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늦어본' 사람은 안다 :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글 입력 2019.02.0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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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물건을 건네받고는 펑펑 울었다. 작은 동전 지갑, 생전에 신던 덧버선, 몸이 쑤실 때마다 붙이던 파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물건들은 주인이 부재하자마자 가장 통렬한 아픔으로 남았다. 손때 묻은 물건들, 차마 쓰임새를 다 하지 못한 것들. 며칠 전만 해도 간 사람의 평범한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움직이던 것들. 새삼 느낀다. '가장 평범한 일상을 가장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사실만큼, 죽음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정작 간 사람은 말이 없고 남은 사람만 그걸 슬퍼할 뿐이다. 간 사람과의 일상, 물건, 추억을 곱씹으며 기억을 같은 결로 빗을 뿐이다. 나도 남겨진 물건을 내 가방 속에 고이 담아 보관해두었다. 기억은 남은 사람의 몫이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6_강필석, 이창용.jpg

자료제공 : 오디컴퍼니



그래서 죽음엔 말이 쏟아진다. 한 사람의 물리적 신체와 정신이 사라진 곳엔 남은 사람의 말이 깃든다. 이랬었지, 저랬었지. 가족·친지가 장례를 치르는 동안, 오가는 웃음과 눈물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는 떠나간 사람을 함께 기억하는 방식이고, 아파하는 방식이다.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으며 우린 우릴 떠난 사람을 그린다. 보낸다. 그리고 가슴 한편에 차곡차곡 정리한다. 빈 공간을 갈무리하는 것도 남은 사람의 몫이다.


이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풍경은 우리네 인생과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도 초침은 가고 내일은 오며 웃을 일과 울을 일이 번갈아 가며 찾아온다. 남은 사람은 남은 자기 인생을 살아가겠고 예민하게 곤두섰던 심리적 통각은 차차 무뎌지겠다. 다가오는 출근 앞에, 배고픔 앞에, 잠 앞에, 일과 앞에 상실의 슬픔은 비켜날 거다. 그래, 드라마 속 도깨비의 말마따나 천년만년 가는 슬픔이 어디 있겠나, 천년만년 가는 사랑은 또 어디 있겠나.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일로 웃고 어떤 일로 우는 와중에도 기억 속 어딘가엔 떠난 사람과의 추억이 간직되어 있을 테다. 점차 빈도는 줄어들겠지만 그 기억이 건드려지면 또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을 거다.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건 죽음이 유일하다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누군가의 죽음을 겪는다. 이렇게 이별하고 이렇게 기억하며, 이렇게 살아가기 마련이다.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의 페이소스가 강력한 건 이 때문이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2_정동화, 송원근.jpg
자료제공 : 오디컴퍼니


7살 초등학생 시절부터 어엿한 성인이 되기까지 함께 해왔던 앨빈 켈비와 토마스 위버. 토마스가 죽은 친구 앨빈의 송덕문을 작성하면서, 그와의 추억을 되짚고 죽음의 비밀을 밝히려는 게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의 골자다. 무대는 기억을 책처럼 꽂아둔 기억의 책방. 이곳에서 앨빈의 송덕문을 써야 하는 토마스와 죽은 앨빈의 현현은 두 사람이 함께 한 긴 세월을 재현한다. 7살 할로윈 파티에서 마주한 첫 만남에서부터 앨빈 아버지의 장례식장 앞에서 마지막으로 조우한 그 날까지, 함께 한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 보는 거다. 앨빈이 좋아하던 나비, 토마스에게 작가의 꿈을 불어넣어 준 소설 <톰 소여의 모험>, 겨울이면 늘 함께 만들던 ‘눈 속의 천사들(바닥에서 하는 눈 장난 : Snow angel)’ 등 소소한 장치들은 두 사람의 지난 이야기에 디테일을 더한다. 시간의 단단한 힘을 만드는 건 이 소소한 것들이다.


다른 뮤지컬의 서사와 비교했을 땐, 평이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혹자는 지루하다고 혹평한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어도, 충격적인 반전이 없어도 좋다. 아니, 없어서 좋다. 오가는 미묘한 감정과 소소한 소스들은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를 문제적 개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관객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작품의 화자이자 후회와 괴로움에 휩싸인 토마스는 자신의 기억을 관객에게 내보이며, 각자의 기억 속으로 관객을 안내하는 길잡이에 가깝다. 관객들은 앨빈과 토마스의 추억을 목도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 잊었던 소중한 것들 혹은 사랑했던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1_정원영, 조성윤.jpg

자료제공 : 오디컴퍼니



토마스는 종종 비겁했다. 또 치졸했다. 소재를 앨빈에게서 얻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도 앨빈에게 감사할 줄 몰랐던 토마스, 혼자만의 복잡한 상황을 겪으며 앨빈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토마스, 앨빈 생전에 “넌 필요 없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토마스. 크리스마스이브, 다리에서 뛰어내린 앨빈을 말리지 못했던 토마스. 앨빈에게 ‘늦었던’ 토마스.


캐릭터로서의 면면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우린 토마스에게 마냥 손가락질할 수 없다. “다들 어릴 적 친구는 잊지 않느냐”는 그의 절규처럼, 어른의 세계에 편입된 이들은 토마스를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적어도 그가 늦었던 이유를 한 번쯤 생각해줄 수 있다. 소중한 걸 잊고 사는 우리, 후회할 말과 행동을 해본 우리, 그래서 결국 ‘늦어본’ 우리이기에. 돈과 명예를 좇으며 소중한 것들을 등한시했던 토마스는 관객의 통각을 열어놓는다. 그리고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를 두 친구의 비극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그곳의 관객은 모두 누군가의 죽음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하나쯤 소중한 것을 잃어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를 바꿔 말하면 ‘스토리 오브 아워 라이프’다. 비겁하고 치졸했던 토마스 네 얘기. 그리고 역시 비겁하고 치졸했던 내 얘기.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4_강필석, 이창용.jpg

자료제공 : 오디컴퍼니



그렇담 토마스는 앨빈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찾았을까. 무엇이 미안했다고 고할 수 있었을까. 긴 추억 여행의 말미에 정작 들려오는 앨빈의 한 마디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사람이 함께해온 이야기를 되짚어봐도 토마스는 알 수 없다. 앨빈이 왜 다리에서 뛰어내렸는지, 왜 토마스를 끌어안았는지, 그 모든 사건이 토마스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오로지 토마스 머릿속에 있는 기억만이 대략적인 몽타주를 그릴 뿐 앨빈의 진실은 알 수 없다. 토마스는 앨빈의 죽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앨빈에게서 속마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는 이 지점을 통해 타인이란 그렇듯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한 개체라는 걸 드러내면서, 지금까지 일련의 사건과 상황은 토마스의 기억이라고 못박는다. 두 시간 내내 관객은 앨빈의 이야기를 보지만 관객 역시 알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기억 속 타인의 좌표를 더듬어가며 짐작만 할 뿐, 토마스에게 앨빈은, 우리에게 앨빈은, 결국 우리에게 타인은 영영 ‘알 수 없는’ 존재다. 우리의 자의적인 기억 속 타인의 모습만이 ‘다’, ‘전부’일 뿐이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3_정원영, 조성윤.jpg
자료제공 : 오디컴퍼니


하지만 토마스는 앨빈과의 추억 여행 후 안 풀리던 소설의 실마리를 잡는다. 행복하게 ‘눈 속의 천사들’을 만들었던, 함께 실컷 웃었던 그날의 이야기는 이제 막힘 없이 펼쳐진다. 러닝타임 내내 종이 뭉치로 표현했던 눈이 하늘 위에서 펄펄 내리고 그 가운데 ‘어린 시절 바로 그때처럼’ 천진하게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은 관객 기억 속에 있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상기시킨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혹은 다른 누군가와 마음 편히 웃으며 행복해하던 어떤 소중한 시간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렇게 친구와의 추억을 행복하게 말하는 것.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아는 걸 아는 대로 말하는 것. 함께 쌓아온 시간을 남은 사람 식으로 말하는 것. 이게 바로 토마스가 찾던 송덕문이다. 앨빈의 죽음이 어떠했는지, 죽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왜 죽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아는 친구의 이야기. 함께 했던 시간들, 웃음과 눈물이 있었던 생애. 그걸 기억하고 말하며, 남기는 게 남은 자의 몫이다. 친구가 사라진 뻥 뚫린 자리를 언어로 채워 넣는 방식이다. 회복 불가능한 부재를 남은 자의 힘으로 극복하는 방식이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5_송원근, 정동화.jpg

자료제공 : 오디컴퍼니



앨빈도 그리고 작품이 끝난 후의 토마스도 관객에겐 영영 타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은 열려 있는 행간이 된다. 그 이전의 삶이, 이후의 삶이 어땠을지는 충분히 짐작하고 상상할 수 있다. 비록 진실은 끝내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행간 속엔 관객 자신의 경험이 투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는 여러 번 보아도 새롭게 다가온다. 돈과 명예, 일, 결혼 등 토마스가 눌린 현실적인 가치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어른을 위한 동화다. 아름다운 넘버의 선율과 노랫말, 고즈넉한 무대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우리를 ‘우리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안내하지만 그곳엔 행복하기에 지었던 웃음과 다시 만날 수 없기에 흘렸던 눈물이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잃어본, 혹은 잃을 사람들이고, 또 언젠간 타인에게 ‘잃음’이 될 사람들이니, 이 웃음과 눈물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의 부재라는 건, 잃음이라는 건, 죽음이라는 건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사유하면 사유할수록 남은 자의 가슴을 헤집어 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여서 행복했던 순간들, 차마 못했던 말들,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전부’, 앨빈의 말처럼 이 모든 걸 기억하는 건, 기록하는 건, 기리는 건, 남은 자인 내 몫이리니. "제 친구 앨빈 얘기 하나 해주겠다"며 송덕문의 첫 운을 떼는 토마스처럼, 끝내 울면서 웃음 지을 수밖에 없다. 그 미소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일 거다. 잃어본 사람은 안다. 후회해본 사람은 안다. ‘늦어본’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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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 The Story of My Life -


일자 : 2018.11.27 ~ 2019.02.17

시간
화, 목, 금 8시 / 수 4시, 8시 / 토 3시, 7시
일, 공휴일 2시, 6시

(월 공연 없음)

장소 : 백암아트홀

티켓가격
R석 66,000원
S석 44,000원

제작
오디컴퍼니 주식회사
롯데엔터테인먼트

주관
오픈리뷰(주)

관람연령
8세 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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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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