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래에 닥쳐올 혼란의 단면을 보여주다 -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공연]

글 입력 2019.04.0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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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뮤지컬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는 100년 후의 미래도시 ‘밀양림’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도시국가이자 기업국가인 밀양림은 인공하늘, 인공정원, 새로운 동물과 식물, 홀로그램 인간 등 최첨단 기술로 완벽한 환경을 조성해냈다.


밀양림에서는 어떤 것도 썩지 않고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 밀양림의 인간들은 노화를 걱정할 일 없으며 영생까지도 가능하다. 또한, 밀양림을 관리하는 인공지능 ‘판’, 밀양림을 세운 ‘회장’, 밀양림 시장 ‘비잇’도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유토피아나 다름없는 밀양림은 ‘바깥세상’과 명백히 구분된다. 바깥세상은 오염되고 낙후되어버린 ‘지구’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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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듀공아 인스타그램



작품의 주인공인 유울모는 3년간 바깥세상을 경험하고 밀양림에 돌아온 인물이다. 분명 바깥세상은 끔찍한 곳임에도 유울모는 바깥세상을 그리워한다. 거기서 처음으로 느껴본 불규칙적으로 내리는 눈과 비, 안개가 가득 낀 잿빛 낀 하늘, 슬픔, 우울함과 같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들. 끔찍하지만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짜 ‘자연’이자 ‘생명’이었다.


금방 잊힐 것 같았던 바깥세상의 기억은 유울모가 식물이 되어가는 ‘미아보라’를 만나게 되면서 더욱 짙어진다. 미아보라에게 빠져들면서 유울모는 밀양림을 파괴하려는 자들과 밀양림을 둘러싼 비밀을 마주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갈등이 전개된다.




난해하고 어색한, 역동적이고 새로운



기대를 무척이나 해서 그런지 공연 자체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과학과 예술의 결합이라 해서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무대장치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과학은 말 그대로 SF(Science Fiction)의 ‘Science’를 뜻하는 거였다. 모든 과학 기술은 배우들의 동작으로 표현되었다. 생각해보니 뮤지컬의 규모 자체가 최첨단 기술을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긴 했다. 연출의 어색함을 뒤로 해도, 스토리 측면에서도 친절하지도 않고 완성도 있지도 않았다. 공연을 보는 내내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난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작가 겸 연출을 맡은 김진우 작가가 충분히 예상한 반응이기도 하다. 그는 공연 시작 전 이해를 돕는 글에서 주제나 맥락보다는 혼돈의 한 단면을 거친 그대로 보여주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고 한다. 촌스럽다고 생각이 되었던 부분들도 그의 말에 따르면 ‘키취(촌스러움)’의 성격이 반영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를 향했던 비판을 달리하여 작품을 참신함과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염두하고 바라본다면 말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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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듀공아 인스타그램


연출, 노래, 연주, 연기까지 모든 게 역동적이고 새로웠던 참신한 작품이었다. 웅장하고 신비로우면서 트로트의 뽕끼가 느껴졌던, 장르를 추정할 수 없는 음악에 배우들은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기도, 빠르게 랩을 하기도 한다. 또한, 쉴 새 없이 장면들이 전환되고 모든 신기술을 몸동작으로 표현하다보니, 배우분들 모두 굉장히 빠르고 역동적으로 움직여 마치 행위예술(?)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와중에 유일하게 느린 어르신 앙상불 세 분의 모습은 어색한 것을 넘어 예술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서로의 몸을 스캔한 후 하는 ‘원격 섹스’, 치킨과 마우스의 유전자 조합으로 태어난 ‘치킨마우스’, 지구의 자연을 인체의 몸에 이식하는 ‘인체 테라포밍’ 등 공연에 나온 신기술들 역시 미래세계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어색하고 난해하여 못 따라간다 해도 기존 뮤지컬 작품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작품이었다.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의 주제는 자연 대 반 자연, 생명 대 기계, 아름다움 대 추함이었다. 밀양림은 모든 것이 인간의 편의에 맞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아름답다. 반면 바깥세상은 환경오염과 전쟁으로 인간이 살기 어려운 고통스럽고 추한 곳이지만 여전히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있다. 밀양림의 삶이 월등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지만 작품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바깥세상을 경험한 유울모는 바깥세상에 대한 욕망으로 큰 혼란을 겪는다.


유울모의 할머니는 바깥세상에서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생을 마감할 때 바깥세상의 추억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우울의 반지’를 유울모에게 넘긴다. 미아보라 역시 진짜 ‘생명’을 갈망하고 밀양림을 파괴하려고 한다. 결국 인간의 본성은 ‘바깥세상’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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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듀공아 인스타그램


희로애락[喜怒哀樂]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여러 감정을 일컫는 용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인생을 말하기도 한다. 수많은 우리의 감정이 행동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인생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지극히 정서적인 동물이라는 것이다. ‘밀양림’은 그런 인간의 정서를 잊게 만드는 세상이다. 인간 역시 기계와 같아져간다.


그 안에서 유일하게 자연으로 변해가는 ‘미아보라’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인간의 본성, 가치를 표상한다. 그렇기에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 유울모에게 그녀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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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듀공아 인스타그램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밀양림’을 지배하는 존재에 대한 것이다. ‘밀양림’을 지배하는 건 밀양림 그룹의 회장과 밀양림을 관리하는 인공지능 ‘판’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실체가 없다는 것은 밀양림을 영원히 파괴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음을 말한다.


마지막 유울모가 밀양림의 충실한 시민으로 되돌아가고, 썩은 사과를 집어들며 괴성을 질렀던 것도 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유토피아처럼 보였던 밀양림이 사실은 미래의 디스토피아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는 미래의 판옵티콘이 어떤 형태로 우리의 앞에 나타나게 될지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김량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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