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른들이 잊고 사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전시]

순수함과 사악함에 대하여, 키스 해링 전시
글 입력 2019.01.2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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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은 뉴욕의 지하철에서 세련되고, 노련하며, 즉흥적인 그래피티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 그래피티는 키스 해링의 작업 계시가 되었다. 그의 영상을 보면, 지하철 광고를 하는 큰 여백 부분에 급하게 아무 그림을 그려댄다. 5분도 안 걸리는 이른 시간에 아기, 동물, 텔레비전, 사람 등 다양한 것들을 그리면서 '경찰이 오기 전에 완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뉴욕 경찰은
그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다.
해링은 범죄혐의로 체포되었다."


해링에게 이 작업은 아주 큰 쾌감을 주었고, 그는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자기가 잡혀갈지도 모르는데, 공공기물에다가 그림을 그리다니 정말 괴짜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심지어 하루에 많게는 4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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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이 많았다. 이런 그림들 모두 '지하철 드로잉'이라고 불리는데, 검은색 판에 흰색 분필로 그려진 그림이다. 아까 말했듯이 지하철역에 급하게 그려진 그림들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려고 한 그림다웠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를 그런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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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보면, '지하철 드로잉'을 그리고 있을 때, 시민들이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해링의 예술 행위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나라라면 한번 생각해보자, 나라면 누가 지하철에서 낙서하고 있으면 신경도 안 쓰고 지나갈 것 같다. 아니면 집에 와서 '이상한 사람이 지하철에서 낙서하고 있었다'고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어떤 행위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라면,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중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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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어른들이 잊고 살아가는 것들을 어린아이들은 알고 있다.'

위의 작품은 <루나, 루나, 시적인 화려한 오락물>이다. 실크 스크린에 오프셋 기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이동식 놀이동산을 표현했다 

요즘 보는 화가들에게서 공통으로 보이는 것은 일반적인 어른들과는 다르게 행복하고 웃고 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놀이동산을 좋아하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키스 해링이 그린 그림도 어린아이들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 눈이 정말 부럽다.

어린아이는 미성숙하고, 부족한 점도 많고 신체적인 능력도 당연히 어른보다 부족하고, 삶의 경험도 없지만,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고, 자기 앞에 놓인 수많은 기회를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린 시절로 돌려보내 준다고 하면 나는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왜냐하면 나는 지금보다 더욱 잘 살 자신이 없으므로, 그래도 어린아이들만이 가진 그런 순수함과 기회는 조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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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고자 하더라도 단 하나의 비결은 자기 자신을 믿고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하지 마라."

- 키스 해링, 마이클에게 보내는 편지 中


나는 늘 누군가에게 맞춰주는 사람이었다. 여태껏 그래 왔기에 그게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 건지 몰랐다. 그저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기 위해 했던 그 수많은 맞춰주기는 결국 내 몸을 힘들게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나 외에 누군가에게 맞춰주려는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

나는 늘 남자친구의 운동시간에 맞춰서 내 운동 시간을 조정하고, 저녁도 걸러가면서 대신 야식을 먹어가며 그와 만나왔는데, 오늘 만나기로 한 분은 달랐다. 그분의 운동 시간에 맞춰서 약속 시각을 잡으려는 나에게 나의 운동 시간을 물어왔다. 그런 점은 난생처음이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왜 그분이 늘 힘들어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한순간 마음이 편해지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되지만, 늘 힘들 것이다. 내가 늘 시간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나에게 편한 시간은 따로 있는데, 남에게 맞추기 위해 바꾸는 것처럼. 그분도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 말 한마디로 나는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고, 그분의 슬픔과 힘듦을 이해했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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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과 파랑의 이야기

키스 해링은 이 작품에 별다른 이야기를 붙이지 않았다. 그는 보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붙이도록 했다. 빨간빛과 파란색이 조화되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는 우리의 몫이었다. 사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조금 난감해진다. 나 역시 주입식 교육 세대의 사람이라, 이미 만들어진 것을 외우는 데 익숙하고 창의적인 것과는 또 거리가 멀어서 쉽게 지나치게 된다.

이런 것도 아무것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일까? 아이들은 여기에 이야기를 붙이는 게 정말 재미있을까? 난감함과 피로함, 귀찮음보다는 호기심을 먼저 느끼게 될까? 게임을 하다가도 그것에 익숙해지면 다시 하기 싫어하는 나라서 그 사고 회로가 그냥 궁금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것에 대한 궁금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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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환각을 통한 초월

해링은 종종 블랙 라이트 아래에서 빛나는 형광 컬러페인트를 사용했다고 preview에서 언급했는데, 이걸 전시장에서 직접 보는 것은 역시 느낌이 색달랐다. 다른 밝은 전시장 구역과는 다르게, 어두운 배경에 빛나는 색채들로 정말 다른 공간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검은 배경에, 작품 위로는 가로로 작품 길이만큼의 형광 보라색 등이 반짝거리고, 땅바닥에는 작품에 더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표시된 경계선이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작품들도 하나같이 형광을 띄는데, 눈이 아프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화려하지도 않아서 마치 쇼룸을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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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가 느껴졌던 것은 입장할 때 주었던 팸플릿 역시 색채페인트를 사용했는지, 아니면 빛 아래에서 형광 물질이 나오는 재료를 사용했는지 이것도 밝게 빛났다는 점이다. 정말 키스 해링 전시회를 더욱더 재미있게 만들어주었던 소소한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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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예방, 동성애자 인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인종 차별, 마약, 전쟁 등 세상의 인권과 환경, 불평등에 대한 문제에 관심 있었던 그는 포스터를 그려서 사회 문제에 관한 관심을 촉구했다. 붉은 색상을 사용해서 강조할 부분을 강조하고, 역시나 그의 그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간단한 사람 모양으로 홍보했다.

신기한 것은 앨범 표지를 자기가 느낀 대로 그림을 그려서 새로 넣었다는 점이다. 컴퓨터로 만들어서 찍어낸 앨범들과 다르게, 키스 해링의 작품들이 그려진 앨범은 중간중간 내가 아는 곡도 꽤 많았다. 앨범이 예뻐서 사고, 모으고 싶어서 사고 그런 거랑 다르게, 자기가 앨범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그림을 붙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무척 신선하다. 외부의 것을 그저 외부에 두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도 애착을 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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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내 상징과 서명이 된 이유는 아기가 가장 순수하고 긍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키스 해링의 작품으로 누구나 쉽게 알고 있는 단순한 아이콘들. 가운데 있는 것은 심지어 우리나라 웹툰 사이트와도 비슷해서 남자친구도 알아보았다.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사람이 아기라는 것은 잘 몰랐었지만, 가장 순수한 상징을 사용하여 자신을 대변했다는 점에서 그는 역시 순수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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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운 구역은 8번 구역, 시작의 끝, 그리고 끝의 시작 부분이다. 해링이 작업 초기에 만든 임지들을 이 그림 속에 이야기처럼 채워놓고 있다.

이 그림들은 멀리서 보면 비틀어지고, 각도도 틀어져 있다.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속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이상한 방이다. 방은 어둡고, 작품들은 미묘하게 틀어진 각도로 빛을 받는다. 몹시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다.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든 그림들이 만화처럼 그려져 있다. 사람이 점이 많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더니, 점박이 개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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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점박이 사람을 찌르고, 개들이 사람을 통과해서 지나가고, 또 일반사람들은 점박이 개를 환호하는 이상한 장면들. 그런데 미묘하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1990년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해링이 작업 초기에 제작한 가장 순수한 시각적인 형태들을 복제해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표현했다고 한다. 즉, 가장 순수한 존재들은 이렇게 나쁜 짓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순수해지고 싶더라도, 아니면 그 개체 하나하나로는 한없이 순수하더라도 그것들이 여러 개 복합되고 섞이다 보면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 걸까. 아니면 이렇게 더러운 사람들이라도 각자 개체만 보면 순수한 것들이라고 위안하는 것일까. 죽기 전에 이런 그림을 마지막으로 그렸다는 것에서는 인간에 대한 순수함의 기대를 저버린 것일까, 아니면 이런 사악함 속에도 순수함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걸까.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간 전시회였는데, 생각보다 인간의 깊은 곳까지를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런 점들을 모두 솔직하고 순수하게 표현해주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정말, 그의 작품들은 모두를 위한 작품이었다. 예술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 솔직하게 작품을 그려나갔다. 그런 솔직함 자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순수한 인간이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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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해링
-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


일자 : 2018.11.24 ~ 2019.03.17

시간
10:00~20:00 (19:00 입장마감)

장소
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티켓가격
성인 13,000원
청소년 11,000원
어린이 9,000원

주최
키스 해링 재단
나카무라 키스 해링 미술관
서울디자인재단, ㈜지엔씨미디어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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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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