터가 단지 기능적으로 소비되고 허무하거나 끔찍하게 죽임을 당할 때, 총 칼로 분투하면서도 상황과 관련 없이 하이힐과 꽉 끼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을 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짙은 화장을 했을 때 그것은 기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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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을 가진 킬러 니키타에 대한 영화 <니키타>는 영화 <레옹>으로 유명한 뤽 베송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영화 초반, 니키타는 다소 오합지졸처럼 보이는 무장강도 일당과 함께하고 있었고, 그들의 요란한 강도짓을 진압하려온 경찰들 중 한명을 죽인 뒤 체포된다. 실제 그녀는 자기 일행들이 강도질을 하고 있을 때 헤드셋을 끼고 탁자 아래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상황이 제압된 뒤, 모든 것이 끝났으니 이제 괜찮다고 그녀와 눈을 맞추며 말하는 경찰에게 그녀는 총을 겨눈다. 말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그녀는 그 누구도 자신의 세계에 관여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체포된 뒤에도, 그녀는 이름을 묻는 형사를 향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며 형사의 손을 연필로 찍으면서 ‘내 이름은 니키타야!’라고 외친다. 모두의 기억에 각인될 만큼 강렬한 목소리로 '니키타'를 외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이름은 곧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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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형을 선고받고, 난동을 피우는 그녀는 마치 사형을 집행당하는 듯하였지만, 그녀가 눈을 뜬 곳은 새하얀 방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이전까지의 자신을 버리고 킬러로 성장할 것을 요구받는다. 처음 그녀는 거부하며 탈출을 감행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자살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사형 집행과 흡사한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그녀는 간절하게 살기를 바라고, 또 자신의 엄마를 기다리지만, 살아남았음에도 과거의 자신을 버려야 함을 알았을 때는 스스로 죽음을 시도한다.


그녀가 그곳에서 계속해서 머무는 7번 방은 그녀의 심리상태를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아무것도 없던 하얀 방은 처음에는 그녀의 반항적인 낙서들로 채워지다가, 마음을 다잡고 비밀 요원이 되기 위한 훈련에 충실히 임하면서 점차 안락한 가구들로 정말 집처럼 꾸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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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타가 그곳에 적응하고 집처럼 여긴다고 하여도 그곳은 여전히 억압의 공간이다. 니키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여자다움을 접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처음 남들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 웃는 법을 배우고, 화장을 배우고, 브레지어를 착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여자다움과 여자다움을 이용하는 것이 여성의 특권이라는 가르침은 여자다움이 얼마나 여성을 무해한 약자로 보이게 하는지 역설한다. 니키타는 그렇게 바깥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임무 수행을 위한 킬러로 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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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세 개의 이름이 있다. 스스로 자신의 이름이라고 외쳤던 ‘니키타’와, 훈련이 끝나고 세상에 나가 새롭게 얻은 위장 신분인 ‘마리’, 그리고 임무를 수행할 때 이용하는 암호명인 ‘조세핀’이다. 마리의 이름을 가진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마르코를 만나 행복하게 웃는다. 그녀가 마리로서 그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던 것은 웃는 법을 배워서가 아닌 사랑을 주고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비밀요원이라는 신분 탓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과거를 말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마르코 외에 사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녀는 자신의 거짓된 정체성에 가끔은 불안해하고 또 가끔은 과민한 모습을 보인다.


조세핀이라는 이름이 불릴 때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서 웃음을 지운다. 킬러로 키워 졌으나 그녀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공을 들인 임무에 애착을 가지기도 하고 눈앞에서 끔찍한 살인을 목격하였을 때 괴로워하며 울기도 하며 감정적으로 호소하기도 한다. 조세핀인 그녀가 임무에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마르코는 그녀를 위로하며 사실 그가 그녀가 비밀 요원임을 알고 있었다고 밝힌다. 그녀는 계속해서 불안해했으나 마크로는 말 그대로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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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의 안전을 위해 니키타는 결국 마르코를 떠난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쪽지를 마크로는 찢어서 버렸다고 이야기할 뿐 내용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막연하게 그 쪽지에 쓰인 문장이 그녀의 진짜 이름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니키타’를 외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던 그녀가 마지막에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 준 사람에게 남기는 말은 진짜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제목이 마리도 조세핀도 아닌 니키타이듯, 그녀는 언제나 니키타였으니까.



[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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