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만과 자신 사이 [기타]

스스로를 믿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항상 좋게 평가해야 할 필요는 없다.
글 입력 2019.01.2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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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기를 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뿌듯해한다. 분명 고민이 있어서 혹은 나의 부족함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서 글을 적고 있으면서도 글을 적고 있는 나 자신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 잘났다는 이상한 우월감이 든다. 1주일에 한번 쓰는 글들을 정돈할 때도 내가 완성된(완성도 있다는 소리가 아닌 어찌 됐든 맺음이 있는 글이라는 뜻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고, 이런 진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안도감과 우월감이 묘하게 느껴진다. 근데 이게 꽤나 내 기분을 더 애매-하게 만든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일단 내 글이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은 확실해서 지금의 나에게 우월감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민망했고, 그것 말고도 몇 가지 이유가 더 떠올랐다.


첫 번째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냥 내버려두어도 자기 검열을 하고 스스로 다그치는 성격이라, 이게 나의 자존감을 과하게 갉아먹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의식적으로 "나를 믿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강박이 있다.


두 번째로는 하나의 완성된 글을 적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글의 맺음으로 나만의 어떤 '답'을 제시한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단 한 명인 나의, 그리고 나의 많고 많은 순간들 중에 단 한순간에서 시작된 상대적이고 개인적인 답임에도 그걸 '답'이라고 결론짓는 순간 과정은 쉽게 잊히고 그냥 '답'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이것은 나를 마치 "객관적인 답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오류에 빠지게 한다.


내가 내린 '답'들을 '믿고' 그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이 조금 더 행복하고 만족도 높은 삶을 살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일단 "나는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우월감을 느끼는 순간, 내가 세상을 보는 시야에 색안경이 생겨버린다. 내가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릴수록 그리고 그 답을 믿을수록 생각보다 너무 쉽게 나의 답을 다른 사람에게도 '답'으로 제시한다. 직접 말로 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으로 그 사람을 '나의 답'에 따라 판단하기도 쉽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기도 더 어려워진다.


자만은 나의 부족함을 가려버리고, 그건 나의 성장과 가능성을 막아 버린다. 게다가 애당초 나의 답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기준도 없다. 누가 판단할 것이며 그 기준은 또 누가 정할 수 있을까.






내가 간과했던 점은 내가 여태까지 자신감을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만은 그 믿음이 너무 과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능력에 대한 믿음을 자만과 자신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기에 너무 애매했고 결국 이 기준은 나를 자신과 자만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를 믿기 위해 나의 능력을 좋게 평가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이게 자만이라고 느껴질 때조차 마음 편하게 성찰하지 못했다. 실제로 내가 이상한 우월감을 느꼈을 때 그걸 쉽게 떨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위해 나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는 기준 때문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록된 '자신(自信)'의 뜻은 이러하다.



자신(自信) [명사]

: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거나 어떤 일이 꼭 그렇게 되리라는 데 대하여 스스로 굳게 믿음. 또는 그런 믿음.



이 글 어디에도 '능력'은 없다. 내 잘난 능력이 자신감의 필수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자만이 안 좋은 이유 또한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어서가 아니라, '비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월감과 자만은 나와 비교될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을 나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태도는 정말 너-무 편협하고 일방적이다.


나의 답들은 나의 답일 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지 결코 답을 알려줄 수가 없다. 그만큼 비슷해 보여도 결국 천지차이로 다른 삶을 사는 게 사람이니까. 또한 나를 믿기 위해서 꼭 잘날 필요도 없다. 남들과 비교해 잘난 점을 찾아야 할 필요도 없다. 자신(나를 믿는 것)과 자만(내가 남들'보다' 잘났다고 여기는 것)은 결코 다르다.


하지만 이걸 알면서도 자신과 자만을 헷갈리는 오류에 빠져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쉽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나를 믿자"라는 좌우명에 디테일을 추가하기로 했다.



"내 능력이 아니라

내 가능성과

내가 노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자."



과정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거다.


나의 대단하고 잘난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아닌

나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과

끊임없는 성찰과 나아감.


지금은 이렇게 이 감정을 정리해야겠다.


그리고 조금은 미워했지만, 자기 성찰을 참 많이 하는 내 소심한 성격도 고치려 하지 않아야겠다.


나는 더 큰 노력 없이도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나아갈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사람이다.



-



과거의 나는 나를 못 믿었고,

최근의 나는 나의 능력만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내 가능성을 믿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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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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