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성의 삶을 긍정하다 - 연극 "환희, 물집, 화상"

글 입력 2019.05.10 10: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환희물집화상_공연사진(c극단8월_김희지)57.jpg
 
 

연극을 다 보고 나왔을 때 같이 본 친구와 한시간 내내 연극 얘기만 했다. 대화를 이끌어내는 연극은 늘 좋다. 모든 장면 하나하나에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생각을 자극하는 내용이 참 많았던 것. 하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내용은 아니다.


페미니즘을 삶을 통해 체화해가는 사람들이 겪는 것들을 다루는데, 결코 희망차기만 하거나 혹은 불행하기만 하거나 극단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일주일 사이에 남편이 바뀌는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지만 분명 공연을 본 친구와 나는 두 여인 모두 진심으로 이해를 하고 있었다.


저명한 교수로 활동하며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캐서린. 고향에서 전업주부로 지내온 캐서린의 친구 그웬. 그웬의 베이비시터이자 개성적인 젊은이 에이버리. 고향에 내려온 캐서린은 그웬과 에이버리를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페미니즘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포르노그래피를 긍정하며 진보적인 사상을 따르는 에이버리와 주부로 가정을 지키는 여성의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그웬은 서로 대립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웬의 남편 던과 캐서린은 묘한 관계에 빠진다. 대학생 시절 연인 관계였던 그 둘은 캐서린이 도시로 떠나면서 관계의 종료를 맺고, 던과 그웬이 결혼을 하게 됐던 것이었다. 시골 학교에서 나태한 삶을 살아가던 던은 캐서린에게 말한다. 너를 만나고 나니 내 삶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고, 영감과 열정을 준다고. 캐서린은 못이기는 척 그를 만나 불륜을 저지른다. 캐서린과 그웬이 사실 서로의 삶을 부러워하고 있었기에 상황은 더욱 극단적으로 바뀐다.


아무리 잘나가는 교수였던 캐서린도 안정적인 삶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캐서린은 그웬의 자리에서 던과 살아가고, 그웬은 자식과 함께 도시로 떠나 못다한 대학 과정을 밟는다.



환희물집화상_공연사진(c극단8월_김희지)87.jpg


이 연극에는 정말 다양한 세대의 여인들이 나온다. 급진적인 사고를 가진 젊은층, 가정을 이루거나 혹은 커리어를 쌓아가는 청장년층, 그리고 결혼 생활도 일도 정리하고 홀로 살아가는 노년층. 그래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각자 자라온 삶의 배경이 달랐기에 각자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자라난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보수적으로 혹은 너무 진보적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이들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가 가진 사상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대립이 아닌 조화를 이끄는 것이다. 연극은 어느 한 사상만 인정하거나 어느 한 사람의 가치만 존중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전업주부로 살아가며 안정적인 삶을 이루거나 혹은 커리어에 집중해 꿈을 이루는 것,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일 뿐이다.


특히 극중 각 여성이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삶의 태도를 더욱 확고히 하는 데엔 각자의 자리를 바꾸어 본 경험이 큰 한몫을 한다.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버린 캐서린은 앞뒤 재지 않고 던과 애정을 나누며 그동안 몰랐던 색다른 삶에 심취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던은 그녀의 곁에 있는걸 부담스러워하며 떠나가고, 도시에서 공부를 하던 그웬 역시 어려움을 토로하며 다시 돌아온다. 소위 백래시라고 일컫는 상황들이 벌어지지만, 캐서린 역시 다시 제 자리를 찾는다. 서로 갖지 못한 삶을 부러워하기만 했지만 막상 겪어본 당사자들의 삶은 상상과 조금 달랐다. 다만 그웬의 얘기를 통해 커리어가 끊기면 다시 이어가긴 힘들다는 내용을 보여주며 극이 마무리된다.


극 중간중간 페미니즘의 이론적 내용이 부각되며 인물 간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꽤 나오는데, 이러한 깊은 내용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유쾌한 캐릭터와 콩깍지에 씌인 연애에 대한 희극적인 묘사가 크게 역할 했다. 에이버리는 정말 극의 모든 감칠맛을 내는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여인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매력을 표출하는 그녀는 누구보다 연애에 당당했지만 또 누구보다 상처입은 모습으로 자신을 잃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다시 일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입체적인 캐릭터의 정점을 찍는다.


낯익은 배우님이라 긴가민가했는데 연극 <그 개>에서 연기하셨던 주연 배우님이셨다. 또렷한 발성과 재치있는 표현, 또 캐릭터 특유의 괄괄하고 터프한 입담까지 연극 시작과 끝까지 웃음을 참을수 없게 만들었다.


여성의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 연극 <환희, 물집, 화상>. 이 매력적인 연극이 앞으로도 쭉, 꾸준히 무대에 오를 수 있기를 바란다!



[신은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