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회전문을 도는 이유 -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5.11 00:2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개인적으로 하나의 공연을 두 번 이상 관람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미 모든 스토리를 알고 극을 보면 몰입이 덜 되기도 하고, 처음 봤을 때만큼의 감흥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자발적으로 세 번이나 본 뮤지컬이 있다. 바로 2019년 상반기 화제의 중심인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의 인생 첫 회전문을 돌게 되었는데, 극을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131.jpg
 

지킬앤하이드를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다 떠나서 홍광호라는 배우의 연기와 노래를 본다는 것 하나로 볼 이유가 충분하다'였다. 감미롭고 고뇌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정의로운 지킬은 물론, 거칠고 무자비하고 분노와 욕망으로 가득 찬 하이드를 너무도 완벽하게 표현한다.

연기의 절정은 단연 Confrontation이다. 사실 두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초 단위로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며 서로 대화하듯이 연기와 노래를 하는데, 표정이나 동작뿐만 아니라 발성과 목소리도 바뀐다. 진짜 성대를 갈아 끼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른쪽은 지킬 왼쪽은 하이드로, 손과 팔 모양, 표정 자세 등 정말 온몸으로 지킬과 하이드를 표현한다.

물론 원래 홍광호 배우의 팬이었지만, 팬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의 노래와 연기는 완벽에 가까웠다. 홍광호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은 열정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나는 그것에 압도되어 그 외의 것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관극을 한 후 며칠 동안 지킬앤하이드의 넘버가 귀에 맴돌았다. 단 한 번의 관극 만으로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에 사로잡혀버린 것이다.


[꾸미기]KakaoTalk_20190510_191056059.jpg
 

<지킬앤하이드>를 처음 관극했을 때, 너무 홍광호라는 배우에 압도되어 그 외의 것들은 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조금 일찍 찾아올 홍광호 배우의 마지막 공연 소식을 들었다. 첫 관극의 아쉬움도 해소하고, 애정 하는 배우의 마지막 공연에 함께하고 싶어서 두 번째 관극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관극 때에는 배우 외에도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지킬과 하이드에 가려져 집중하지 못했던 여성 캐릭터들의 설정이 눈에 들어왔다. <지킬앤하이드>의 두 명의 여성 주인공은 지극히 수동적이고 주변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엄연히 극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지킬과 하이드를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써만 활용된다. 또한 이들은 극이 진행되는 내내 '지킬을 믿고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여인', '하이드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여인' 등과 같이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여성의 모습만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여성 배우들이 그들의 매력을 제대로 뽐낼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것은 꽤나 아쉬웠다.

다음으로 극을 보는 동안 관람연령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지킬앤하이드>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극이다. 미성년자가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술집에서 여성 접대부들이 쇼를 하는 등 선정적인 장면이 몇 번 등장한다. 또한 하이드가 폭력을 휘두르고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Dangerous Game 장면은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몸을 쓸고 옷을 들추며 진행된다. 극의 많은 장면이 어린 관객들이 보기에는 부적절하지만, 극은 만 7세 이상 관람가다.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성 캐릭터의 설정, 부적절한 관람연령과 구식의 스토리 전개 및 연출 등 여러 문제점을 느끼긴 했지만, 두 번째 관극 역시 나에게 황홀한 감흥을 주긴 했다. 한 배우의 마지막 공연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배우들의 감정이 끓어넘치고 있었다. 극의 중간중간 배우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 보였고, 루시 역의 윤공주 배우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 부르기도 했다. 물론 배우들이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노래와 연기는 흔들림 없었다. 그들의 감정에 나도 동화된 듯 울컥하면서 두 번째 관극을 마쳤다.


[꾸미기]KakaoTalk_20190510_191056526.jpg
 

두 번째 관극까지 마친 후, 극을 충분히 즐기기도 했고 극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기 때문에 더 이상은 관극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한국의 <지킬앤하이드>를 대표하는 조승우 배우의 연기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조승우 배우가 연기하는 지킬과 하이드, 이른바 조지킬은 한 번은 봐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세번째 관극을 하게 되었다.

조승우 배우의 연기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연기였다. 짱짱한 발성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극의 몰입도를 높였고, 극이 너무 무거워지려 하면 깨알 같은 유머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조지킬'이 가지는 명성의 이유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많은 관객들이 왜 같은 극을 여러 번 관람하는지 깨닫기도 했다. 각각의 배우마다, 또 매회의 공연마다 바뀌는 디테일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한 그날 그날 다른 극의 분위기와 웃음 포인트, 감동 포인트를 느끼는 것도 즐거웠다.


[꾸미기]KakaoTalk_20190510_191056558.jpg


<지킬앤하이드>가 가히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 뮤지컬이라 칭송받는 이유는 명확했다. 완벽한 배우들, 그들은 감동을 넘어서는 감흥을 준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이 과연 대한민국 최고라는 명성에 걸맞은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킬앤하이드>는 변화가 필요하다. 다음에 돌아올 때에는 구시대적인 옷을 벗어던지고 현대 사회에 걸맞은 뮤지컬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봄.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