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취는, 빈집살이 (2) [사람]

방 빌려 사는 어느 20대의 집 이야기
글 입력 2019.05.20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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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맞이



나는 나눔을 기만했다. 예술을 탐낼 때도, 소(小)들이 서로 융합하여 대(大)로 진화하는 일련의 공정을 나는 정복하지 못했다.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얼기설기 엮어놓은 식재료들은 결코 하나의 완제품이 되지 못했다. 찌개에 둥둥 떠다니는 감자와 당근 조각들은 어망에 달려 숨을 잃어가는 물고기들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방에 손님을 들일 때, 그가 완벽히 지어놓은 완제품 음식들을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혹은 적어도 그가 다음 세대에 전수한 젖줄같은 레시피들을 훔쳐야 했다. 그의 지붕에서 벗어나려 들인 노력은 당장의 필요에 헛수고로 돌아갔다. 아직껏 나의 구강엔 다 떼지 못한 유치가 남아있고, 후각은 수십 년 전 내 입가를 닦았던 가제 수건의 상아빛 냄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손을 빌리지 않겠다 다짐했던 것은 애초부터 게으른 마음이었다.


그래, 내가 여태 나눠온 것은 나의 흠결투성이 마음이 아닌, 당장 손에 잡히는 그의 오롯한 음식들이었던 것이다. 식혜도, 김 부각도, 김치도, 과일도 그의 손에서 온 것이라면 모두 고른 맛을 자랑했다. 이 햇살같은 맛에 비하면 나의 진심은 너무나도 작았다. 나는 그저 20년의 세월을 ‘부채감’이나 ‘죄책감’과 같은 몇 마디 말에 우악스레 쑤셔넣어, 터질 듯한 부끄러움의 실제를 외면하려 했던 것이다. 관계의 본모습을 가리는 나의 투박한 말들은 요행히 약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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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는 내 방을 찾아준 (기상천외한) 손님들을 대접하면서 또 한 번 그의 정성에 빚을 지고 말았다. 그의 음식은 따로 된 세간, 콩알만한 개미집 살림살이를 윤색해 준 단 하나의 색연필이었다. 그는 나에게 줄 반찬들에 기꺼이 온기라는 웃돈을 얹어주었다.


나는 그저 그의 온기와 걱정, 연민을 되파는 안일한 소매상에 불과했다. 그의 음식 덕분에 나는 한동안 옴츠라들어 있었던 가슴팍을 펴고, 내리받은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좋은 이웃’이 되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감각으로부터 '나의 나됨'에 대한 증거를 채집할 수 있었다. 참으로 이기적인 행운이었다. 어쭙잖게도 나는 이 죄송스러운 특권을 나의 정당한 행복이라 착각했었다.


그들이 찌개 하나에서 맛본 수많은 향료와 기름 방울, 양념 덩어리들은 하나의 복잡계를 이루었고, 그들의 뇌리엔 곧 날카로운 깨달음이 스쳤다. 사람들은 이제 그의 음식으로 나의 색깔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까다로운 입맛을 스스로 납득하는 사람도, 내가 좋아할 다른 음식들을 알아맞히는 사람도 있었다.


그의 음식을 맛본 손님들이 눈을 동그랗게 치켜뜬 순간, 그때가 바로 내 유년기에 그들이 초대된 순간이었다. 음식은 한순간, 내 짧은 생의 역사를 그들에게 이식해 주었다. 그리고 낯선 이의 삶에 접속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원형에 가까운 기억의 공유와 감각의 연대는 그 어떤 언어보다도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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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란 음식과 내 지나온 삶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 또 음식을 통해 나의 정서를 타인에게 허락할 수 있다는 것. 쏜살같이 달려드는 기억의 폭풍은 알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선명해진 유년기의 감각으로 나는 더욱 견고한 아이가 되었다.


18년 전 여름 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간 더운 액체는 20년 후 그 주인을 다시 끈끈하게 붙잡았다. 10년 후에도 나는 같은 초석 위에 서서 이토록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편안한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에게 당신은 여전히 크다.




엄마와 낭만



생각해보니 나의 언어는 그와 많이 닮았다. 내가 좋아하는 말들에는 그의 정서가 움푹 묻어있다. 그는 종종 언어로 즐거움을 추구하곤 했다. 그런 그의 습관은 곧장 나에게로 옮겨왔고, 그가 사용하는 호기로운 어투와 단어들은 나에게 꽤나 특별하게 기억되었다. 요컨대 나는 그와, 한 말무리에 속한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그와 나 사이 언어의 간극을 발견한 후에도. 그의 언어에 대한 나의 애착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장'이란 집에서 세상으로, 시선의 방향을 돌리는 일임을 잘 알았기에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전혀 다른 세계로 그와 이별하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의 언어를 아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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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언어는 유쾌했다. 그의 말들은 비유적이면서도 적확했고, 그 안에서 ‘해학'과 ‘무게’라는 두 맞수가 함께 요동치며 선장의 자리를 다퉜다. 무엇보다 그의 말들은 폭풍우를 몰고 왔다. 그의 생생한 이야기들은 투쟁의 힘겨움을 전달했다. 그는 삶의 현장에 비가 쏟아지는 광경을 묘사했다. 그가 운을 뗄 떼면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폭풍전야의 공포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고요 속에서 불안에 떠는 항해자가 되어 보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단어 한 개는 곧 끝없는 바다와 같았다. 나는 이 검은 바닷물을 들이키며 부족함을 채우고, 또 숨을 몰아쉬며 새로운 상상의 공간을 열었다. 그의 입은, 수필 몇 장을 즉시 몰고 오는 지친 타자기 같았다.


또 그의 말들은 그 어떤 것보다도 나를 잘 표현했다. 나는 이따금씩 그가 가르쳐 준 ‘천둥벌거숭이’나 ‘잠수함의 토끼’ 같은 말들로 나를 설명해 보곤 했다. 또 ‘폭력’이나 ‘아집’과 같은 말들에게 세상의 이치를 물어 보기도 했다. 사전에도 없는, ‘느리작거리다’ 등의 몇몇 낱말들도 그의 호쾌한 말씨와 함께 나의 일부가 되었다.


언어와 함께 나의 몸도 그를 닮아갔다. 자극에 반응해 움찔거리는 근육의 움직임도, 특정 단어를 발음할 때 짓는 찡그린 표정도 완벽하게 그를 따라한 것이었다. 근육의 미묘한 떨림은, 직교하는 실들이 서로를 잡아당기는 마리오네트 인형을 연상케 했다. 무정한 이 인형은 조금씩 그를 뒤쫓아갔다.



3편에서 계속.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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