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연과 예술을 뛰어넘는 단 하나의 성질, 사랑 [도서]

아멜리 노통브 - <추남, 미녀>를 읽고
글 입력 2019.04.0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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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남, 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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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남미녀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성이 뛰어나지만 지독하게 추하게 생긴 데오다와 태어났을 때부터 사람들을 압도할 정도로 아름답지만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는 트레미에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구조를 살펴보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초점인물을 두 명으로 두고, 데오다와 트레미에르의 서사를 유년시절부터 번갈아 제시하며 전개하고 있다. 두 인물이 만나는 지점은 거의 소설의 후반부인데, 그 전까지는 그들이 겪었던 차별과 냉대, 질투와 그 안에서 깨달은 인간세상의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그러한 인간 세상의 질서가 부조리하다는 것을 깨우쳤다는 점이리라고 생각한다. 데오다는 처음 우정을 경험한 후 그것이 쉽게 사그라진다는 점을 깨닫고 더이상 우정을 맺지 않으려 한다. 대신 그의 지성에 반해 다가오는 여자들을 거부하지 않고 그들과 사랑을 맺는다. 그의 사랑은 늘 빠르게 끝나 버리는데 그가 새 외에는 인간의 정서에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뛰어난 지성으로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겪어보지 않아 사랑의 성질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에게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그는 하늘의 진정한 주민들을 향해 눈을 들라는 너무나 명백한 초대를 받고 무척이나 기뻐했다. 새가 이미 존재하는데 천사의 형상은 왜 만들어 냈을까? 아름다움, 우아함, 숭고한 노래, 비행, 날개, 미스터리, 이 족속은 성스러운 메신저의 모든 특징을 갖고 있었다. 상상할 필요가 없고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는 보충적인 장점과 함께. 하지만 바라보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의 장기가 아니었다.’



이렇듯 그는 새라는 종족에 매료되었으며, 조류학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를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가 자신들에게 관심을 쏟지 않는 것을 힐난한다. 그러나 그는 그럴 때마다 한층 더 깊이 자신 안으로 침잠하며 새를 관찰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그에게 있어서 새는 거의 성서와 같은 것이었다. 신화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질서가 있고 인간 세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양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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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다가 그 종족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새들은 아무리 멋져도 나름의 모순, 실패한 시도, 기괴함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관찰하다 보면 결코 지루할 새가 없었다. 그것들은 하나의 세계를 구성했다. 그 세계가 가정하는 음모, 영웅, 광대들과 함께. 고대의 시조새에서 미래 지향적인 북극제비갈매기까지, 실속 없이 화려한 수염수리에서 무례한 거미잡이새까지, 뻔뻔스러운 뻐꾸기에서 헌신적인 펠리컨까지, 우둔한 홍방울새에서 기술자 오색딱따구리까지, 모든 역할이 나타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새는 자연으로부터 그가 부여받은 추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을 잊은 채로 아름다움을 숭배할 수 있도록 그의 바깥으로 나 있는 하나의 창인 것이다.


한편 트레미에르는 그녀의 할머니 파스로즈의 손에서 길러진다. 둘은 서로를 너무나 깊이 사랑했으며, 다른 이들이 트레미에르를 멍청하다고 말했어도 그녀의 할머니는 그녀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감각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챘다. 그래서 그녀의 할머니는 그녀를 닦달하지 않았다. 물론 트레미에르와 그녀의 어머니 로즈 역시 서로를 사랑했지만, 로즈는 아름다운 얼굴에 비해 멍청하다고만 평가받는 자신의 딸을 창피하게 여긴다. 파스로즈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로즈를 멍청하다고 놀려댔는데, 작품 속에서는 그것이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라고 묘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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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세간의 반응에 불을 계속 지피던 것은 어떠한 공격에도 반응하지 않는 트레미에르의 태도이다. 자신이 멍청하다는 것을 세뇌당하기라도 한 듯, 그녀는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지 않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때론 자신을 방어하는 최선의 수단이 될 수는 있으나, 그녀는 어디에서도 눈에 띄는 미모를 가졌기에 사람들은 그것마저 트레미에르의 흠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무용하다는 듯 멍하게 세상을 바라보던 트레미에르가 한 가지 매료된 것이 있었다. 그녀는 극렬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면 신음소리를 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파스로즈는 매일 밤 보석으로 몸을 휘감고 잠을 들었는데, 어느날 트레미에르를 불러 그녀에게 자신들의 보석을 소개한다. 트레미에르는 그 때 공포심과 더불어 황홀경을 느낀다.



‘「두 점의 보석이 서로 닿아서는 안 된단다. 서로 흠집을 낼 수 있거든. 보물 창고에 서로 뒤섞여 쌓인 보석 세공품들이 넘쳐 나는 건 해적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거야. 각 보석은 다른 보석들과의 접촉을 참아 내지 못하는 섬세한 영혼이란다.’



이에 트레미에르는 아름다움을 감각하고 그것이 위대한 비밀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트레미에르는 그것에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한발 더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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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그랬으니까. 그녀는 자신이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은 그녀 내부에 극도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자신을 꼬옥 껴안아 주면, 엄마가 화장을 하면, 그녀는 두려웠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순간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결합되어 있어 공포를 느낄 만한 뭔가가 있으니까. 그런데 트레미에르는 그 두려움이 다른 순간에도 끼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백화점 향수 코너에서 우아한 달걀 모양의 향수병을 쳐다보고 있으면 쾌감과 두려움의 전율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관능의 파동이 너무 강렬해져서 신음이 절로 터져 나오기도 했다.’


 

매일 밤 자신의 보석들을 온 몸에 치장하고 잠이 들던 파스로즈는 어느날 보석을 통째로 도둑맞고 그날밤 죽음을 맞이한다. 그 날은 트레미에르가 첫키스를 한 후 사랑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트레미에르는 곧 죽을 것만 같다고 말했고, 파스로즈는 그런 트레미에르를 살리기 위해 같이 잠이 든 나머지 매일 착용하던 보석을 착용하지 않고 잠들었다. 그 틈에 누군가가 보석을 훔쳐간 것이다. 보석이 사랑이자 생명력이라고 믿던 파스로즈는 그 말마따나 죽음을 맞이했고, 트레미에르는 그녀와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된다.


한편 이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데오다가 명석하지만 추한 외모를 지닌 조류학자로 이름을 알리고, 트레미에르가 보석회사의 모델이 된 후였다. 트레미에르가 추한 것에 경멸의 시선을 보낸다는 것을 알아챈 방송사는 그녀를 생중계 TV프로에 내보내 데오다를 만나게 한 후 그녀의 흠을 잡아내려 한다. 그녀를 예민하게 만들기 위해 방송사는 그녀를 아무도 없는 방에 몇 시간을 가둬놓는다. 그러나 그녀는 ‘견디는 일’에 이미 익숙해져있었다. 살아가며 어릴 때부터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바라보며 감각하던 일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휴지 조각의 섬유를 바라보며 그것이 하나의 드레스의 형상으로 보이기까지 시각 감각을 확장시켜 나가며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던 트레미에르는 불현듯 자신의 방으로 뛰쳐온 데오다와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데오다를 보며 새 한마리가 날아왔다고 묘사한다. 그 순간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떤 남자가 불쑥 들어와서는 문을 쾅 닫자, 트레미에르는 관조와 명상에서 깨어났다. 한 시간 이상 빠져 있었던 관조와 명상이 그녀의 지각들을 벼려 놓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도 데오다를 보는 즉시 혐오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제일 먼저 느낀 것은 그 인물이 방금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사실이었다. 「공작이 하늘을 날 수 있는지는 미처 몰랐네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세계를 다른 감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트레미에르는 데오다에게서 새의 형상을 보았고, 데오다 역시 트레미에르가 가진 적 없는 재치를 그녀의 과묵함이라 여겼으며 신중함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다. 트레미에르는 데오다의 지난 연인들처럼 이것저것을 따져 묻지 않았으며, 그의 추함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데오다의 재치는 그녀에게 가서 그녀가 가진 적 없던 어떠한 결함을 채워주는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그들은 샴페인을 나눠 마시며 방송국을 탈출했다. 그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등을 돌렸던 여론들도 방송사의 욕설이 공개되자 그들을 지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간다.


사랑이라는 것의 결실이 결혼으로 맺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그들은 이의가 없어 보인다. 파리의 새로운 새가 발견되어도, 데오다는 이전처럼 학계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며, 트레미에르 역시 자신이 처한 행복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실연의 아픔을 통해 그같은 온전한 편안함과 사랑이 쉽게 찾아올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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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통과하는 다른 종류의 소설이 있다. 그것은 동화 ‘도가머리 리케’이다. 도가머리 리케는 아름답지만 재치없고 멍청한 공주와 지성이 넘치지만 굉장히 추한 왕자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동화이다. 요정은 서로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신이 지닌 장점을 선물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소설 속에도 몇 차례 언급되는 이 동화는 그 자체로 추남, 미녀의 스토리라인과도 닮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조금 더 알레고리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동화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상대로부터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성질을 확인하고 거기서 낯선 감정을 느끼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에게서 자신이 없는 성질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 추남, 미녀와 도가머리 리케는 이러한 사랑의 성질을 드러낸 알레고리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아름답지만 멍청한 여자와 똑똑하지만 못생긴 남자라는 설정은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거기에서 기존 소설에서의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독자로서 애석한 일이지만 작가의 의도는 다음 구절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 같다.

 


‘자연이 한 대상에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새기고 예술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색조로 칠한다 해도, 하나의 가슴을 민감하게 만드는 데는 그 어떤 자연의 선물들도 사랑이 발견하게 하는 단 하나의 보이지 않는 매력보다 못하노니.’



[이정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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