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관객들의 마음을 휩쓸어버린, 적벽의 위대한 동남풍 [공연]

적벽대전의 화려한 재탄생, 판소리뮤지컬 '적벽'
글 입력 2019.04.0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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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에게 첫 뮤지컬이자 한동안 마지막이 될 거라고 예상치도 못했던 뮤지컬 공연은 대학생 때 교양과제로 관람했던 ‘빨래’였다. 배우들의 연기와 춤, 노래 이 모든 요소가 온전히 녹아있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공연만큼이나 내 가슴을 들뜨게 한다.


하지만 뮤지컬을 분명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내게 제일 인상 깊게 봤던 공연은 뭐였어? 라는 질문을 툭 던진다면, 나의 동공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불안함에 진동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이 불안함은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해 잠시 말해보면,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본인 스스로 말했던 내가 인상 깊었던 뮤지컬 한 편을 고르기 위한 선택지는 지금까지 딱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디어 지난주 금요일 나의 뮤지컬 관람 역사에 대한 기록을 경신할 수 있었다. 바로 정동극장에서 선보인 판소리 뮤지컬 적벽이 그 두 번째 기록에 찬란한 획을 그으며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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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에 착석한 후 내 시야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바로 무대를 가리고 있는 큰 스크린 장치였다. 적벽의 시작은 이 스크린을 통한 배경 줄거리의 전개와 이를 소개하는 판소리 창으로 화려하게 그 막을 열었다. 특히 스크린에서 느껴졌던 화면의 입체감은 시작부터 내 호기심을 끌었고 유리의 투명한 광택과 같은 이 입체효과는 적벽대전의 스토리에 더욱 빠져들 수 있는 훌륭한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배경의 소개가 끝난 후 무대 뒤 밴드의 연주가 시작됐다. 밴드의 구성은 드럼, 장구, 대금처럼 생긴 관악기, 키보드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뮤지컬의 음악적 요소로 음향효과뿐만 아니라 실제 라이브밴드를 투입했다는 점이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적벽이 판소리 뮤지컬이라는 점을 한번 더 떠올려본다면 판소리와 라이브밴드의 조합, 그리고 밴드 내의 국악기와 드럼의 조합은 아주 독특했다. 게다가 다소 엉뚱하다고 생각되는 이 악기들의 조합이 만들어 낸 소리는 악기의 구성에 대해 다시는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멋졌다. 라이브밴드의 파워풀한 연주는 적벽의 도입부를 이같이 아주 힘차게 열었다.




본격적인 스토리전개,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의 늪에 빠지다




#1. 한나라 말엽


중국, 한나라 말엽. 황식이 유약하니 전국에서 도적이 일어나 황금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세력다툼이 벌어진다.



1장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장면은 조조의 등장이었다. 새빨간 긴 망토를 몸에 두른채 무대의 제일 높은 계단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던 그의 모습은 당시 조조의 위세와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2. 도원결의


촉한의 유비, 관우, 장비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도원에서 한날 한시에 죽기를 맹세하며 의형제의 결의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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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는 적벽의 여러 장면들 중에서 내가 특히나 좋아했던 부분 중 하나이다. 이 장면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사용된 무대 바닥에 조명으로 비쳤던 글씨들.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부채를 중앙에 내밀며 뜻을 함께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한번 더 확고히 하고, 이어 펼쳐진 부채를 모아 함께 도원결의를 상징하는 원모양을 만들었던 장면. 이것은 결의 속에 담긴 그들의 진심을 무대와 꽤 거리가 있는 관객석까지 전달하기에 아주 충분했다.



#3. 삼고초려


유비부대에 책략가가 없어 책략가 제갈공명을 얻기위해 그의 집을 세 번 찾아가 뜻을 같이 하기를 간절히 청하고, 공명, 그들과 함께한다.



3장에서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판소리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유비가 공명 선생을 찾아갔을 때 그 제자가 선생에 대해 말해주는 간결한 대화조차도 어떻게 이처럼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 감탄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금의 연주와 함께 그 리듬과 강약에 맞춰 부르는 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강약과 리듬의 경계를 자유로운 바람으로 넘나들었던 국악기의 소리와 그 바람을 삼키는 판소리의 조화는 단연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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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삼형제가 그들의 대의를 위해 제갈공명을 재차 설득하는 과정도 아주 흥미롭게 보았던 것 같다. 유비의 첫 청을 거절한 공명은 관우와 장비의 간절함에 끝내 자신의 뜻을 꺾고 그들과 뜻을 함께하기로 한다. 이 때 제갈공명을 막아서며 관우와 장비가 보여줬던 진심어린 표정 연기, 그리고 이들의 간절함을 더욱 잘 드러내 주었던, 다른 배우들이 함께 무릎을 꿇으며 보여줬던 진심은 관객들의 마음뿐 아니라 천하의 공명 선생의 마음까지 돌려놓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없다.



#4. 동남풍


촉나라는 오나라와 연합하여 위를 공격한다. 제갈공명, 오나라 주유를 찾아 조조군을 물리칠 계책으로 동남풍을 불러 오겠다 호언장담하니 과연 동남풍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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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풍 장면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무대에 활용된 다양한 소품들이다. 동남풍의 역동적 이미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이 긴 검은 띠를 소품으로 활용했고 무대 뒤 배경도 바람을 나타내는 하얀 띠들로 일제히 바뀐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큰 북 같은 타악기들도 함께 등장하여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일으키기까지의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보여주었다.



#5. 적벽대전


동남풍을 이용해 오, 촉 연합군을 적벽에 정박해 있는 위나라 조조를 화공으로 공격하여 대승을 거둔다.



그렇다. 바로 5장의 제목처럼 이 부분은 적벽대전이었다. 뮤지컬 적벽의 여러 장면을 통틀어 가장 긴박한 전개와 화려한 시각적 연출을 담당했던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촉 연합군이 조조와 대결할 때 흰 부채와 빨간 부채는 그들 사이의 대립구도를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었고, 이후 군사들의 전멸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붉은 조명을 사용해 부채를 빨간빛으로 가득 메웠던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뮤지컬이 더욱 전개됨에 따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조명이 무대에 기여하는 역할이 상당히 컸다는 점이다. 무대조명은 인물들을 더욱 부각시키고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나 상황전개를 나타낸다. 나중에 등장하긴 하지만,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고 죄책감에 힘들어 할 때 캄캄한 무대에서 오직 관우만을 비춰주었던 어두운 흑색조명이 그 대표적 예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적벽대전에선 전쟁을 보여주기 위한 암벽 같은 큰 특수장치들도 등장했다. 전쟁에서 불리해진 조조가 암벽의 아래서부터 한 칸씩 위로 올라갔던 장면은 전쟁의 상황, 그리고 앞으로 조조에게 닥칠 위기를 암시했다. 특히 조조를 연기했던 배우분의 표정 연기가 너무나도 리얼해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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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군사점고


천하를 호령하던 조조는 적벽에서 대패하고 도망을 치던 중 군사점고를 실시한다. 전쟁에 지치고 굶주린 병사들, 고향을 그리워한다.



대전에서 참패한 조조는 몇 없는 군사인원을 확인하기 위하여 군사점고를 실시하는데, 이 장면은 뮤지컬 적벽에서 가장 재밌는 장면이었다. 군사점고의 첫번째 인물은 거의 다 죽어가는 자신의 신세한탄을 했고 이에 조조는 이 군사가 쓸모없다며 삶아먹자고 말한다.


이어 두번째 ‘전동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군사는 전쟁에서 패한 군사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멀쩡해서 조조가 이에 놀라며 의심을 품는다. 이런 조조에게 그 군사가 “그럼 나는 삶아먹지말고 회를 쳐서 먹지 그러냐”라고 말하는데 이 같은 대사구성은 판소리 특유의 골계미를 살려 해학적인 요소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세번째 군사는 기마병이었는데 이를 나타나기 위해 군사들이 다함께 한손을 위로 든 채 한발을 앞으로 굴리며 기마자세를 춤으로 표현했던 것도 특히 인상깊었던 점이다.


이어 펼쳐지는 군사설움은 지친 군사들의 심리를 아주 효과적으로 표현한 부분이었다. 한 군사는 어렵게 얻은 자식을 며칠 보지도 못하고 전장으로 떠나며 자식과의 생이별을 마주해야했던 자신의 설움을 판소리로 표현했다. 군사점고와 군사설움 장면을 보며 삼국지의 적벽대전에 담긴 중국사나 전쟁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가려진 일반 민중들의 이야기 또한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7. 관우의 관용


유비군을 피해 도망을 가나 결국 관우에게 붙잡히게 된 조조. 과거 관우에게 베푼 은혜를 앞세워 목숨을 구걸하니 관우는 결국 조조를 놓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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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를 죽이러 온 관우는 과거 자신을 구해줬던 조조의 계속되는 설득에 결국 그를 놓아준다. 관우의 이 행동은 사적인 감정 떄문에 대의를 져버린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약 내가 관우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고민해보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삼국지와 같은 전쟁사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삶까지도 깊게 침투하고 있는 핵심논제이기도 하다.


과연 이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개인사보다 공공의 목적과 뜻을 더 우위에 두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8. 형제의 의리


공명, 출전 전 받아 둔 관우의 각서에 따라 관우를 벌하려 하나, 유비와 장비. 한날한시에 죽기를 맹세한 형제의 의리로 함께 죽기를 불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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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와 조조 사이의 과거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던 공명은 이런 전개를 예상하고 관우에게 대의를 쫓아야 한다고 거듭 타일렀다. 하지만 용맹하기로 알려진 관우장군 조차도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행동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이에 공명은 관우를 군사법에 따라 벌하려고 하나 유비와 장비가 형제의 우애를 말하며 자신들을 먼저 죽이라고 청한다.


이 부분은 적벽의 여러장면 중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친형제도 아닌 그들이 자신의 목숨까지 걸며 형제를 지키고자 하는 깊은 우애에 감동했고, 이어 함께 맺은 맹세를 소중히 할 줄 아는 그들의 행동에 또한번의 배움을 얻었다. 약속을 가볍게 대하지 않으며 그것의 무게를 알고 행동하는 이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들은 약속의 무게를

얼마로 측정하고 있는가?


그리고 설령 그것이 가볍다하여

소홀히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뮤지컬 적벽은 배우들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덕분에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판소리와 라이브밴드의 무대까지 합세해 전통적 음악예술가 현대의 음악예술의 멋진 조화를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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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서 부채의 활용 또한 주목할만한 점이다. 때론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기도 하고 그들의 뜻을 전하는 도구가 되기도하며, 스토리의 서사를 담아내기까지하는 그들의 부채는 참으로 멋졌다. 공연을 본다는 것,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내 안의 새로운 관심사를 깨우기도 한다. 뮤지컬 적벽을 본 후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삼국지와 우리고유의 문화인 판소리에 대한 흥미를 나만의 작은 예술 화분에 키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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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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