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슬기로운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TV/드라마]

글 입력 2019.05.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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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나는 드라마를 잘 안 보는 사람이 되었다. 몇 달 전 <SKY 캐슬>이 온 대한민국을 휩쓸었을 때에도 나는 보고 싶지 않았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클립 영상들을 제외하고는 끝까지 보지 않았다. 내가 이토록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드라마 속의 갈등이 싫었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몇 달간 방영하며, 극중 크고 작은 갈등들을 심화시킨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많은 시간 동안 물도 없이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나의 현실에서의 일들 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굳이 TV를 보면서까지 갈등을 느끼고 힘들어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TV는 가벼운 예능 위주로 보며 살았다.

 

그러나 얼마 전, 드라마 없는 삶을 살던 나에게 한 드라마가 찾아왔다.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tvN에서 방영한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그 주인공이다.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것을 찾다가 발견했는데, 방영 당시에 많은 주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마침 하던 일은 그만뒀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던 시기였다. 그래서 딱히 할 일도 없었고, 현실에서 힘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이럴 때 드라마도 한번 봐 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3일이 채 안 되어서, 마지막 화까지 다 보고 드라마의 여운에 젖어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드라마를 싫어하던 나를 이토록 사로잡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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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 메인 포스터



1. 대학로 스타들을 TV에서 만나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는 많은 대학로 스타들이 출연한다. 주인공인 김제혁 선수(박해수)부터, 그와 수감생활을 함께하는 한양(이규형), 법자(김성철),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 그리고 유대위의 형(정문성)까지 대학로 스타들이 연기한다.


드라마보다 뮤지컬과 연극과 더 친한 나에게는 정말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공연계에서는 유명한 배우들이지만 TV에서는 자주 만나지 못한 배우들이었는데, 이 드라마를 계기로 방송계에서도 유명해져서 내가 다 뿌듯하기도 했다. 연기력은 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했고, 드라마에서 자주 본 얼굴이 아니다 보니 신선함도 있었다. 또한 정웅인이나 성동일 등의 방송계 베테랑 배우들과의 만남도 좋은 시너지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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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 인물별 포스터




2. 주연 조연의 벽을 허물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주인공은 김제혁 선수가 분명하다. 드라마는 그가 재판을 받고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생활을 하며 벌어지는 일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따로 있음에도, 모든 조연들이 매우 큰 역할을 하며, 때로는 주인공보다도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드라마는 모든 조연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풀어가며 극의 내용을 풍부히 한다. 허투루 나오는 인물이 없다. 그냥 스쳐가는 인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모두 사건 하나하나에 연관되어 있다.


주인공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은 극의 전개로 인해 드라마가 루즈해질 틈이 없다. 시청자는 매 순간, 모든 인물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고 그래서 극에 더 몰입하게 된다. 내 주위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시청자가 한양이나 문래동 카이스트 등 조연을 일명 ‘최애’ 캐릭터로 꼽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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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 2상6방 단체 사진



3. 감빵도 사람 사는 곳, 하지만 미화는 없다



구치소나 교도소가 우리에게 익숙한 곳은 아니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면, 대부분의 내용이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감빵도 사람 사는 곳이다. 수용자들의 인간적인 모습도 자주 나오고, 그들의 생활 역시 우리의 생활과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다.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이질감보다 익숙함을 더 많이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와 범죄자에 대한 미화는 없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사연에 몰입해서 보다 보니, 그들이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미화시키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드라마는 이들은 범죄자라고 선을 그었다. 항상 웃으며 세상 착해 보이는 소지가 더러운 꿍꿍이를 숨기고 있다거나, 장발장이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따르던 장기수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등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선 긋기가 나와서 좋았다.


범죄 미화가 없어서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한양이의 결말은 매우 놀라웠고 한동안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교도소에서 약을 끊으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기도 했고, 그의 의지도 강해 보였다. 하지만 출소하자마자 자신의 팔에 주사를 꽂아버린 그의 모습이 너무도 충격적이고 안타까웠다. 가족과 엇갈린 채 다시 경찰차를 타고 가는 한양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마도 경찰의 수사 방식이 꽤나 비열했기 때문에 더 속상했던 것 같다. 강인해 보였던 의지도 마약 앞에서 처참히 무너지는 모습이 참 씁쓸하게 다가왔고, 그 씁쓸함은 다른 이들의 해피엔딩으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


배우가 좋아서, 몰입도가 좋아서, 내용과 그 연출이 좋아서 멈추지 못하고 3일 만에 다 정주행을 끝내버렸다. 왜 한동안 사람들이 일명 ‘슬감 앓이’, ‘해롱이 앓이’를 했는지 알 것 같다. 아직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부러울 지경이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드라마를 만나서 행복했던 며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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