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선구자들의 지혜, <사서> [도서]

이치를 담은 네 권의 책, 사서
글 입력 2019.02.12 00: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카페에 앉아 <사서>를 읽고 있으니, 그 살벌한 두께를 보고 친구가 1차로 놀랐다. 그리곤 읽고 있던 책을 빼앗아 겉표지를 확인하더니, "대학..논어..맹자..중용..? 공자??"하며 더 놀라더라.


377bcabfd3e8b28c8fa0e24720090366_9S83dP9SK2PRcgnzLGHqI.jpg
 
고등학교 2, 3학년에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윤리와 사상.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은 인터넷 강의 강사, 김성묵 선생님이었다. 그분이 워낙 동양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고 쉽게 알려주어서 수년이 지난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물론 개념이 생생히 기억나기보단 흥미롭게 듣던 '느낌' 자체만이 남았다. 관심도 있고 좋아했지만, 수능을 끝으로 손을 뗀 동양철학을 머리가 굳은 나이에 다시 공부하자니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빌린 몇몇 동양철학 책들은 표지부터 읽기 싫게 생겼고 온라인 속 수많은 영상은 그때의 감동을 재현하지 못하더라. 그렇게 몇년 간 동양철학에 갈증이 있던 내게 이 책을 누릴 기회는 선물처럼 등장했다.

<사서>는 유교의 경전인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합한 명칭이다. 이 네 권의 책을 묶어 사서로 이름 붙인 이는 주자(주희, 1130~1200)이다. 총 4권의 책을 엮었다니 두꺼울 것은 미리 짐작했지만 실제로 받아보니 더 어마어마한 두께였다. 한 자도 보탤 수 없고 한 자도 덜어낼 수 없다는 주자의 말처럼 책을 펴면 한글과 한자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이 고전을 현대식으로 풀어낸 책의 저자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오늘날 독자들에게 나누어주겠다, 시작하는 글에서 말했다. 21세기를 사는 나에겐 1130년의 세계란 짐작할 수도 없이 멀리 느껴지지만, 책을 읽다 보면 괜히 유교의 나라가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친숙한 이야기이다.


수정됨_KakaoTalk_20190211_204310980.jpg
 

이 책이 다른 책들과 특별한 점은 책을 대하는 나의 방식에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원래 책을 볼 땐 깨끗이 보는 편이어서 구김 하나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서>는 형광펜을 들지 않고는 못 베기게 했다. 아주 사소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내겐 아주 큰 변화였다. 아무리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래도 사진으로 남기는 게 다였던 내 나름의 책 읽기 '룰'을 어길 만큼. 도저히 이 문장을 그대로 지나치면 이 수많은 글자 속에 파묻혀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 중요한 걸 보고서도 지나친 듯한 찜찜함이 그간의 규칙을 이겼다. 그리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을 땐 마치 수능을 준비하던 고3으로 돌아간 기분도 들었다.

주자가 사서의 독서법으로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순서로 읽는 것을 추천했다. '대학'에서 공부의 자세와 틀을 갖추고 '논어'에서 사람을 사랑하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고, '맹자'에서 인간의 본성과 정의를 참고한 뒤, 마지막 '중용'은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우주자연의 질서로까지 발전한다. 중용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삶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실 리뷰를 쓰라 주어진 10일 안에 모두 읽기란 잔인할 정도의 두께 때문에 심히 부담스러웠다. 무게도 무거워서 여느 책처럼 손에 들고 보면 손목이 뻐근해서 들고 다니며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다 못 읽었다. 아직 중용까지 가지 못한 나의 배움의 단계는 맹자에서 머무는 중이다. 더 변명하자면, 워낙 책을 정독하는 스타일이라 한 장을 넘기는 속도도 더디다. 그렇지만 덕분에 선구자들의 말을 천천히 곱씹고 있다.



고전 철학서, 왜?


그중 <논어>는 인상 깊다. 논어는 공자 사후에 제자들이 그의 말씀을 엮은 책으로, 공자 이외에 제자들의 일화도 담겨있다. 논어를 읽으면서 '왜 현대인들이 고전 철학서를 읽어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을 했다. 몇천 년 전의 책을 왜 21세기에 읽어야 할까.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생각도 바뀌었는데 그 옛날의 유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게 오늘날 사람들에게 와닿기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도 고민했다. '온고지신 溫故知新'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옛 학문을 공부하여 지금에 비춘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가 가능한 것인지.

그러나 그 의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앞선 <시작하는 말> 속 저자의 말처럼 '왜 현대인들이 고전 철학서를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사서 안에 있었다.


수정됨_KakaoTalk_20190211_204309124.jpg
 
수정됨_KakaoTalk_20190211_204312423.jpg
 
     
책을 넘기다가 인상적인 부분들에 표시를 해두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밑줄이라도 긋지 않고 넘겨버린다면 머릿속에서 날아갈까, 형광펜을 들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즉, 과유불급. 이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사자성어이다. "뭐든 지나친 것보다는 모자란 게 나아."라고 말하기보단 "과유불급이야."하고 뱉는 것이 더 편하고 와닿지 않나. 이렇게 일상에서 흔히 쓰는 사자성어들이 공자의 말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위에서 언급했던 '온고지신'이란 성어도 실은 <논어>의 일부분이란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었나. 결국 공자나 다른 성인군자들의 말과 언행이 오늘날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너무 와닿는 구절이다. 밑에 저자의 한 줄 해석으로 달아놓은 짧은 문장보다 공자의 원문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아마 이래서 저자도 원문을 그대로 옮기고자 노력한 게 아닐까.

직접 책을 읽고 느끼는 것은 구전으로 전해져 온 명언을 듣는 것보다 더욱 값지고 진정성있다. 이 때문에 고전 철학서를 읽으면 수천년의 지혜를 얻는다고 말하는 거겠지.





다만, 몇 세기가 흘러 현대인이 된 우리에게 사서 속 사상들이 온전히 공감받진 않는다. 유교 특유의 가부장제라던지, 주군과 백성, 부모에게 속박된 자식의 역할 등 시대착오적 요소들도 많다. 원문을 그대로 옮겨왔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혹은 맹자가 말한,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하다는 성선설이나 맹자와 고자의 논쟁 등은 조금 더 비판적으로 보였다. 특히 맹자와 고자의 논쟁 중 그 유명한 버드나무 논쟁은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읽힌다.

"인간의 본성은 버드나무와 같아서 이것을 재료로 어떻게 나무 그릇을 만드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라는 고자의 말에 맹자가, 나무 그릇은 버드나무의 결을 살려 만든 것이지 그 결을 거스른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즉 성선설에 기반하여 사람의 본성이 원래 선하단 것이 맹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고자는 인간의 본능은 선과 악으로 분류될 수 없다는 성무선악설을 주장한다. 이 둘의 토론은 점차 심화되지만 둘의 대화에서 논리적인 근거는 찾기 힘들다. 특히 맹자는 고자의 주장에 대해 지적하며 그를 뒷받침할 근거를 대기보다는 상대방 주장의 허점을 파고드는 화법을 내세운다. 몇천 년이 흘러 두 인물의 논쟁을 글로 읽는 삼자의 입장이지만 둘의 토론이 '대화'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아무래도 역사서는 기록하는 이의 입장에서 쓰이기 때문에 <맹자> 측의 입장에 많이 기울어진 느낌도 받았다.

사실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을 공부하던 그 시기에도 맹자와 고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맹자 저거저거, 완전 고집불통이라며. 원래 고전철학자들의 고집은 센 것인지, 둘다 제 말이 바르다 주장만 하지, 남에 의견에 귀 기울일 생각은 없는 듯하다. 시대가 달라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은 현대인에 눈엔 그렇게 보였다.

*

공자가 말했듯, 사람은 배우기를 멈추면 안 되고 골고루 배워야 한다. 배움을 편식하지 말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의 말처럼 잘 살아가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의 대부분은 과거에서 온다. 특히 먼 과거의 흐름을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를 준비한다. 그 안에는 가르침이 존재하기에 아무리 시간이 흐른들 절대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돈과 명예를 위해 무한경쟁을 하는 오늘날, 다치고 상처받은 정신을 달래기 위해 '심신안정서'나 '처세술' 같은 책들이 유행한다. 나도 그런 책들을 옆에 끼고 살아봤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효용은 없었다. 이제는 더 과거로 흘러 들어가 역사 속 성인 聖人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그들의 말에 온전히 공감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삶의 기준과 사람을 대하는 가치를 제안받을 수 있다. 어떤 것에 기준을 두어야 하고, 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모두가 잘살 수 있을지를 말하던 책이 바로 이 사서이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최고의 인문서, <사서>. 한때 유행했던 한 줄 명언서처럼 자기 전에 한 장, 또는 한 챕터 정도 읽고 자는 것을 추천한다. 책이 아주 크고 두꺼우니 목베개로 삼을 수도 있고 일거양득!





사서
- 이치를 담은 네 권의 책 -


엮은이 : 신창호

출판사 : 나무발전소

분야
인문, 동양철학

규격
신국판(152*225)

쪽 수 : 764쪽

발행일
2018년 11월 29일

정가 : 33,000원

ISBN
979-11-86536-61-2 (03100)




  
377bcabfd3e8b28c8fa0e24720090366_l9Iibrz9Yj6Xuey43JhNrB.jpg
 



[장재이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