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활'이 가능하다면. 오버 더 초이스 [도서]

식물과 부활, 그리고 선택
글 입력 2019.02.2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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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가능하다면.

오버 더 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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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부활, 그리고 선택.


 

세상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중에도 신도 불가능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부활이다. 혹시 어디서 1년 전에 돌아가셨던 사람이 부활하여 살아났다는 것을 들어보았는가? 장담컨대 들었던 적이 없으며, 들었다고 하여도 실제로 보았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의학이 발달하여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기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에 반발하는 사람들 또한 있을 것이다. 인권의 문제도 되며, 어떠한 악의로 이 의학이 사용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되살아난 사람도 문제이다. 그 사람은 과연 과거에 존재하던 그 사람인가? 아니 애초에 사람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오버 더 초이스’를 통하여 들려주는 이영도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작은 동네가 있다. 동네 사람들끼리 모두 아는 사이이며. 서로 일이 없을 때에는 자주 모여서 이야기도 하며, 살림도 나누기도 하는 그런 따뜻하고 소박한 도시이다. 어느 날 옆집의 딸아이가 갱도에 매몰되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7일 동안 매몰되어 묘비에 정확한 사망 날짜도 기록할 수 없는, 그런 참담한 사고였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가? 반을 잃어버린 엄마는 남은 독초를 통하여 나머지 반 또한 포기하는 시도를 한다. 간신히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난 그녀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한다. 자신이 부활할 방법을 찾았다고. 칼을 찾아서 지상과 지하의 주인에게 바치면 그 주인이 부활을 행해줄 것이라고. 슬픔과 독에 의하여 환상을 보았다고 느끼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보통은 큰 사고 이후 현실부정을 하는데 이 엄마는 자신이 딸이 죽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다시 부활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비애에 갇혀 정상적인 사고를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안일한 생각이 걱정으로 변한 것은 이 엄마가 다른 집의 아이들을 습격하고 나서부터였다. 밤중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공격하고 죽이려고 한다. 어차피 부활할 것이니 죽어도 상관없다고. 다른 부모들도 느껴보아야 한다고.


 

 

2.



보안관의 조수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작은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장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그 자부심만큼 무술 또한 뛰어나다. 칼을 쥔 자는 그 무게를 알아야 한다고 하던가. 그의 무게감에 걸맞게 이전에 자신의 마을에 위협되는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그것에 대한 죄책감은 남아있다.

 

부활을 믿는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공격하고 다닌 이후, 며칠 뒤 자신이 죽인 사람이 부활하여 되돌아왔다. 묻을 때 같이 입혔던 수의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자신이 지하와 지상의 전령이라고 소개하였다. 보안관 조수는 내심 안도하였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되돌아오다니. 자신의 죄책감이 사라진 것 같았다. 사과도 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해 달라고. 하지 못하였던 말을 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였다.


 

 

3.



예술을 사랑한다. 하지만 언제나 현금이 부족하다. 물질과 예술은 반비례한다고 하지 않는가. 유명한 화가들은 대부분 사후 그 실력과 가치를 증명받았다. 뛰어난 악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경쟁자들이 많다. 가장 큰 경쟁자를 제거야해만 한다.

 

독을 준비하였다. 술에 아무도 모르게 넣었다. 상대가 마신다. 이제 얌전히 죽으면 끝이다. 이런, 상대는 엘프, 독에 내성이 있다. 이러면 어쩔 수 없이 상대를 물리적으로 죽여야 한다. 나는 라이칸스롭프, 일대일 싸움에는 있다. 나를 억제하는 은팔찌를 집어던지고 인간에서 야수로 변신한다. 경쟁자를 공격하는 순간, 보안관 조수가 보인다. 그를 먼저 쓰러트려야겠다. 시골의 촌놈이 무슨 공격력이 있을까. 

  

깊은 잠을 잤다. 꿈도 꾸지 않은, 그런 매우 깊은 잠. 일어나니 하얀 수의가 입혀져 있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마을로 내려가서 내가 아는 사실을 전해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나를 죽인 보안관 조수를 만났다. 그에게 정보를 준다. 지상과 지하의 주인이 인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더 이상 식물을 태우지 말 것. 경고에도 불구하고 태운다면 식물이 태워지는 것을 거부하여 120일 이내에 인간의 1/3을 멸종시킬 것이라고. 만약 태우지 않는다면 인간들에게 무한한 부활을 약속한다고. 나도 이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야 하기에 하는 것.

 

전달 후, 나를 죽인 보안관 조수가 사과의 말을 한다. 고맙게 받아들인다. 돌아가시기 전에 잘하라는 말, 이제는 소용이 없나보다. 생전 약혼자를 만나러 간다. 이전처럼 반갑게 그를 보러간다. 기대된다. 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너무 그리워서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동한다.


 

 

4.



약혼자가 죽었다. 정당방위였고, 법률이었다는 것 또한 안다. 그녀를 떠나가고 싶지 않다. 그녀가 묻힌 마을에 정착하면서, 가끔 보안관 조수를 죽이는 상상을 하며 그렇게 모두의 친절한 이웃으로 살아간다. 아이가 죽은 어머니가 그에게 소리친다. 더 이상 약혼자를 못 보아서 고통 받을 필요가 없다고. 칼을 찾아 바치어 지상과 지하의 주인, 즉 식물에게 그녀를 부활시켜달라고 하자고 한다. 헛소리다. 헛소리여야 한다. 만약 진짜라면?

 

가끔은 현실에 없다고 굳게 믿은 현상이 발생한다. 그녀가 돌아왔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내가 아는 그녀와 똑같이 생겼고, 행동하고, 말하지만 본능이 말한다. 그녀는 이전의 그녀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저것은 가짜다. 가짜에게 명령한다. 은팔찌를 벗고, 다시 라이칸스롭프로 변신해보라고.

 

아니나 다를까 변신하지 못한다. 가짜는 진짜를 대신할 수 없다. 원본을 똑같이 그린다고, 흉내를 낸다고 하여도 그것은 원본이 아니다. 진짜와의 추억, 원본에 대한 기억, 그녀에 대한 사랑은 똑같은 가짜가 감히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슬프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울고 있는 가짜가 다가와 나의 눈물을 닦아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만이 할 수 있는 것. 가짜를 밀어낸다. 가짜를 보낸다. 그녀는 내 안에서만 존재한다.


 

 

5.



죽었던 아이 또한 돌아왔다. 나무가 뿌리에서 아이를 충분히 흡수하여 부활시킨 것이다. 여전히 천진난만하다. 부모에게 달려간다. 그리웠던 부모를 다시 만난다.

 

사고당했던 아이가 돌아온다. 나무가 뿌리에서 아이를 충분히 흡수하여 부활시킨 것이다. 여전히 발랄하다. 부모에게 뛰어간다. 그리웠던 부모에게 다시 안긴다.


갱도에 매몰되어 숨졌던 아이가 다시 돌아왔다. 나무가 뿌리에서 아이를 충분히 흡수하여 부활시킨 것이다. 여전히 겁이 많다. 부모에게 조심스레 달려간다. 그리웠던 부모를 껴안는다.

 

하나가 아니다. 아홉이다. 뒤에서 더 오고 있으니, 그 수를 더하면 열 명은 족히 넘는다. 부모는 어떤 표정일까. 기뻐하는 표정이다. 천천히 그들을 껴안으면서,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아이들을 열심히 사랑해준다. 필사든, 원본이든 이제는 상관이 없다. 이 아이들과 함께라면 언제나 행복할 것이다.

 

보안관 조수에게 죽었던 아이가 인사를 한다. 그녀가 말한다. 갱도에서는 너무 시끄러웠다고. 무서웠다고. 그래서 죽고 싶다고 생각하였는데, 진짜 죽었다고. 이어서 말한다.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고. 죽지 말았어야 했는데,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조수는 위로해준다. 너 잘못이 아니라고. 그리고 다짐한다. 모든 마을사람들에게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조금만, 아주 조금만. 잊히지 않도록. 아이가 모두의 아이가 되도록.

 

 

 

외전


 

너무 뜬금없을 것이다. 라이칸스롭프가 왜 나올까? 하고. 이 세계관이 판타지 세계관이라는 것을 미리 말하지 못하였다. 현실의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세계, 그것이 판타지 세계다.

 

지상과 지하의 주인은 식물이다. 하늘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공중에서 살아가지 않으니까. 지상에는 튼튼한 기둥이 있으며, 지하에는 기둥을 받치는 뿌리가 있다. 그 뿌리로 영양분을 흡수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부활을 시키는 것이다. 부활의 능력을 가지게 된 식물은 동족들의 죽음이 생태계에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동물계에게 식물을 태우지 말 것을 협박식으로 전달한다. 대신 무한한 부활을 약속한다.

 

부활이 무한정으로 가능해지면 어떤 세상이 올까. 인간들은 예술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멋진,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더 이상 죽음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 다시 살아날 것이니깐. 과거의 영웅들도 돌아온다. 전염병이 두렵지 않다. 어디가 아프면, 바로 죽으면 된다. 무엇이 두려운가.

 

슬픔이 없어진다는 것이 제일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왜 슬퍼할까. 사랑하기에 슬퍼한 것이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둘은 가역적인 관계이다. 그렇기에 하나라도 사라지면 다른 하나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슬픔이 사라진다. 사랑도 사라진다. 관심도 사라진다. ‘저녁 드셨어요?’라는 인사말도 필요 없다. 안 먹었으면 죽으면 그만이지. 무엇을 하던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다.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은 가축을 다 죽인다. 고기가 필요할 때에만 부활시켜 가축을 도살한다. 동물들이 밥을 먹든 무슨 상관인가.

 

악질은 계속 존재한다. 살인마를 사형시켜도 다시 부활한다. 범죄자는 계속 범죄자로 살아간다. 전쟁은 장난으로 변한다. 어린이는 어린이로밖에 남을 수 없기에, 어린이를 향한 폭력은 끊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이다. 살아가기 위해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살아갈 필요가 없다. 그냥 죽으면 된다. 알아서 부활하는데.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죽이고 뺏으면 된다. 죄책감도 없다. 부활할 것인데, 무엇하러 죄책감을 느끼는가?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는 알다시피 매우 귀찮은 존재이다. 그래서 아이가 아사하도록 놔둔다. 다시 부활할 것이니까. 사랑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알아서 살아갈 것이니깐.

 

부모가 왜 아이를 사랑하는가. 그리고 왜 아이의 죽음에 슬퍼하는가.

살인에 죄책감을 왜 느끼는가.

돌아오지 못하는 것에 왜 눈물을 흘리는가.


하나이기에. 한 번이기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동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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