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내일도 고도를 기다릴 수 있을까? -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 리뷰
글 입력 2019.05.1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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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그만 가자.”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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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명동예술극장의 넓은 무대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는 S자 모양으로 휘어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앙상한 나무다.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의도한 나무가 푸르른 잎이 울창한 나무인지, 단단하고 곧게 뻗은 소나무인지, 혹은 마지막 잎새처럼 생명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고목(古木)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초연(初演) 후 50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 연출가 임영웅의 눈으로 바라본 <고도를 기다리며>의 ‘황량한 시골길, 나무 한 그루’는 부드럽게 휘어졌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왜소한 이미지였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의 이미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체형, 옷차림, 말투, 걸음걸이 하나하나 모두 듬직하고 커다란 느낌보다는 그 반대에 가깝다. 극장의 큰 무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조합. 하지만 단 한순간도 무대가 비어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고도를 기다리는, (인터미션 포함) 18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언어, 몸짓, 대사가 넓은 공간을 끊임없이 채운다. 그 시간은 반복되는 듯 반복되지 않고, 지루한 듯 지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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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의 1막과 2막은 거의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디디와 고고가 고도를 기다리며 실없는 농담과 놀이를 하고, 포조와 럭키가 등장하여 빈 시간을 채우며, 소년이 등장하여 고도가 오지 못함을 알린다.


이처럼 똑같은 구조가 반복되지만 반복되지 않는 이유는 디디와 고고는 그것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고,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내일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또 고도를 기다릴 것이다. 지루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그들만의 놀이를 행하면서.

 

그들의 ‘놀이’는 작위적이다. “또 무엇으로 시간을 보낼까?”라는 대사에서 확연히 드러나듯이, 그들의 행동은 의도적이며 말은 흩어진다. 그들은 놀이를 통해 시간을 죽이며 고도를 기다린다. 그 수단은 몸과 말이지만, 몸과 말로 표현되는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채 소멸되고 만다. 하지만 디디와 고고는 힘겨운 몸짓과 의미 없는 말장난을 통해 긴 시간을 견뎌내며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어차피 내일이면 기억하지 못할 텐데.

 

정말,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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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이 끝난 후, 2막이 시작될 때 관객들은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나뭇잎 하나 없던 앙상한 나무에 푸른 이파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흘러간 시간이 정확히 다음 날인지, 겨울 이후 봄이 온 것인지는 디디와 고고처럼 알 수 없다. 그래도 어쩌면 희망을 품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봄의 상징처럼 오늘은 고도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지만, 소년은 또 등장하여 똑같은 말을 한다. “고도씨는 오늘은 오지 못한댔어요.”라고.

 

고도를 기다리는 고달픈 시간 속, 절망한 고고는 나무를 바라보며 말한다. “목이라도 맬까?” 하지만 그들을 받아주기에 나무는 턱없이 약해 보인다. ‘목이라도 맬까’라는 말이 죽음을 의미한다면,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쉽게 죽을 수 없는 만큼 죽어서도 만나기 힘든 존재일까. 고도가 누구길래,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 고도라는 존재는 왜 오지 않는 건가.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고도를 기다리는 일은 갈수록 힘겨워진다. 기약도 없는 기다림, 버틸 힘이 없다. 그럼에도 기다린다. 이대로 괜찮을까? 오늘도 소년이 “고도씨는 오늘은 오지 못한댔어요.”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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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고도가 누구냐는 질문에 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답했다. 내가 그걸 알았다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작가 본인조차 알 수 없는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는 할 수 있는 일이 ‘기다림’뿐이기에 그럴까, 아니면 ‘기다림’이라는 소극적인 반항밖에 배우지 못해서일까. 답이 무엇이든 모순적인 행위임은 분명하다.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은. 세상과 인간 존재처럼.

 

디디와 고고는 오늘을 기억하지 못한 채, 내일도 고도를 기다릴 것이다.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라고 말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기간: 2019.5.9.(목) ~ 6.2.(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공연시간: 평일 7:30PM, 주말 3PM (화 쉼)

⋅관람등급: 14세(중학생) 이상 관람가

⋅소요시간: 180분 예정(15분 휴식 포함)

⋅입장권: R석 5만원/S석 3만 5천원/A석 2만원


 

고도를 기다리며

배우 출연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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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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