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편소설 ‘몫’ - 개인과 사회가 ‘글’ 이라는 존재를 통해 연결되는 소설 [도서]

글 입력 2019.03.2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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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쯤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일로 서울에 올라갔다가 홍대 근처에서 북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 자주 올 수 없고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인 나로서는 솔깃한 정보였다. 사실 다양한 출판사가 참여하고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접할 수 있는 책 축제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연간 꾸준히 열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제서야 안 것에 내심 아쉬워하며 북 페스티벌 장소를 찾아갔다.


그 축제에서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소설 ‘몫’을 만났다. 그리고 이 책은 장편 소설 위주로만 읽던 나에게 그동안 단편 소설을 왜 읽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먼저 던져주었다. 동시에 내 인생을 통틀어 읽은 책들 중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책으로 남았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이렇게 나의 글로써 이 책을 ‘감히’ 소개해도 괜찮은 것인지 고민했다. 나의 평범한 글 솜씨, 나의 그저 그런 몇 글자로 이 책을 규정짓는 건 아닐까, 혹 내가 적은 활자 속에 이 책이 갇혀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미메시스 몫.jpg
단편소설을 소개하는 ‘테이크아웃’ 시리즈는
2030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와 일러스트레이터를
함께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렇지만, 길이가 짧은 단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여운은 그 어느 소설보다 길게 남았던 이 ‘몫’이라는 책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이 책을 쓴 최은영 작가님의 문체는 담담하고 차분하다. 어쩔 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의 표현은 오히려 간결하게 쓴다거나 혹은 생략해버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 여운을 남기는 글이었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우면서도 동시에 따듯한 시선이 녹아있는 표현과 비유가 책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 예로 이 구절이 생각난다.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한 깊은 수준의 공감을 했고, 상처의 조건과 가능성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


- P.25



특히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마치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듯 정확히 표현한다. 다시 말하자면,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속 분위기들이 실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소설이지만 마치 수필처럼 느껴지는 글이었다.

 

‘몫’은 대학 교지 편집부 소속 학생 해진, 정윤, 희영 세 사람의 이야기이다. 교지 편집부에 속한 세 사람과 당시 90년대 한국 사회 문제는 편집부원들의 ‘글’이라는 존재로 인해 연결된다. ‘몫’은 해진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책의 주인공인 해진은 주로 ‘당신’이라는 지칭어로 표현되는데 예를 들자면, ‘당신은 아직도 그날 밤을 기억한다.’ (p.24) 식의 표현이 계속된다. ‘당신(해진)은 ~라고 느꼈다.’라는 식의 문장이 오히려 마치 내가 해진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책은 ‘글’을 쓰는 성향으로 각 개인들을 설명하고, ‘글’의 주제를 정하는 회의 장면들로 당시 사회 상황을 보여주며, ‘글’을 통해 개인과 사회를 바라본다. 나아가 독자들에게는 ‘몫’이라는 책의 ‘글’을 통해 당시 사회와 현재 사회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즉, 이 ‘몫’이라는 책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글’의 힘을 마냥 찬양한다던가 하는 단순한 메시지를 던지는 내용은 아니다. 다만 ‘글’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많은 현상과 상황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 나아가 책은 해진, 정윤, 희영을 통해 당시 여성 개개인의 삶, 그리고 당시 사회문제 중 하나였던 가정 폭력, 기지촌 문제 등으로 인한 전체적인 여성 문제를 함께 다룬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과 구절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세 부분 정도로 간추려서 기억에 남았던 구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 번 읽고 나면 읽기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서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 P.13, 14



꼭 나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았다. 나 또한 좋아서 쓰는 글들이지만 막상 쓸 때면 나를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책의 초반부터 해진에게 몰입되면서 동시에 나의 글은 어떠한가 다시금 확인하고 슬프게 만들었던 구절이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한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그 주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김영삼 정권 말기의 정치, 학생 운동의 분열과 쇠퇴, 공권력 남용 같은 문제에 대해 쓸 지면도 모자란다는 말이었다. (중략) 우리는 시류를 읽어야 해. (중략) 세계가 급변하고 있는데, 개인의 윤리 문제를 다룰 지면은 없다고 했다. 타락한 개인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일 뿐, 그것을 정치와 사회의 흐름을 읽어 나가야 할 지면에서 굳이 다룰 필요는 없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 P.29, 20



이 구절은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여성 문제는 감히 사회 문제라는 단어를 쓰면서 문제 제기를 할 수 없었던 ‘일개’의 것임을 느끼게 한다. 당시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은 당연히 ‘문제가 있는’, ‘특수한’ 혹은 ’타락한’ 가정과 개인의 일로 당연시 치부되었다. ‘일개’ 여성 문제로는 설득시킬 수 없었던 시대. 암울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크게 다를 것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여성문제는 언제까지 사회문제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야 하는 존재인 것인지 의문이 들게 하는 구절이었다. 씁쓸한 과거를 되돌아보고 씁쓸한 현재 또한 바라보게 만드는 구절이다.

 


‘희영은 열어놓은 창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달랐겠지만.’


- P.58



머리가 띵했다. 나는 희영의 말대로 어느 정도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어느 정도가 아니라 완벽하게 ‘그런’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사회 문제에 대한 기사들을 읽고 그것에 대해 열을 내며 이야기를 하고, 혹은 글을 쓰지만 내 인생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그래도 관심을 가졌으니까.’하며 합리화하고 잠시 잊어버리는 그런 사람. 적어도 한 번쯤 특정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그 관심을 지켜냈어야 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부채감’을 털어버린다는 말이 왜 그렇게 가시 박히듯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사회 문제를 접하고, 관심을 표하고, 분노하지만 동시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시간이 지나면 ‘부채감 털어버리듯’ 잊는다. 마치 내가 해야 할 ‘몫’은 다 했다는 듯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표하는 것에 있어서 최소한의 ‘몫’이 과연 어느 정도이길래 나는 그렇게 행동한 것일까. 마치 나는 단 한 번도 사회적 약자였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처럼 오만하게 행동한 내 과거와 현재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또한 내가 나의 자리에서 어떠한 자세를 취하며 사회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는 후반부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읽어볼 것을 꼭 추천한다. 소설의 끝과 작가의 말이 별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한 인터뷰로 이루어진 작가의 말로써 소설의 끝이 진정으로 마무리가 된 느낌을 받았다.

 

전에 쓴 글에서도 이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 책등 문화매체의 아름다운 순기능 중 하나는 사회 문제와 그 속의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고 동시에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과 사회를 글이라는 존재의 특성으로 묶어낸 소설 ‘몫’은 이제 제목만 봐도 여운이 다시 되살아난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 사회 문제에 있어서 나의 ‘몫’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단편 소설 ‘몫’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길 바란다.



[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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