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수영이 그녀에게 가르쳐 준 것 - 스위밍 레슨

스위밍 레슨|클레어 풀러
글 입력 2019.04.0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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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바다가 알려줬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 헤엄쳐 탈출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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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레슨>
클레어 풀러 지음 / 정지현 옮김


길은 문학창작 수업을 강의하는 잘생긴 작가였고 잉그리드는 그 수업을 듣는 졸업을 앞둔 학생이었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임신을 했고, 임신은 결혼으로 이어졌으며 둘은 길이 살던 바닷가 마을에 정착하였다. 그곳에서 두 딸 나넷과 플로라를 낳았다.

길이 아내와 딸을 두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잉그리드는 외롭게 그곳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잉그리드가 사라졌다. 평소처럼 수영하듯이 바다로 가선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과 사망 사이에서 시간은 흘렀다. 잉그리드는 어디선가 살아있었던 걸까, 아니면 노쇠한 길이 환영을 본 것일까. 길은 잉그리드(혹은 닮은 사람)을 따라가다 난간에서 떨어지고 만다.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들은 플로라는 급히 집으로 돌아간다.

처음은 흥미로웠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어두운 밤이었다. 플로라가 몰고 온 차는 고장 났고 하늘에선 물고기 비가 내렸다. 무슨 일이 시작될 것만 같은 시작이었다. 하지만 별일 같은 건 없었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며 잉그리드의 삶을 보여주었고 그러면서 플로라는 모르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뿐이다. 이 책을 미스터리 서적으로 분류할 수는 있어도 직접적으로 책을 소개하는 건 책을 오독하게 한다. 책은 유려함을 담아 서정적으로 한 여자의 삶을 다룬다. 장르를 강조하기엔 다루는 이야기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나요?"



어둡고 축축한 시작과 달리 건조한 편지지 감촉 위로 예측 가능한 전개가 이어졌다.

 

서른 아홉의 교수가 이십대 초반의 학생에게 작업을 거는 건 주변에서 뜯어 말려야 할 일이다. 또래의 여성이 아닌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여자를 상대로 한다는 건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수 있는 큰 흠이 있기 때문이다. 잘생긴 외모와 작가라는 직업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종잡을 수 없는 태도에 경험이 적은 어린 여자는 쉽게 넘어간다.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길이 가진 것은 외모와 과거의 이력 밖에 없다. 길게 말할 것 없다, 나쁜 놈이다.

 

그 나쁜 놈에게 필요한 여자는 두 종류였다. 같이 자거나, 결혼하거나. 잉그리드는 제 3의 유형이 되고 싶었지만 전자에서 후자가 되었다.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둘은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사랑의 가혹한 현실일까? 물론 아니다. 학교가 피하고 싶은 추문일 뿐이었다.



"당신이 집 안에서 자지 않는 날이면

밤마다 수영을 하러 갔어요"



나쁜 놈은 결혼하고서도 나쁜 놈이었다. 제대로 된 돈을 벌지 않았고, 가정을 돌보지도 않았다. 집 옆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외도를 하다 들켰고, 아내와 같이 여행을 갔다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내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책이 성공한 뒤에는 유명세를 이용해 다시 외도를 했다. 외도 상대 중 잉그리드의 오랜 친구가 있다는 것과 집에 길의 사생아가 찾아왔다는 것까지 정리하려니 그저 한숨만 나온다.

 

나넷은 아빠가 외도 하는 걸 알았고, 어린 플로라는 언제 아빠가 집에 오는지 엄마에게 물었다. 잉그리드는 잠이 오지 않는 새벽 편지를 써가면서 길에 대한 마음을 적어나갔다. 하지만 점차 적어나가는 건 길을 향한 마음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진실이었다. 아니,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말로 내뱉는 과정을 통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길 없이 지내던 잉그리드는 길 없이도 위험에서 헤쳐 나왔다. 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버려진 어린 새 같고 너무 일찍 바다에서 헤엄쳐 나온 물고기 같던 잉그리드는 고난과 시련을 통해 혼자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반복하던 일상 속에서, 일상의 한 조각이었던 수영을 하면서 돌연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본인의 의지로.



“이 편지와 나머지 편지들을 발견하면
꼭 찢어서 태워 버려요.
절대로 아이들이 읽게 하면 안 돼요."


죽음을 앞둔 길은 무언가를 깨달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길은 잉그리드가 집을 가득 채운 책 곳곳에 숨겨놓은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나넷이 책으로 뒤덮인 집을 정리하고자 일부 책을 책방에 팔자 길은 책방에 가서 편지를 찾아 읽는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자신이 죽으면 모든 책을 태워달라고 했다. 그리고 기회가 생기자 자신과 책이 가득한 집에 불을 질렀다.

길은 잉그리드(혹은 닮은 사람)을 뒤쫓다 다쳤다.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으려 한 것은 아직 읽지 못한 잉그리드의 편지가 있는 책이었다. 병원에서 치료 받고 집으로 돌아와 궁금해 한 것도 의식을 잃기 전까지 쥐고 있던 그 책이었다. 길은 편지를 읽고 싶은 게 아니라 편지가 남의 손에 들어가 진실이 밝혀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잉그리드는 물을 통해 현실을 탈출했지만, 길은 불을 통해 현실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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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레슨
(SWIMMING LESSONS)


지은이: 클레어 풀러(Claire Fuller)

옮긴이: 정지현

분량: 372쪽

정가: 13,800원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9년 3월 18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ISBN: 979-11-965176-3-2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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