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갈라진 화면 사이의 새로운 세계 [전시]

글 입력 2019.02.0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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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큐비즘, 전시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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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입체주의의 탄생부터 소멸에 이르기까지, 총 5개의 섹션을 통해 연대기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지점은 큐비즘이라는 전시 이름에 걸맞게 큐비즘의 탄생부터 다룰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세잔의 원시미술부터 출발했다는 점이다. 입체주의가 수백 년동안 견고하게 유지되던 아름다움과 형태의 두꺼운 법칙을 깨고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이번 전시는 그 태동부터 추적해 보여준다.


후기 인상주의의 대가이자 근대회화이론을 새롭게 정립한 폴 세잔, 그리고 그 이전에 탄생했던 야수주의 작가들의 변화하고자 하는 욕구가 어떻게 입체주의의 탄생과 연결되는가? 피카소를 기대하고 발을 들였던 전시장에서 세잔을 만나 당황스러웠지만, 섹션을 다 돌고 나니 전통회화와 현대미술의 연결지점에 서서 대중들에게 가장 미움받는 입체주의에 대해 역사적 의의와 사조의 흐름을 파악하기에 매우 적절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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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피카소, 르 비유 마르크 술병, 1914
 

두 번째 섹션에서부터는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이 소개되며 본격적으로 입체주의의 탄생을 다루기 시작한다. 초기 입체파 작품들은 형태에 집중해 색채마저도 거의 절제되어 있기 때문에, 솔직한 말로 보는 재미가 큰 작품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혁명같은 작품들을 원화로 만나볼 기회가 또 얼마나 될까? 프리뷰에 썼던 대로 가만히 서서, 입체파의 거장인 피카소와 브라크, 그들이 쪼개놓은 새로운 세상을 보는 데 집중했다.


양차대전의 사이에 놓인 격동기, 카메라가 등장하고 산업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갈구해야만 했던 새로운 색채와 형태, 더 새로운 것, 더 창조적인 것, 미와 추의 개념이 뒤섞이는 지점에서 갈라진 화면과 일그러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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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르 들로네, 에펠탑, 1926
 


세 번째 섹션부터는 조금 더 재밌어진다. 피카소와 브라크를 중심으로 탄생한 입체주의가 동시대 작가들에게 뻗어나가면서 색, 형태, 화면분할 등 다양한 면에서 작품들이 풍부해지기 떄문이다. 이 시기 작가들은 섹시옹도르, 즉 황금분할파로 불리는데 회화에 기하학적 공식을 도입해 황금분할법을 응용했고, 야수주의적인 강렬한 색감을 사용했다.


확실히 피카소와 브라크의 초기 작품처럼 갈색, 회색, 푸른색 위주의 정적인 작품들보다 훨씬 감각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의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입체주의가 광범위한 형태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작가 개인마다 작품에서 입체주의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욱 즐거웠다.

 

네 번째 섹션은 양차대전 사이의 입체주의를 다룬다. 암울한 시기일수록 예술의 의무는 무겁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예술이기 때문에. 다양한 작가들이 전쟁으로 무너진 국가와 인간을 표현했고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사조에 충실하기보다 각자의 방식을 발전시켜나가기 시작했다. 추상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하며 고전주의로의 회귀를 시도하기도 하고, 입체주의가 추구하던 생략과 단순화의 원칙은 빛이 바래진다.


전쟁이 일으킨 참상을 마주하면서, 작가들은 개인의 직관과 시대적 의무를 가지고 새로운 예술적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입체주의가 태동하고 비로소 탄생하여 만개하기까지를 지켜본 끝에, 소멸을 마주하는 것은 어딘가 묘한 감정을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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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르 들로네, 리듬 n°1, 튈르리 살롱전 장식화, 1938
 


그리고 다섯 번째 섹션은 가히 이번 전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대형장식화. 후기 입체주의 운동의 선구자인 레제와 들로네, 소니아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이들의 작품은 입체주의의 종말과 추상주의의 시작을 알린다. 원형의 형태와 율동적이고 강렬한 원색의 색감을 활용한 작품들은 제목 그대로 리듬 그 자체였다.


사실 앞서 네 개의 섹션을 돌면서, 개인적으로 숨이 막히게 좋았던 몇 작품들에게서 받았던 그런 미적 충격은 솔직히 말하자면 없었다. 그러나 커다란 벽을 가득 채운 그 리듬들의 위용에 일단 압도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큰 공간에 작업하는 것은 얼마나 자유롭고 거침없어야만 하는 걸까? 동그라미와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뿐인 그림에 얼마나 큰 확신을 가졌길래? 강렬한 색과 선의 향연 속을 거닐면서 내가 했던 생각은 우습게도 이런 것들 뿐이다.

 

다섯 개의 섹션을 모두 도는 동안 느꼈던 점은 이번 전시가 그동안 대중의 몰이해 속에서 외면되었던 입체주의를 이해하기에 정말 최적의 공간이라는 것. 피카소의 원화는 단 4점뿐이라 < 피카소와 큐비즘 >이라는 전시 타이틀 그대로를 기대한 관람객들에게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을 수 있으나, 입체주의의 태동부터 소멸까지, 그 발자취를 따라가며 이해하기에 아주 좋았다. 사실 입체주의 작품에 대해 잘 아는 편이 아니라 뭐가 유명한 작품이고 뭐가 좋은 작품인지에 대해 말을 얹기는 부끄럽지만, 간만에 소위 '인스타그램 감성'의, 대충 예쁘고 아기자기한 촬영존만 만들어놓은 전시가 아니라 원화 중심의, 그리고 생각보다 퍽 작은 규모임에도 알찬 구성의 전시를 접해 행복했다.


다만 전시 공간이 매우 협소해 도슨트의 해설 시간대는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북적였기 때문에 충분히 오랫동안 관람하기 어려웠던 점, 마지막 섹션의 촬영존에서 인증샷을 찍는 관람객들로 인해 제대로 작품을 보기에 힘들었던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더해서 사소하게 궁금한 점 하나, 벽면의 설명에 따르면 브라크가 피카소에게 큰 충격을 받아 < 대욕녀 >라는 작품을 완성했다는데, 정작 전시되어있는 작품은 레오폴드 쉬르바주의 <대욕녀>뿐, 브라크의 <대욕녀>는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각 섹션마다 벽면의 설명이 상세하고 친절했기 때문에 굳이 도슨트 해설을 듣지 않아도 전시를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지만, 전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니만큼 혼선이 일지 않게 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


늘 생각하지만, 어떤 분야건 간에 예술작품의 감상을 글로 풀어쓴다는 것은 언제나 부족하기 마련이다. 공간으로서, 서비스로서의 전시가 어떻다고 말을 얹는 것은 쉽지만 예술작품과 나 사이에 오간 무엇을 언어로 붙들 수는 없다.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을 이해하고 작가를 이해하고 사조를 연구하는 일은 당연히 그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이며 작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품을 만나는 순간 곧바로 전해지는 감정은 이런 언어적인 요소에 결코 묶일 수 없는 것들이다.


전시는 훌륭했고, 작품은 알찼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미술사조의 한 조각을 볼 수 있어 인상깊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다 차치하고, 몰랐던 작가들의 몰랐던 작품들, 나에게 특히 아름다웠던 몇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가장 행복한 경험이었다.



[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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