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우리는 어떤 자취를 남길까요? :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글 입력 2019.02.0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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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취, 당신의 자취

자취를 남긴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무서운 일일지 모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 이름을 가진 어떤 이는 전 생애에 걸쳐 무수한 자취를 새기고 사라진다. 어쩌면 이름 이상의 것들이 남을 거다. 한 개인의 육체가 사라진 자리엔 그가 생전에 쌓아 올린 재산, 명예, 자손부터 어느 누군가에게 준 영향이 잔해처럼 남는다. 그가 했던 말, 그가 건넨 인사, 그가 준 감정들은 다른 누군가의 생에 날갯짓이 된다. 그 퍼덕임이 초래한 결과는 다른 우주 속으로 편입되어 또 다른 누군가의 생애를 만들어 갈 거다. 이 연쇄를 나비효과라 말해도 좋겠다.

종종 한 사람의 죽음을 한 우주의 소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주지하다시피 죽음과 함께 그가 살아온 생애, 그가 가지고 있는 기억, 그가 느껴온 감각들은 사라진다. 하지만 모든 건 이미 분갈이 되어 다른 우주에 심어졌을 수도 있고, 죽음 자체가 씨앗이 되어 다른 우주를 싹틔울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의 시간이라는 건 탄생과 소멸 그 자체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일이다. 가죽 하나를 남기는 것보다 이름 하나를 남기는 것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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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과수원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이하 <루드윅>)도 그 자취에 관한 이야기다. 200여 년 전 독일에 실존했던 한 개인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 어떤 우주를 만들었는가 추적하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학대 아래 다락방에서 피아노를 쳐야 했던 어린 베토벤, 청력을 잃고 한없는 고통에 빠진 청년 베토벤, 조카에게 그릇된 기대를 걸었던 노년의 베토벤까지. <루드윅>은 베토벤이라는 한 사람의 생애를 조명함과 동시에, 그의 음악으로 인해 각기 다른 삶을 살게 된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작연출을 맡은 추정화 연출은 뮤지컬 <스모크>로 한국 근대사의 예술가, 이상 시인을 무대 위에 펼쳐냈었고, 허수현 음악감독은 그와 함께 <스모크>, <인터뷰>, <원스어폰어타임 인 해운대> 등을 함께 했다. 허 감독과 추 연출은 영국의 대문호 아가사 크리스티를 다룬 뮤지컬 <아가사>에서도 음악감독과 배우로서 호흡을 맞춘 바 있어, 두 사람이 세기의 예술가 베토벤을 다룬다는 건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콤비의 '예술가 뮤지컬' 신작 <루드윅>에 기대가 쏠리는 이유였다.



아이가 자란다는 건


<루드윅>의 개막 소식이 전해지고, 일각에서는 <인터뷰>나 <스모크>처럼 베토벤의 자아를 조각내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루드윅>은 전작과는 다른 방향을 택한다. 수녀 마리에게 전해진 베토벤의 편지로 그의 인생이 조망되는 것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전개까지는 예상 그대로의 흐름을 따라간다. 노년의 베토벤과 어린 베토벤, 그리고 청년 베토벤이 교차되며 실제 일화를 따라가는 부분은 전기적 구성으로 펼쳐진다.

흔한 예술가 뮤지컬이 그렇듯, 예술가의 이름과 생의 일화를 빌리다가 끝내는 그의 예술혼과 생의 고통을 말하는 것! 예상치는 그랬다. 그러다 보니 그 예상치를 충실히 밟아가는 처음 20분 정도의 시간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우리가 베토벤에 대해 아는 것들-베토벤을 신동으로 만들고자 강압적인 연주 훈련을 고수했던 그의 아버지, 청년 시절 찾아온 청력 상실의 고통 등-은 노년의 베토벤과 유년, 청년 시절 베토벤의 교차로 착실히 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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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과수원뮤지컬컴퍼니


하지만 공연 중반, 의문의 인물인 마리와 발터의 등장으로 극은 전환점을 맞는다. 아니, 본격적인 전개로 안착한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다. 작곡가를 꿈꾼다는 발터와 발터를 곁에서 돌보기 위해 베토벤의 수업이 필요하다고 부탁하는 마리. 청력을 잃어가며 고통으로 망가져 가는 베토벤 앞에 두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등장 이후 작품은 베토벤의 심연이 아닌 지금껏 남긴 자취와 그가 꿈꾼 미래로 돋아나간다. 베토벤은 어떤 자취를 남겼는가, 남길 수 있는가. 작품과 베토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이것이다.
 
베토벤은 발터를 놓친 후, 제 조카인 카를에 집착하게 된다. 군인을 꿈꾸던 조카에게 피아노 수업을 강제하고, 그가 원하지 않는 공연을 잡고, 베토벤이 남긴 가장 위대한 자취로 만들려 애를 쓴다. 마치 다락방에서 피아노만 주야장천 쳐야 했던 어린 시절 자신처럼. 점차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은 자신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내면의 안정을 얻지만 이는 곧 소통의 부재와 독단으로 귀결된다. 삼촌을 '루드윅'이라고 친근하게 불렀던 카를의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베토벤의 집착과 왜곡된 기대는 베토벤과 카를,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마저 망가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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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과수원뮤지컬컴퍼니


미래를 위해 씨앗을 심으려던 베토벤의 노력은 카를이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게 만든다. 특히 카를이 자살하려는 장면에서 조카의 원망을 듣지 못한 채 제 곡조에 빠져 있는 베토벤과 그 위에 깔리는 <환희의 송가>는 장면의 아이러니함을 극대화하며 베토벤의 잘못된 욕망과 고통받는 카를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피아노 연주를 즐거워했지만 끝내 가르치지 못했던 발터와 내내 붙들고 가르쳤지만 피아노 연주를 즐거워하지 않았던 카를. 두 아이의 대비로 <루드윅>은 아이가 자란다는 것. 미래의 씨앗을 심는다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그 방법은 어떻게 잘못되고 굴절되는지에 천착한다. 뻔한 전기적 구성으로 이어지던 작품은 이처럼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되는데, 이때 가장 먼저 돌파구를 내는 캐릭터가 있으니 작중 유일한 여성인 '마리'다.



세상 너머로, 마리


세 명의 남성 배우가 베토벤을 비롯해 여러 인물을 멀티로 연기하는 반면, 마리 역의 여성 배우는 유일하게 마리 그 자체를 담아낸다. <루드윅>의 한 축이 베토벤이 심는 씨앗이라면, 다른 한 축은 그 씨앗이 발아해 자란 마리다. 마리는 어려서부터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꿈을 꾸었고, 후엔 발터를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움직인다.
 
베토벤에게 가장 큰 한계가 청력 상실이었다면, 마리를 막는 장벽은 남성중심주의 사회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건축업계에 뛰어들 수 없었던 마리는 제 꿈을 이루기 위해 남자 옷을 걸치고, 저와 대적할 준비가 안 된 비열한 지배 카르텔을 향해 맞설 줄 안다. 베토벤이 심은 가장 주된 씨앗인 마리는 자기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온갖 역경과 한계를 극복해내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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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과수원뮤지컬컴퍼니
 

그리고 베토벤의 씨앗이었던 마리는 무럭무럭 자라 제 삶의 큰 뿌리인 베토벤에게 직언하기에 이른다. 카를을 그렇게 가르쳐선 안 된다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에 격분한 베토벤은 마리가 남자 옷을 입고 공모에 도전하는 걸 ‘거짓말’이라 비난한다. 결국 베토벤이 심은 씨앗은 베토벤과 씨앗을 심는 방식을 둘러싸고 부딪치게 된다.
 
베토벤의 지적에 역시 큰 충격을 받았던 마리는 여자 옷을 입고 공모에 참여한 후, 건축업계에 드는 데 실패한다. 마리는 더 이상 남자 옷을 입지 않는다. 현재의 마리는 수녀복을 입고 있으며 건축의 꿈도 일단 접어둔 상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리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길 주저하지 않는다. 제가 부딪쳤던 장벽을 언젠간 허물기 위해, 여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자기 자신, 그리고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문을 두드린다. 주체적으로 제 삶을 개척해나가는 여성 캐릭터. 마리는 <루드윅>의 핵심인 '삶과 미래의 문제'를 베토벤과 다른 동력, 같은 방향으로 견인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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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과수원뮤지컬컴퍼니
 

마리를 표현하는 배우 려원의 존재감 또한 흥미롭다. 뚝심 있게 서사를 끌고 가는 려원 마리의 존재감은 베토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 베토벤의 삶이 기조가 되면서도 마리의 서사가 분명히 다가오는 건 배우의 연기 덕도 크다.
 
다만 베토벤의 이야기와 마리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는지에 대해선 재고해볼 필요가 있겠다. 초반의 전개는 베토벤과 그의 생애, 청력 상실의 고통 등으로 점철되었는데, 중반 이후부터 강화되는 남성 중심사회에 대한 마리의 일갈과 그 속에서의 고통은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크다. 물론 ‘한계’와 ‘장벽’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의 고통이 묶일 수 있겠지만, 아직 단단한 이음새는 없는 상황이다. 마리와 베토벤의 상관관계가 장면적으로든, 연출적으로든 더 부각되면 낫지 않으려나.


* * *

베토벤과 마리 사이에는 세 아이가 놓여 있다. 베토벤이 놓쳤던 발터, 베토벤이 집착했던 카를, 그리고 스스로 자란 슈베르트. 이 세 아이, 그리고 다시, 베토벤의 음악이 영향을 미친 네 사람 마리, 발터, 카를, 슈베르트는 베토벤이 남긴 자취를 그린다. 베토벤의 죽음 이후 네 사람이 피아노에 조의를 표하는 장면은 그의 음악이 어떠한 유무형의 유산으로 남았음을 상징한다.

"지금도 꿈을 꾼다"는 마리와 "그래. 우린 어쩌면 꿈이라는 옷 한 벌을 걸치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는 베토벤은 사회적, 신체적 한계에도 꿈을 위해, 미래를 위한 작은 자취를 남기려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루드윅>을 갈무리한다. 베토벤이 남긴 음악을 들으며 그리고 마리가 꿈꾸던 세상을 위해 여전히 노력하며, 또 다른 발터이자 카를이며 슈베르트인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겠다. 우리는 어떤 자취 위에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또 어떤 자취를 남기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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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공연기간
2018년 11월 27일(화) ~ 2019년 1월 27일(일)

공연시간
평일 오후 8시
(월 공연 없음)
토요일 오후 3시, 오후 7시
일요일 및 휴일 오후 2시, 오후 6시

공연장소
JTN아트홀 1관

프로듀서
허강녕 <베토벤심포니>, <리멤버>

작ㆍ연출
추정화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신인연출상 <인터뷰>, <스모크>

음악
허수현 제2회 더뮤지컬어워즈 작곡상 <라디오스타>, <아가사>

안무
김병진 <은밀하게 위대하게>, <알타보이즈>

출연
김주호, 정의욱, 이주광(루드윅 역)
강찬, 김현진, 박준휘 (청년 역)
김소향, 김지유, 김려원(마리 역)
임남정(마리 언더스터디)
차성제, 함희수(발터 역)
강수영(피아니스트)

관람료
전석 일반 55,000원

관람시간
110분

관람등급
만 7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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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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