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KY캐슬 결말의 진한 아쉬움 [문화 전반]

용두사미와 해피엔딩은 다르다.
글 입력 2019.02.0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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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토요일, 비지상파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갱신했던 JTBC 드라마 ‘SKY캐슬’이 종영했다. 바야흐로 ‘스캐’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남녀노소와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사랑했다. 어딜 가나 “혜나 누가 죽였을까?”라는 질문을 주고받기도 했고, 나의 지인 중 한 명은 드라마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귀를 막고 지하철에 탔을 정도였다.



SKY캐슬을 사랑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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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드라마를 챙겨볼 만큼 부지런한 성격도 아니고, 모든 서사가 100분 내지는 3시간 이내에 마무리되는 연극과 뮤지컬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SKY캐슬도 늦게 정주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흔하디흔한 입시 소재 드라마일 것이라 생각했던 난, 어느 순간 텔레비전 앞에 앉아 멍하니 드라마에 빨려 들고 있었다.

입시 소재 서사가 가질 수 있는 치명적 단점은 ‘뻔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입시에 목매는 엄마들을 겨냥해 사교육과 경쟁을 비판하는 주제. 드라마 시청자들은 다큐멘터리나 교육방송을 보고 싶어서 텔레비전 앞에 앉은 것이 아니기에 이런 뻔한 주제의 드라마는 외면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SKY캐슬은 입시를 치밀하게 파고들어, 왜 그들이 입시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는지, 왜 대한민국에서는 수억 원의 돈을 들여 의대에 가야 하는지 등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뿐만 아니라 모든 주연이 여성이라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칫 입시 드라마에서 가질 수 있는 여성혐오적 요소들이 비교적 적었고,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갈등과 연대, 성장의 스토리를 이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시청할 가치가 충분했다.

적어도 결말 전까지는.



강렬한 충격은 어디로



SKY캐슬이 회를 거듭할수록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서사가 가진 힘 때문이었다. 다음 화를 보지 않고서는 궁금해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서사의 힘이다. 저 캐릭터가 이다음에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저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 앞으로 저 사건을 무마하려면 이 캐릭터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등 시청자가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문학 작품에 숨은 화자의 발화 의도와 대상이 가진 의미를 해석하는 데 이골이 난 한국인들은 드라마를 볼 때도 상당히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서사를 뜯어본다. 캐릭터나 서사 둘 중 하나로 빈약한 작품이라면 시청자들은 금세 생각을 멈추고 채널을 돌린다. 이미 머릿속으로 다음 전개가 그려지기 때문에 굳이 이 채널에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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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라마나 영화는 유튜브와 SNS보다 더 재미있고 더 강렬해야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 SKY캐슬은 매 회 충격적인 전개와 입체적인 캐릭터로 힘 있게 스토리를 전개해 나갔다. 그랬기 때문에 시청률이 점차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 한서진은 단순히 자식 대학에만 눈을 밝히는 ‘멍청한’ 엄마가 아니었다. 조금 더 잘 살기 위해, 더 대접받기 위해 신분까지 속이며 자식에게 헌신하는 ‘똑똑한’ 엄마였다.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은 시종일관 검은색 옷으로 자신을 감추고 비밀스럽게 캐릭터를 조종했다. 이렇듯 단순하지 않은 캐릭터 성격과 구도가 이 드라마의 본질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결말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충격적인 전개와 입체적인 캐릭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는데, 결말은 이보다 더 납작하고 뻔할 수가 없었다. 용두사미와 해피엔딩은 다르다. 시니컬한 태도로 한국의 무한경쟁을 비꼬던 초반 서사는 어디로 가고, 마치 이 경쟁 자체가 개인의 무지와 욕심에서 비롯된 잘잘못인 양 묘사했다. 만약 이 드라마의 주제가 ‘자식을 서울 의대에 진학시키려 안달이 난 엄마들을 비판하는’ 것이었다면 성공적인 결말이었겠다. 하지만 단언컨대, 초반 서사에 매료된 시청자 중 그 누구도 저런 뻔한 주제에 이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성이 주체가 된 여성혐오 서사



여성이 주체가 된 드라마인 것은 사실이다. 메인 포스터에도 여성들만 등장했고, 메인 롤도 여성이었으며 서사의 중심 갈등도 여성 캐릭터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성이 주체가 되었다 하여 여성혐오적 요소가 배제된 건 아니었다.

난 지난 SKY캐슬 리뷰 오피니언에서 이 드라마가 경력단절 여성이 자식에게 열정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묘사한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 화를 보면서 그 글을 쓴 과거의 나에게 질타를 퍼부었다. 여성 중심 서사에 너무나 목말라있어서 그랬는지 과하게 해석했던 게 아닌가 싶다. 마지막 화에서 주인공 한서진은 캐슬을 떠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주민이 입주한다. 남편의 직업은 의사, 본인도 한때 치과 의사였으나 자식 교육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 경력을 단절한 후 캐슬에 입주했다. 그리고 캐슬 주민들에게 묻는다. 입시 코디네이터를 아느냐고. 그리고 캐슬 주민들은 그녀를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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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캐슬의 결말이 실망스러운 두 번째 이유는, 한국의 무한경쟁을 마치 개인, 심지어 여성 개인의 탓인 것처럼 묘사하는 동시에 남성들이 여성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중립자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자식 교육을 위해 왜 여성들만 직업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왜 여성은 육아와 경제적 사회생활을 병행할 수 없는가? 여성의 경력 단절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봐도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의문이다. 초반의 시니컬했던 주제의식으로 이런 의문점을 건드렸다면 정말 최고의 여성 서사가 만들어질 수 있었으리라는 미련이 계속 남는다.

그리고 남성들의 각성 또한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자식에게 총구를 겨눌 만큼 폭력적이었던 아버지가 개과천선을 한다든지, 모든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던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을 어머니에게 돌리고는 수염을 밀고 새 사람이 된다든지 하는 클리셰가 왜 여성에겐 적용될 수 없었을까. 어째서 여성 캐릭터가 주연인 드라마에서까지 여성은 우유부단하게 고민하다 남성 캐릭터의 활약으로 갈등을 끝내야만 했을까. 결말을 곱씹다보면 끊임없이 미련을 가지게 된다. 이게 다 초반 서사가 너무나 강렬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입체적 서사의 결말이 이렇게나 평면적이라니, 하는 원망마저 어렸다.



그래도, 그나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KY캐슬이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비단 비지상파 최고의 시청률 때문이 아니고, 중년 여성과 청소년 여성이 주체를 이루고도 이렇게나 재미있는 스토리를 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결말이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도 같다. 그만큼 초중반 서사가 탄탄했고 획기적이어서 웬만한 결말로는 성에 안 찼을 법도 하다.

한 가지만 첨언하고 싶다. 용두사미와 해피엔딩은 다르다는 것. 하지만 설령 용두사미라 해도 여성 주인공 드라마는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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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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