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활자가 펼쳐져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읽을 수 있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언어로 돼 있을 때, 우리는 무언갈 읽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히 책에 국한 되는 것만은 아니다. 나로 예를 들자면, 지하철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대형 광고판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아.. 오랜만에 새로운 광고판이 들어왔네. 이번에는 게임광고군. 한 번 시도해 볼까. 혹은 지하철 안 출입문 옆 쪽을 차지하고 있는 광고판에 임상실험 대상자들을 구하는 공고가 있을 땐, 이것에 참여하는 분들은 몇 명이나 될려나. 안 좋은 결과가 있으면 안 될텐데. 하며 오지랍을 부리기도 한다.
읽는 다는 행위는 단순히 활자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한동안 이런 당연한 사실을 망각한 채 살고 있었다. 무언갈 읽으면, 읽는 다는 것에만 의미를 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책을 정복한다는 느낌으로 읽었었다. 지식 습득을 위한 책을 읽으면 그것을 읽고 외우려고만 했고, 문학 책을 읽으면 줄거리를 습득하기 위해 읽었다.
그러나 읽음엔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읽음을 통해 우리는 변화한다. 나는 이런 사실을 작가님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상기하고 깨닫게 됐다.
김영하 산문, 읽다 - 간단한 작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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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장엔, 이러한 인용구가 들어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히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교양인의 책읽기, 비평가 해럴드 블룸) 나는 보자마자 머리가 띵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내 맘엔 새로운 세계가 하나씩 자리잡았다. 어렸을 적 판타지 로맨스 소설, 트와일라잇에 엄청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완전히 주인공 벨라에게 빙의돼, 부끄럽지만 벨라가 사랑하는 에드워드를 나도 사랑했었다. 그리고 일정부분 벨라의 입체적인 감정이 한 소녀의 성격형성에 영향을 준 것도 같다. 또한 철학책들을 읽으면, 기존의 사고방식이 뒤틀리고, 새로운 관념과 가치관들이 쌓이고 있다 라는걸 온 몸으로 느낀다.
하지만 나는 해럴드의 말과 달리, 그렇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다. 그러니까 때론 슬프다. 굳이 알고 싶지 않고, 느끼고 싶지 않았던 인물에게 감정적으로 이입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이 보다는 도저히 나의 상식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인물들이 나온 책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냥 제3자처럼 저 멀리 유리창 넘어 희미하게 보이는 나와 아무런 관련 없는 한 개의 상상 속 사건과 인물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나보코프의 [롤리타]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조나단 리텔의 [착한 여신들] ... 이런 소설을 읽는 것은 높은 수준의 긴장을 요구한다. 윤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주인공과 그들의 행위를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고,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감당하는 것도 힘겹다.- p.119
작품의 매력은 우리로 하여금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뫼르소와 험버트 험버트, 라스콜리니프와 정신적 힘겨루기를 하게 된다.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도덕하거나 사회적 통념과는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인물의 이야기에 왜 나는 매력을 느끼는가? 괴물인가?.....평범하고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는 내가 이런 이야기에 매혹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 P. 133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의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p. 17

위대한 선배 시인은 언제나 매혹적이고, 그렇기에 일정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영향이 후배 자신을 잠식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으로 선배의 영향과 싸우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는 개념이다.
- p.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