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에 없는 사랑을 했던 여자 - 달나라에 사는 여인

원하는 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글 입력 2019.04.2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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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다.


친한 친구 사이였는데, 난데없이 고백을 해버려 친구 사이마저 깨져버린 경우라던가, 솔직하게 전한 진심이 상대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을 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남는 경우를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당히 숨기며 산다. 솔직함이 가끔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데, 너무나 솔직해져 버리면 잃는 게 많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래서 솔직함으로 일관한다면 때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이 책은 평생을 사랑에 솔직함으로 일관해, 영원히 이해받지 못했던 여인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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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그녀의 손녀딸의 말로 묘사된다.


주인공 할머니는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를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웠던 외모로 인해 많은 남성의 구애를 받았으나, 그녀의 마음을 내보이면 모두 할머니에게 질겁해 달아났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사랑에 솔직했고, 욕망에도 솔직해서 자신의 욕구를 가감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애의 편지를 보내고, 먼저 호감을 표현하면, 남자들은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질려 조롱을 보내거나, 달아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할머니의 솔직함은 그때의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다. 늘 그렇듯 다른 것은 거부당하기 마련이었고, 그런 할머니의 다름은 미친 여자로 치부될 만큼 컸다. 가족들에게도 미친 여자 취급을 받으며, 마을 전체의 조롱거리였던 할머니는 정말로 미친 여자가 되기도 했다. 스스로 손목의 동맥을 끊거나, 머리를 마구 잘라버리는 등.


*


그런 할머니는 옛날 여성들이 으레 그렇듯 집안의 강요에 떠밀려 원치 않는 할아버지와 결혼생활을 한다.할아버지는 한번 결혼했지만, 아내와 가족을 잃게 되면서 할머니와 결혼을 했던 남자로, 할머니가 있음에도 사창가를 드나들었다.


그렇게 영원히 할머니가 솔직함에 대한 거부감에 굴복해 사랑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신장이 좋지 않아 요양 목적으로 갔던 온천에서 재향군인을 만나 일생일대의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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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 재향군인과의 사랑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 유일한 사랑이며 평생의 사랑이었던 이유는 꿈꿔왔던 바로 그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로부터 기대할 수 없었던 사랑을 말해주었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잠자리에서 어색할 만큼 냉담했던 할아버지와 달리, 재향군인은 할머니와 사랑을 나누며 끊임없이 할머니를 예쁘다 말했다. 또, 자신을 사랑하느냐 물으면 헛웃음을 지으며 엉덩이를 툭 치고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할아버지와는 달리, 재향군인은 할머니에게 사랑을 말하고 싶을 땐 사랑한다고 말했고, 할머니에 대해 궁금하면 이것저것 물으며 대답해달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잠자리 기교 중에서 재향군인이 가장 좋아한 것은 가장 어려운 ‘게이샤’였다. 할아버지와 게이샤를 할 때는 저녁 식탁에 차릴 음식만 말하면 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향군인은 포에토 해변이나 칼리아리 혹은 할머니의 고향에 대해 들려주거나 일상생활, 과거, 우물 안에서 느낀 감정을 이야기해 달라며 이것저것 묻고 자세한 대답을 원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할머니는 조용한 성격에서 벗어나 말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고, 포에토의 새하얀 모래언덕과 흰색과 하늘색 줄무늬 오두막에 대해 끝없이 쏟아냈다.


그렇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정말로 사랑하지 않았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헤어진 재향군인을 좇고 있음을 알면서도, 할머니의 모든 행동을 용인해주었다. 또, 할머니를 뒤에서 성심성의껏 돌봐주었다. 할머니에게 평소에는 지극히 잘해주었고, 당시에는 드문 모습이었는데 아내의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무엇보다, 남들이 미친 게 분명하다며 손가락질했던 할머니를 이해했던 사람이었다.



할아버지 것으로 빌린 운동화와 두꺼운 스웨터는 아주 촌스럽고 보기 싫었다. 하지만 할머니와 아버지 것은 아주 좋았다.


그런 사실을 할머니도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하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었고, 그 사실을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음과 양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모양이 아니었다. 다만, 여느 연인들의 관계처럼 서로의 다른 점들을 노력으로 이해해나가며 사랑으로 발전시키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 불가능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 중에 음과 양의 모양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는 딱 맞아떨어지는 완벽하고 불가능한 사랑을 꿈꿨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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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기에, 이 소설의 결말이 처음엔 어이없어 당황스러웠지만, 이 세상엔, 할머니의 상상 속 완벽한 사랑이란 애초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결말이다.


나조차도 완벽한 사랑을 꿈꾸던 때가 있었고, 아마 살면서 한 번쯤은 모두가 완벽한 사랑을 기대했던 적이 있었을 테지만 이내 우리는 알게 된다. 이상적인 사랑은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재향군인은 할머니에게 완벽한 사랑을 주었다. 할머니가 기대했던 대로, 사랑을 속삭였고 아껴주며 할아버지에게서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던 사랑을 주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달나라에서 온 여자였고, 재향군인은 달나라에서 온 남자다. 언제나 할머니를 지켜주는 할아버지는 달나라에서 온 남자가 아니었을 뿐, 그들이 평생 영원토록 쌍방향의 사랑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더욱 짙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


누구든 깊은 본심을 숨길 뿐,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조건의 상대와의 사랑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다만 그런 사랑을 쫓다간 평생 그냥 사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부정하지만, 그런 사랑이 찾아온다면, 그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는 처음부터 죽는 순간까지 모든 삶의 순간에서 솔직했다. 꿈꾸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솔직했고, 그래서 평생 자신이 바랐던 이상 속 사랑을 쫓았다. 그래서 평생 사랑을 할 수 없었다.



제노바에서 배를 타고 또 한번 기차를 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터였다. (중략)


재향군인처럼 자세히 설명해 주는 일은 결코 없을 테고, 남편에게 평생 그토록 원하는 말, 세상에 당신뿐이라는 말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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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남들과는 달랐던 달나라의 여인은 달나라의 사랑과 다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느님이 특정한 방식으로 사람을 창조한다면, 할머니에게 타고난 모습과 다르게 행동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할머니는 그리움과 열망이 숨통을 조이는 삶이 아니라 주어진 대로 사는 게 최선이라는 걸 깨닫느라 진이 다 빠지고 말았다.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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