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는 왜 인도로 떠났을까_2. 타지마할, 드디어 바라나시 [여행]

글 입력 2019.04.2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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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를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이동했다.



하루만에 타지마할을 보고 바라나시로 가는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날은 불행하게도 기차 사고가 있었다. 불행 중 다행, 내가 탄 기차는 그렇게 많이 늦어지지 않았지만 반나절이 지나도 기차가 오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아그라 역에 도착하고, 아직 역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는데도 릭샤꾼이 몰리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가장 손쉽게 당할 수 있는 사기가 바로 릭샤이다. 탈 때와 값을 다르게 부르거나, 한참 전에 내려주거나… 인도 여행의 중반 즈음 되었던 시기라, 어느정도 사기 수법에 익숙해진(?)나는 다른 흥정방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저번에 아그라에 와 봐서

가격이 얼마인지 안다”


“너는 외국인이고, 나는 현지인이니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한방 먹었다. 전에 와봤다고 하면 내가 말한 가격에 흥정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통하지 안았다. 생각보다 얼마 깎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심하게 흥정했던 여행 초반을 떠올려보면 적극적인 흥정 방법이라 생각했다.


잘 가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쭉 가면 바로 나오니 걸어서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도를 계속 보는 중이었기에 “아직 남았다”고 말했지만 대꾸도 없이 본인 친구들 있는 쪽으로 가서 수다를 떠는 것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사기 수법은 여러 명 일때보다 혼자일 때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타지마할은 인도에서 가장 비싼 입장료로도 유명하다.



1300루피(약 2만 천원)인데, 현지인 입장료에 비하면 20배가 넘는 가격이다. 학생할인도 없고, 무덤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추가요금이 붙는다.


현지인에게 1300루피는 큰 금액이지만, 인도의 랜드마크인 타지마할을 보기위한 1300루피, 2만원은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니라 생각했다. 어쩌면 평생 한번 볼 타지마할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입장 또한 까다롭다. 그냥 (카메라만 들고) 아무것도 들고가지 않는게 속 편하다. 그렇게 드디어! 타지마할로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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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운이 좋았다. 안개가 많이 끼지 않아, 맑은 날씨였다. 타지마할이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많은 건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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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의 5대 황제인 '샤 자한'은 아내인 '뭄타즈 마할'의 죽음 후, 오직 그녀만을 위한 무덤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무덤 하나가 건축되기까지 22년, 그것도 17세기에 지어졌다.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은 집안의 어려운 관계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아내가 죽기 전까지 그의 제국은 번영과 안정을 누렸고, 반란은 진압되었으며 평화로운 삶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1631년, 뭄타즈 마할은 14번째 아이를 낳고 사망하게 된다. 그녀의 죽음 이후 황제의 삶은 파괴되었다. 아내를 사랑한 남편으로서 그는 오직 뭄타즈 마할만을 위한 무덤 건설을 계획하는데, 엄청난 경제 악화와 신하들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샤 자한 황제는 22년동안 무덤 건축을 계속하게 된다. 샤 자한의 죽음 이후, 그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뤄지지 않았지만 유해는 뭄타즈 마할과 함께 타지마할에 공동 안장 되었다.


타지마할이 완성됨으로써 그들의 이야기가 현재까지 오르내릴 수 있는게 아닐까. 변하지 않는 '영원함'이 존재하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수 세기동안 후세의 갖은 노력으로 인해 영원한 아름다움이 지속되는 타지마할을 보면 정말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는 30년이 지나 인도에 다시 왔는데, 오직 타지마할만이 변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30년 뒤 타지마할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20대 일 때 바라봤던 타지마할과는 또다른 느낌이 들까.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언가 있을 수 있는지, 곱씹을수록 그리워지는 곳이다.




드디어 바라나시로 향한다.



아그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아그라에서 저녁 8시쯤 출발해서 다음날 오전 중에 도착하는 일정인, 슬리핑버스를 이용했다. 버스는 화장실이 없는 것 빼고는 불편함 없었다. 자리마다 문도 달려있어서 편하게 쉴 수 있었다. (하지만 멀미가 심한 사람들에게는 길이 험해서, 힘든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바라나시에 거의 도착할 때쯤, 말도 안돼는 교통체증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오후에 도착했다. 나는 혹시 설사병 증세가 나타날 까봐 버스 안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중간 중간에 멈췄던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짐이 너무 걱정되기도 했고, 긴장 상태여서 화장실을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버스안에서 12시간이 지날 때쯤, 멀미를 안 하는 나도 너무 힘들었다. 빈속에다가 계속 가만히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드디어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숙소까지 가는 릭샤는 교통체증이 심해서 2시간 넘게 타고 갔었다. 그런데 너무 길이 막혀서 내려서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했다. 릭샤를 더 타는 것도 힘들어서 차라리 걷는게 낫겠다 싶었지만, 갑자기 릭샤꾼이 말도 안돼는 금액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사실, 버스에서 만난 외국인과 함께 릭샤를 탔었다. 교통비도 줄일 겸 방향이 같으니 내가 먼저 제안했다. 그렇게 함께 릭샤를 타기 전에 흥정을 했는데, 내리려고 하니 너무 어이없는 금액을 요구해 버린 것이다. 나는 전과 말이 다르다고, 그렇게는 못 준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미 같이 릭샤를 탄 외국인이 줘버린 것이다. 왜 줬냐고 물어보니, 얼마 안되니까 그냥 줬다고 했다. 사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물가와 비교하면 정말 싼 금액이다. 하지만 이곳은 인도이니 인도 물가에 맞춰 생각하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사기라는 걸 아는데 돈을 줘야 한다니, 너무 억울했다.


그렇게 내려서 한 40분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동행을 다시 만났고, 하루동안 굶주렸기 때문에 얼른 밥을 먹으러 갔다. 정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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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꼭 하고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인도 미용실 가기!


그래서 일부러 머리를 자르고 오지 않았다. 바라나시 전에도 계속 맘에 드는 미용실을 찾아 다녔지만 맘에 드는 곳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원하는 분위기의 미용실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겐지스 강으로 향하던 길, 골목에서 맘에 드는 곳을 딱 발견했다. 그러고 바로 들어가서 머리를 잘랐다. 결과는 원래 길이보다 훨씬 짧아졌지만 맘에 들었다.


사각사각, 아직도 거침없는 아저씨의 가위질 소리가 선하다. 머리를 자른 뒤, 두피 마사지를 맛보기로 보여주며 권하셔서 생전 처음으로 두피 마사지라는 것을 받았다. 시원하기도 했는데 그냥 이 상황이 웃겨서 계속 웃었던 것 같다.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저씨의 영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깨 마사지도 좋으니 한번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다가 머리 자르는 것 보다 마사지를 더 받을 것 같아서 거절했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단돈 2~3천원에 맘에 드는 머리를 자를 수 있다니!


이제 기다리던 ‘겐지스 강’을 마주할 순간이었다. 가트로 내려가는 순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강이 보였고,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작아서(?)놀랐다. ‘겐지스 강’은 우기가 되면 계단까지 물이 찰 정도로 많아지며 습한 날씨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 시즌이 성수기로, 관광객을 비롯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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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는 할 일이 없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일출을 보기도 하고 늦잠자서 늦게 일어날 때도 많았다. 그렇게 깨어나면 가트로 나가 앉아서 사람 구경, 강 구경을 하고, 멍 때리고, 책을 읽는다. 그럼 금방 점심이 되어간다. 바라나시는 맛있는 레스토랑이 많아서 매 끼 마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가트로 나간다. 한번 왔다 갔다 걷기도 한다. 정 심심하다면 악기를 배우거나 팔찌를 만든다. 나는 바라나시에 있는 일주일 간 매일 젬베를 배우러 갔다. 그러면 다시 저녁이 되고, 밥을 먹고, 일몰 보트를 타거나 매일 밤 열리는 의식(푸자)을 보러 나간다. 마지막으로 메인 화장터에 다녀온 뒤, 하루를 마무리한다.


한량 같은 날들이다. 밥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오늘 하루 잠에 드는 것, 아침에 일어나는 것. 너무 일상처럼 반복되는 일이라 중요하지 않았던 일반적인 일들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고민이 잊혀지고 당장 오늘 점심 메뉴에 집중하게 된다.


온전히 ‘나의 본능’에 집중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다음, 인도 마지막 이야기





[나정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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