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을 대처하는 법 [영화]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를 보고
글 입력 2019.04.3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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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날 본 꽃의 이름은 우리는 아직 모른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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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목록에 있는 영화 중에 문득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다 보고 나니 애니메이션이 따로 있는 작품이라는 걸 알았다. 영화를 보는데 큰 무리는 없었지만, 영화라기보다는 애니메이션 특별판같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느끼는 고통. 고통에서 자라는 폭력. 이성과 감성의 부조화. 그리고 폭력을 맞서는 법. 이런 이야기를 담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적으면 이렇다. 초평화 버스터즈라는 이름으로 여섯 명의 아이들은 비밀 아지트에서 놀 정도로 절친한 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멘마는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공교롭게도 나머지 다섯 명의 아이들은 멘마가 죽는 날 각자 나름 멘마에게 미안함을 느낄 만한 일들을 벌였다. 멘마에게 심한 말을 하거나, 갑작스런 고백을 하거나, 사고 현장을 발견하고도 무서워 달아나는 등등.

갑작스런 멘마의 죽음은 본인 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친구들은 모두 각자 자신이 한 일들이 멘마가 죽음에 이르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트라우마를 겪는다. 친구들은 그 이후로 서로를 잘 만나려 하지 않고 데면데면한 사이로 변한다. 초평화 버스터즈의 리더처럼 활동했던 진땅은 잔병 치레를 하던 어머니의 죽음까지 맞물려 히키코모리처럼 생활 패턴이 변하기도 한다.

이후 어느 날, 진땅에게만 보이는 형태로 멘마가 찾아온다. 멘마는 진땅에게 소원을 해소해야만 성불을 할 수 있다며 부탁을 하고,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친구들은 다시 모인다. 그리고 각자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토로하며 어렵지만 천천히 관계를 회복한다. 멘마가 성불하기 위한 소원은 어머니의 병원 생활로 감정이 무색해진 진땅을 울리는 것. 소원을 이루자 멘마는 조금씩 희미해지고, 비밀 아지트에 '초평화 버스터즈는 언제나 친구'라는 문구를 적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친구들에게 편지를 적고, 모두에게 잠시 모습을 비춘 다음에 조용히 성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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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이들이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과 멘마의 등장으로 죽음을 '극복해내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친구들 간에 서로를 좋아하는 감정이 묻어나온다. 특히, 멘마와 가장 친했던 진땅과 그 모습을 질투했던 아나루는 몇 년이 지나도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줄곧 마음에 품는다. 어떻게 보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만남을 애써 희망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각자가 품고 있는 트라우마는 개개인을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멘마'는 죽어서 없다. 죄책감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어도,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 한없이 마음 속을 맴돈다. 그러면서 죄책감과 용서는 자기혐오와 분노로 바뀐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낳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서먹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무력한 자신의 민낯이 남들에게 드려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멘마'의 등장은 트라우마를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평생을 안고 가야 할 트라우마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 만큼 기쁜 일도 없다. 하지만 두려움도 함께 따라온다. 트라우마를 털어놓기 위해서는 그것을 기억하고 되짚어보아야 한다. 자신의 가장 어두웠던 민낯을 마주해야 할 용기도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시 하나둘 재회하는 모습은 트라우마를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마주할 수 있기에 중요하다. 각자가 힘들었던 기억을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트라우마는 '모두'가 고민해야 할 대상으로 바뀐다. 더 이상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은 함께 아픔을 공감하고 극복하려 노력하면서 다시 이전같은 유대감을 되찾는다. 멘마의 진짜 소원이 실은 '초평화 버스터즈'가 영원히 친구로 남는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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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감정 뽑아내기가 조금 심하다는 느낌을 빼면, 스토리는 무난하게 흘러간다. 다만 여섯 명의 아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 쉬워 보인다. 영화 자체가 애니 버전을 다 본 사람을 타겟으로 삼았다는 느낌이 역력하게 났다.



영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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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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