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르셀 뒤샹 展》 그의 반(反)예술은 예술의 총체였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9.02.2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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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에 대한 책을 읽으면 뒤샹에 대한 이야기가 반 이상은 차지하는 듯하다. 넓게는 인상주의부터 시작되는 현대미술의 계보는 뒤샹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현대미술의 전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서 그럴까. 예술에 있어 전위는 수도 없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뒤샹의 전위는 유독 특별하게 여겨진다. 뒤샹의 전위의 본질은 ‘예술을 하지 않은 것’, 즉 반예술에 있다. 기존의 전위는 예술의 범위 내에서 일어났다면 뒤샹은 아예 그 틀을 깨며 동시에 예술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전위로 등장한 개념들이 전위의 의미를 망각하여 금세 타파해야 할 인습으로 전락했던 것과 달리, 기존의 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해 가차 없이 반격을 가하는 뒤샹의 반예술 정신은 지금까지도 남아 안티테제로 작동하며 현대미술의 장을 환기시킨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년 12월에 개최하여 4월까지 전시 예정인 <마르셀 뒤샹> 展은 뒤샹 사후 5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다. 뒤샹의 대표 작품은 물론 만 레이, 프레데릭 키슬러를 비롯한 당대 작가들의 관련 작품, 뒤샹을 소재 삼은 작품을 포함하여 약 150점으로 구성된다*. 미술의 개념을 해체한 현대미술의 아버지, 뒤샹의 흔적을 좇아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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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이른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방학 기간이라서 그런지 많은 관객으로 북적였다. 국내에서는 소변기를 작품화한 <샘>이나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수염을 덧그린 로 유명한 그의 전시가 국내에서, 그것도 대규모로 개최된다는 소식에 설레는 발걸음으로 미술관에 들어서는 관객들이 보였다. 회화 작품뿐 아니라 영상 매체나 작가 및 작품에 대한 설명을 아카이브하여 다양하게 전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널찍한 공간이 과연 뒤샹을 어떻게 담아냈을지 생각하며 전시회 입구에 들어섰다.



1. 화가의 삶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주제에 따라 구획되어 뒤샹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본다. 전시의 포문을 여는 1부는 뒤샹이 미술을 막 시작했던 순간을 담는다. 흔히 뒤샹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레디메이드 및 오브제 작품이 아닌 스케치나 유화 등 회화 작품으로 전시가 시작되어 낯설고 생소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그의 ‘개념’이 살아 숨 쉰다. 비서술적이고 그림의 주제와 상관없는 제목이나 임의적이고 자연스럽지 않은 색채는 비자연주의자이자 다다이스트였던 그의 미술 세계를 선연히 드러낸다.

뒤샹의 반예술은 역설적으로 예술이 축적된 결과였음을 설명하듯 1부에서는 젊은 시절부터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그가 동시대 미술의 급변하는 흐름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소나타>에는 입체파 형식을 배웠던 그의 화풍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외의 작품에도 부유하는 사물과 입체적으로 분할된 면은 입체파 형식과 더불어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화풍 역시 연상케 한다. 입체파 형식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신부>를 지나며 점점 옅어지다가 <초콜릿 분쇄기>에서 나타난 거의 완벽하게 평면적인 색채와 함께 기계의 구조적 형태를 강조하는 화풍으로 전환된다. 뒤샹은 현대미술의 흐름에 대해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그가 좋아했던 체스처럼 뒤샹은 동시대 미술의 수를 읽고 자신의 수를 두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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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부터) 소나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초콜릿 분쇄기



2.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동시대 미술의 물결을 하나하나 그림에 녹여가며 예술 세계를 구축한 끝에 뒤샹은 ‘예술적이지 않은 예술’을 하기 시작했다. 본래의 예술의 개념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뒤샹은 작품의 외현적 특징보다 작품 안에 담긴 개념을 중시하는 ‘개념미술’과 미학적 특징이 없는 대량 생산품의 본래 기능을 삭제하고 미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작가의 손길을 신격화했던 기존의 미술계에 통렬한 조소를 보냈다.

가장 대표적인 레디메이드 작품인 <샘>을 포함하여 최초의 레디메이드 작품 <자전거 바퀴>, 병걸이…. 별것이 다 예술이란다. 뒤샹에게 예술이란 ‘별것도 아닌 일’이었다. 누구나 예술가가 되며 그 어떤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재현된 오브제 혹은 오브제를 찍은 사진으로 전시되었으나 원작의 아우라는 더는 중요하지 않다. 뒤샹의 오브제를 사진으로 찍어 복제 가능한 매체로도 작품의 가치를 보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한 사진작가처럼 사진을 남기고 싶었으나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고지에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유리 벽에 갇혀 촬영이 금지된 곳에서 관객들에게 신성시되는 ‘변기’를 보니 별것이 다 예술이 되는 뒤샹식 역설의 발현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뒤샹이 이 장면을 보면 좋아할지, 혹은 좌절할지 상상해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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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로즈 셀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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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은 예술과 반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여성과 남성,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 또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마저 허문다. 젠더 개념에 균열을 가하기 위한 일환으로 그는 자신의 여성 정체성을 주장하며 ‘에로즈 셀라비’라는 이름의 여성 자아를 드러낸다. ‘에로스, 그것이 나의 삶’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이름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대해 자유분방하고 진실하게 다루면서도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고정관념이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한 뒤샹의 역설적 인간관을 함축한다. 진실과 거짓을 뒤집는 뒤샹의 유희적 발상은 사진작가 만 레이가 사진으로 남긴 <벨 알렌>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뒤샹은 향수 공병에 '벨 알렌'이라고 쓰여 있는 가짜 라벨과 '에로즈 셀라비'로 분한 자신의 사진을 붙였는데, 어느 것 하나 진실인 게 없다. 뒤샹은 기존의 이분법을 보기 좋게 파괴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다.

뒤샹은 광학 기기에도 관심을 가지며 시각에만 의존하는 예술에 반기를 드는 '항망막 예술'을 표방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성적인 용어가 박힌 채 돌아가는 회전판 그림은 관찰자의 눈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뇌리에 성적인 사고가 스치게끔 하는데, 이는 작가의 손을 떠나 전적으로 관찰자 주체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가 되며 그럼으로써 또 다른 작품이 만들어진다. 뒤샹은 미술관에 굳건히 자리하던 작가와 관객의 이분법 역시 허물며 누구나 예술을 하는 세계를 창조해낸다.



4. 우리 욕망의 여인


마지막 4부에서는 뒤샹 최후의 작업인 '에탕 도네(Etant donnes)'가 비밀스럽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재현한다. 여기서는 '에탕 도네'를 구성하는 재료 및 요소들과 제작 배경 등을 이미지와 오브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아카이브로 전시한 후 현재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을 재현한 영상을 상영한다. '에탕 도네'는 나무문 너머 벌거벗은 여성의 몸과 폭포 등 자연의 모습을 이미지화한 설치 작업으로, 관객들은 문에 뚫린 작은 구멍 사이로 풍경을 보면서 자신이 선택한 시야를 통해 주체적으로 작품 해석에 임할 수 있게 된다. 작품을 재현한 영상은 작품에 담긴 뒤샹 예술의 미술사적 의의을 함께 소개하며 전시를 요약한다. 1부에서 다른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뒤샹의 초기 작품을 소개했다면, 2부와 3부에서는 그 흐름을 자기화한 뒤샹의 작품 세계를 전개하고 마지막 4부에서는 현재 우리에게 도달한 그의 영향을 소개하며 동시에 관객에게 주도권이 넘어왔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뒤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전위가 또 다른 인습이 되는 메커니즘에 언제나 부딪힐 수밖에 없는 우리가 동시대적 맥락에서 뒤샹의 가치를 현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찰해야 한다. 이 가치가 발현되지 않는다면 결국 뒤샹의 파격도 언젠가 고리타분한 구습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뒤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에탕 도네'를 끝으로 관람을 마치고 나온 순간, 미술관에서 기획한 '나만의 레디메이드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보였다. 가족들과 함께 온 어린이들이 각자 기성품들을 골라 작품화하고 있었다. 전시에 포함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나는 이것이 뒤샹의 전시를 끝맺는 최고의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레디메이드와 항망막 예술, 에탕 도네를 통해 시종 관객의 주체성과 예술의 보편성을 주장한 뒤샹의 정신은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프로그램 신청만 하면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바로 그 곳에서 발현된다. 뒤샹의 정신은 그렇게 영원한 전위로 우리 곁에 남는다.

미술관을 나오는 거리에서 공교롭게도 철물점에 놓여 있는 변기를 보았다. 이 변기를 당장 미술관에 갖다 놓아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현대미술 작품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곳에서 예술이 탄생할 가능성을 떠올려도 이상할 게 없다. 이것이 뒤샹이 의도한 개척이었을까? 그가 소망한 예술의 미래를 상상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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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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