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담백한 사람이 되는 방법 [도서]

불교식 '마음 다스리기'
글 입력 2019.02.26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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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몸이 아닌 그 내부의 기능들이 삐걱거리다가 픽 소리를 내며 다운되어버렸다. 우선 감각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밥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음악은 소란스러워서 머리를 어지럽힐 뿐이다. 내면이 텅- 빈 것같다. 로봇처럼. 이게 더 심해지면 거리를 걷고 있는 것도 꿈결 같이 느껴진다. 현실감이 없다. 바깥의 무엇도 내게 닿지 못한다.


하지만 내겐 의지할 수 있는 게 있다. 사유다. 무엇도 느끼지 못해도 내 사유는 작동한다. 어지럽혀진 감각이 사유를 혼란스럽게 만들 바에야 차갑고 명확한 사유가 몸을 지배하도록 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유는 듬직하다. 사유만 작동한다면 나는 언제나 진리를 탐구할 가능성을 지닌 것이다.

그러나 내 감각 기능이 망가진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이것은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건 마치 죽은 몸에 의식만 떠다니는 것이 아닌가. 지나치게 내 안의 목소리에만 의지한다면 나는 정말 외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사유에만 의지하려는 나의 태도는 오히려 사유가 바깥 세상에서 오는 수많은 복잡한 정보들을 처리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이제는 뭐 하나도 맑고 명확하게 보여지지도, 사고할 수도 없다. 그저 머리가 뿌옇다. 나는 사유마저 고장내버리고 말았다. 결국 몸 내부 부품들이 다 망가져서 엉망이 된 것이다.

예전의 정상적이던 나는 어땠지? 기억도 잘 안난다. 그 때 책장 속에 학창시절 사놓고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이 하나 보였다. 한 일본 스님이 쓴 「생각 버리기 연습」이라는 책이었다. 펼쳐서 조금 읽어보고는 기절할 뻔했다. 책은 무려 '오감을 갈고 닦아 실제적인 감각을 강화시키는 생각버리기 훈련법'을 제안하고 있었다.


보통은 생각이 제멋대로 달리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결국 생각 자체가 혼란스러워져 둔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지나치게 많이 생각한 나머지 사고 장치에 녹이 스는 일을 막으려면, 생각 버리기 연습을 통해 충전 시간을 가져야 한다. 충전을 끝낸 뒤에는 예리함과 명철함으로 가득 찬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생각 버리기 연습」, 머리말



내 상황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책이 정말 약을 처방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하라는 대로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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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책이 진단한 나와 현대인이 처한 문제는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충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보거나 듣거나 만지고 있지만' 실제로 머릿속의 메인 메모리는 다른 '잡음'을 처리하느라 바쁜 것이다. 1초 동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0.1초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0.9초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현실감을 사라지게 하며, 행복감도 앗아가버린다. 일상에 그런 태도가 되어버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눈앞에 일어나는 일은 지나치게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에 별 볼일 없게 여기고, 부정적인 생각이 주는 자극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마음이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몰고 가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사고병(思考病), 즉 '생각병'이라고 정의한다.


원인

나는 머릿속을 잠식하는 잡념들을 걷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현실감을 앗아가는 원인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멋대로 휘둘리게 하는 이 부정적인 마음의 성향들을 '번뇌'라고 칭한다. 세 가지 기본 번뇌에는 분노, 탐욕, 어리석음이 있다. 나의 경우엔, 무지(어리석음)의 번뇌로 고통받고 있었다. 무지의 번뇌란 교양이 없다든가 머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스스로의 의식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 사고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앞에 있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 변화를 알아보지 못하고는 '늘 같은 얼굴이군, 지루해..'라며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현실과 의식의 실제적인 흐름에 대해서는 무지해지며 머릿속에 쓸데없는 개념과 망상이 들어차는 것이다. 즉, 무지의 번뇌는 마음을 실제적인 현실에서 뇌 속의 생각으로 도피시킨다.


해결책

그렇다면 무지의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지금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지금 설거지를 하고 있다면 생각해야할 것은 오후에 있는 저녁 약속이 아니다. 어떤 순서로 접시를 닦아야 효율적일지, 어떻게 해야 물을 최대한 적게 쓰고 세제를 아낄지를 생각해야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그 사람에게 온 정신을 집중해야한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일만을 생각하는 것, 쓸데없는 사고와 헛된 사고를 버리는 것, 더 나아가 번뇌를 극복하는 것은 불교의 시작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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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도 나타나는 주제다.
주인공 톰은 나중에는 더 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다.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누리는 것이
진정한 삶의 행복임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책은 생각병을 극복하고 삶의 충족감을 높이기 위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생각 버리기 훈련법'을 제시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각과 상황들을 [말하기 / 듣기 / 보기 / 쓰기와 읽기 / 먹기 / 버리기 / 접촉하기 / 기르기]로 나누어 실제 예시를 불교적인 관점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결국 이 카테고리들의 공통적인 메세지는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상에 집중하고 가치를 느끼라는 것이다.

나는 '달려나가는 생각에 브레이크 걸기'로 책이 제시하는 '바른 마음가짐 갖기'를 조금씩 실행해보는 중이다. 예전의 나는 사소한 풍경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말과 행동에 주의하면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한다면, 일상은 내게 다시금 아름다워질 것이다. 특정한 상황에 처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이 책의 해당되는 챕터를 펼쳐 조언을 구해보기를 권한다. 물론 일독하여 평소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저자가 알려주는 불교식 마음가짐과 행동을 받아들인다면, 필요한 말만을 하고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며 부드럽게 상황을 통찰할 수 있는 '담백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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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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