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압도되다 [기타]

내 삶은 진짜 ‘나’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내면 여행을 떠나는 방법
글 입력 2019.03.28 02:4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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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영화관으로 향하곤 한다. 그리고 이때 많은 비중을 영화가 아닌 영화관에 둔다. 물론, 영화 자체의 만족도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이 글에서는 일탈적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압도'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관은 기본적으로 공간과 시간을 제한한다는 조건이 있다. 개인을 일상으로부터 떨어뜨리는 동시에 러닝타임 동안 특정 이야기를 전개한다. 더군다나 좌석에 앉아 어둠 속에서 오직 환한 스크린만 바라보도록 만들어주니, 집중을 야기하는 환경조성에 있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도움을 얻어 관객은 내용에 보다 ‘집중’할 수 있고, 영화로부터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자연히 피우게 된다. 관객은 좌석에 앉아 내용의 흐름에 맞춰 그 감정의 회오리를 한껏 맛보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켜지면 서서히 현실로 돌아온다. 눈부신 로비 조명을 받으며 우리는 상영관 안에서 느낀 감정과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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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영화관의 이 같은 기능을 ‘분위기의 압도’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압도’는 사실, 일상에서도 수차례 일어난다. 영화관은 그것을 느끼고자 편리하게 이용하는 장소 정도로, 기분전환 단계에서 가볍게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특별한 장소를 찾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 안에서 더욱 밀도 높은 체험을 할 수 있다. 우리가 ‘감정의 압도’에 좀 더 익숙해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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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몸의 신호를 너무 쉽게 무시해왔다. 그 결과, 혼자 있을 때조차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빠르게 숨겨버리고 만다. 울컥하고 눈물이 차오를 때, ‘어, 갑자기 웬 눈물이지?’ 하고 황급히 눈을 깜빡이며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흐르게 두어 보자. 그리고, 내가 왜 눈물이 나는 것인지, 내 감정을 찬찬히 헤아려보는 것이다. 도리어 이런 경우는 미지의 나를 생각하고 알아볼 소중한 기회다. 그 눈물은 내면의 어떠한 이유가 있기에 나타난 결과다. 내 안에서 비롯된 그 소통의 신호를 더는 생각 없이 차단하지 말자. 우리는 좀 더 의식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며 압도될 필요가 있다.

가슴이 터질 듯이 화(火)가 날 때도 마찬가지다. 분노의 감정에 압도되라는 말은 자칫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단순히 표면적인 몇 가지 이유에 집착해서 화에 화를 덧붙이는 게 아니라, 철저히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화의 원인과 감정을 오롯이 느끼며 분노해보자. 차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중구난방으로 의미 없이 표출하지 않고, 안으로 끝없이 물으면서 해소해야 한다.

심장이 저릿한 괴로움이나 도무지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왜?’라고 묻는 탐구를 넓게 기저에 깐다면, 동일하게 접근이 가능하다. 내가 지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이유, 해당 상황에서 나조차 예상치 못하게 특정 감정이 앞선 이유 등을 곱씹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상태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명확한 답을 찾는 것보다는,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방향으로 자신을 조명하는 그 과정에 방점을 찍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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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기본적으로 감정의 압도는 낯설거나 싫은 나의 모습을 휑하니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세에서 시작한다. 화난 나, 우울한 나, 부끄러운 나, 절대 남에게 보일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의 나도 전부 결국 나인 것이다.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지레 겁먹고 없었던 일처럼 덮을 게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을수록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내 안에 무수한 내가 있음을 인정하자. 그 가능성을 안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 내면의 크기를 늘리고 비로소 자아를 직면할 준비라고 생각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두둔하고 방어하려는 경향을 가지며, 본인 혹은 사회로 인해 설정된 에 들어맞지 않을 때마다 ‘부족함’이란 단어로 이를 표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족하지 않기 위해’, ‘부족해선 안 되니까’ 덮어두고 자신을 그 틀에 집어넣으려 한다. 마치 틀 밖으로 빠져나올 때마다 죄를 지은 것처럼 여기며 말이다. 그렇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테두리에 집착하는 법을 익혔다. 그 습성을 한순간에 지우기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일차적으로 드는 감정에 집중하는 기초연습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감정을 무방비에 놓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은 곧 자신을 놓아주는 과정이며, 그렇게 차차 틀을 지워간다면 자신을 끝없이 발견하는 동시에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다른 무엇이 아닌 ‘나’로부터 비로소 시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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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의 경험이 기분전환이 되는 것처럼, ‘감정의 압도’ 경험, 즉 ‘자아 탐구’는 나를 끝없이 자극하는 등 내 안의 기류를 변화시킨다. 압도 이후의 이완과 함께 단단해지는 자신을 제대로 느껴본다면 그대도 ‘나를 찾는 여행’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를 알고, 내면이 탄탄해야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외면하는 등의 소통이 불가능한 수동적 태도로는 무엇이 종용했을지도 모를 허울뿐인 틀을 견고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그 삶을 주재하는 것이 자신이 아닌 무의식적 급급함인 것조차 알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감정의 압도는 제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더없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자신을 무한한 내면의 여행자로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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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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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계족산로
    • 자신에게 자유로움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내맘같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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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도공도공
    • 마치 심리상담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유익한 글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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