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엄마가 그리워질 때, 엄마니까 [도서]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인지.
글 입력 2019.01.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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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엄마인가요?
당신은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요?"


아마 내 또래 중에서는 이 물음을 들었을 때 마냥 달갑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왜 여성은 당연히 엄마가 되어야 하냐,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지는 않으면서 왜 엄마만 그래야 하는 건가, 왜 모성애는 그토록 당연하게 여기는 건가.

그러면서 동시에 '엄마', '부모님'에 대한 콘텐츠는 정말로 잘 팔린다. 개그 코드 난무한 영화에서도 부모님 키워드가 들어가는 순간 극장은 눈물바다가 된다. 감정을 얻는 데에는 엄마라는 단어가 잘 먹힌다.

나 역시 <엄마니까> 책에서 공감을 얻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왜 엄마라는 단어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지 조금 화가 날 것도 같았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갖고 있기에(극단적인 상황은 예외로 두었을 경우) 누구든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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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엄마는 세 아이를 데리고 캐나다로 유학을 간 엄마이다. 한국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조금 적응이 힘들었던 둘째의 문제로, 아이들을 캐나다에서 대학을 보내기로 하고 외국으로 떠난다.


"엄마가 당신의 어깨 연골이 닳아버릴 만큼 스웨터를 떠서 보냈던 캐나다. 나는 지금 그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우연한 일일 테지만, 생각할수록 가슴이 먹먹하다. 엄마처럼, 나 역시 삼 남매를 키우며 고군분투 중이다. 무거운 '부채감'이 늘 나를 채찍질한다. 지난 십 년 동안 직장에서 일하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엄마라도 엄마의 빈자리는 컸던 모양이다. 아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일대신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기로 했다. 너무 늦기 전에, 평생 꺼내 먹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아이들과 캐나다로 떠났다. 내 나라에서 상처받은 아이가 행복해지는 길이라 믿었다. 막차에 올라타듯, 허겁지겁 아이들의 '십 대' 속으로 들어갔다."

- page 221


'아이를 키우고 있다'라는 문장이 이토록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가 없었다. 어느 책에서든, 누구의 말에서든 아이들을 기르고 있다거나 키운다는 말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우리는 누구에 의해 키워지는 것이었다는 게 사실일까, 아니면 스스로 커간다는 것이 사실일까? 부모님은 우리를 어떻게 키운다는 것일까?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를 내가 키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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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주체인 나에게도 하나의 과업이었지만, 그걸 옆에서 늘 보조해야 하는 부모님에게도 하나의 과업이었다. 어릴 때는 나만 힘든 줄 알았고, 내 식대로 세상이 흘러갔다. 부모님은 외로울 거라거나, 힘들 거라거나 가끔 뭔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을 거란 것을 몰랐다. 우리 부모님도 우리 세 자녀를 기르기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는 그토록 희생적인 분들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이모에게서 이모부가 다쳐 양손을 잃었다는 전화가 왔다. 그때 엄마의 눈물을 처음 알았다. 엄마도 눈물을 흘리고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다. 엄마는 울 때, 원래도 커다란 눈이 더 커지고 붉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다. 엄마는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그를 알게 된 것처럼, 엄마도 강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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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십 년 치를 벌충이라도 하듯 최선을 다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을 경험했다. 끊임없이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우리는 서로를 할퀴고 밀치며 버둥거린다. '엄마'라는 직업은 자격증도 없고, 수습 기간도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수시로 상처를 주고, 반성과 고백을 반복한다. 너무 힘겨워 도망치고 싶을 때, 어김없이 엄마가 떠오른다.'



이 책은 엄마라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강요하지도 않고, 엄마로서 느끼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들을 말하고 있었다. 모성애를 가지지 않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었고, 요즘 엄마들은 어떤가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외국에서 아이 셋을 기르는 엄마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의 마음은 어디 가고, 책을 편 자리에서 끝까지 한 번에 다 읽어버렸다. 다른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엄마는 어땠을지를 이해했다. 물론 같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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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버지


'그랬다. 내가 사춘기 아이 셋과 지옥을 헤매고 있을 때, 남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무리 지옥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 게 가족이 아닌가? 만날 때마다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쑥쑥 컸다. 몸도 마음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갔다. 지독하게 입이 짧아 얼굴에 버짐이 필 정도였던 아이들이 이제는 피자 한 판이 부족할 정도로 달라진 것이다. 일 년에 두어 번 아이들을 만나는 남편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모습이었을 것이다. 낯선 만큼 서글프고, 어쩌면 허망했으리라.


어렸을 때는 엄마처럼 같이 놀아주지 않는 아빠가 조금 미웠다. 늘 집에만 오면 휴대전화기만 하고, TV만 보는 아빠가 미웠다. 늘 차로 아침에 40분 거리의 학교까지 태워다 주거나,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는 했지만, 그때는 아빠에게도 왜 그렇게 많은 것을 강요했었던 건지 모르겠다. 다른 가족에 비하면 아빠는 우리에게 충분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도 말이다.

아빠는 주말에도 나가서 일했다. 쉬는 시간이 집에서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휴대전화를 잠깐 보는 것처럼 아빠에게도 그런 시간이 집에 있을 시간밖에 없었을 텐데도 그걸 이해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술 마시는 아빠, 담배를 피우는 아빠, 나쁜 아빠라고 늘 엄마 편만 들었다. 친구들 중에도 아빠에게 유독 엄격한 애들이 많았다. 아빠는 설거지도 하지 않고 늘 누워만 있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자기가 설거지를 도와주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젠 그래도 엄마가 누가 잘해서 돈을 이렇게 모았느냐고 물어보면, 내가 "아빠가 잘 벌고, 엄마가 잘 모아서 그렇지"라고 대답한다. 예전에는 엄마빠순이었던 내가 그렇게 대답하니 엄마는 서운해하는 것 같다. 왜 아빠편만 드냐고 했다.

여전히 아빠는 돈을 벌고, 엄마는 아이들을 키운다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이런 글 역시, 나에겐 무언가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아빠 세대의 어머니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라 그들까지 변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 시대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얼마나 힘들게 우리들을 길렀는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작년 말쯤 엄마가 빨래를 하다가 허리를 다쳐 더이상 손빨래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할머니 간병을 하러 다니셔서 밤늦게 돌아오셔서, 낮에 설거지는 내가 모두 해두었다. 엄마는 처음에는 며칠 혼냈지만, 그 뒤로는 별 말씀 없으셨다. 엄마에게 도움이 될 정도의 살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큰삼촌도 이제 밥을 먹고나면 자기가 그릇을 담글 줄 알게 되었고, 물을 직접 끓이고 밥을 직접 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들이 뭔가 일을 하게 되는 것은 더이상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들이 없을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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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미래였다. 세상 어디에선가 작 나름의 색깔로 빛을 내고 있을 아들 모습이 떠올랐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그러다 한 번쯤 내 생각도 해주겠지?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탄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갑자기 오십 년 후가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다. 먼 훗날 잠시나마 나를 기억해준다면, 비록 이 세상에 영원한 소멸은 아닐 터였다.'

p. 144


엄마들은 종종 자기가 자식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모르는 것만 같다. 나는 믿는다. 나의 외할아버지처럼, 외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절대 잊히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아주 작은 단서에서도 그들을 떠올릴 것이다. 비 오는 창문을 바라보는 다락방 위에서도 가끔은 감성에 젖어 울 것이다.

타임머신에 무언가를 넣고 40년, 50년이 지나 열어본다면 무엇이 들어가는 게 좋을까? 아들이 자기가 생각해서 넣어야 할 것을 엄마에게 미루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었고, 그걸 또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는 엄마의 모습이 귀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택해서 넣은 물건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만약 우리 엄마에게 이 일을 미뤘다면 엄마는 뭘 넣어줬을까? 그게 뭐든, 50년 뒤에 그 물건을 보고 엄청나게 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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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상처의 뿌리가 깊을 줄 알았다면,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돌을 던진 아이보다 내 아이의 부족함부터 찾으려 했던 나였다. 아이들 싸움에 볼썽사나운 얼느으로 비칠까 두려워했던 나였다. 끝내 비뚤어진 아이들과 이기적인 부모들, 미온적인 선생에게 제대로 말 한마디 못 해 본 나였다. 나는 정말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저잣거리를 떠도는 무지렁이 여편네 같을지언정, 부당함에 대항해야 했다. 멱살이라도 잡았어야 했다. 세상이 두렵고 외로웠던 딸에게 나만 믿으라고 해야 했다.

기도밖에 할 게 없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엄마임이 틀림없다.'


언젠가 한번, 엄마와 둘이서 집을 대청소하던 중에, 엄마가 23살 때인가? 24살 때 쓴 일기장을 봤다. 엄마는 언니를 잘 키울 자신이 없어 하며 우울해 하고 있었다. 아빠랑 계속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와 나이도 같을 20대 초중반에 언니를 낳고, 동네 사람들에게 '애가 애를 낳았네'라는 놀림을 늘 받았다던 엄마. 결혼 생활을 힘들어하고 육아를 힘들어하는 엄마. 엄마도 아빠에게 확신을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기를 일찍 낳은 것을 후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엄청나게 잘했는데, 대학에 갈 돈이 없어 가지 못 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나라에서 배급을 받아 생활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번 놀러 다른 지역에 갔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은행에 추천서를 써주려던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모든 꿈을 접고 그냥 엄마가 되었다. 어려운 중고등학교 수학까지 직접 가르쳐주던 엄마였다. 엄마도 얼마나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얼마나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랬을까. 나라도 그랬을 거다. 나라도, 후회하고, 또 후회했을 거다.

그런 가난한 엄마와 아빠가 만나, 나를 대학 멀쩡히 보내 줄 수 있을 정도로 살림을 키워주셨다. 덕분에 누군가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남부럽지 않게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막, 대학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고향 친구들과 하는 대화와는 완전 다르게 "너는 이번에 어디가?", "나는 유럽" 누구는 미국, 누구는 몽골, 이런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고향친구들과는 알바를 하는지, 등록금을 어떻게 해결할지, 취업을 어떻게 할 지를 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자기합리화 같은 게 아니라 나에겐 서울 생활도 충분히 힘들고 어렵고 외국 같기만 하다. 다른 나라에 가기 위해 모든 것을 꾹꾹 눌러 참고 돈을 모아서 펑펑 쓰고 돌아오는 것보다 지금, 내가 있는 여기서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다. 어릴 때는 당연히 부러웠다. 만약 누가 여행을 보내준다고 하면 좋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내 일상의 행복을 깨뜨리면서까지 불확실한 미래를 기대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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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은 몇 해 전부터 그녀가 끼니를 챙겨주던 길고양이였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덥석 먹이로 달려드는 법이 없는, 시크한 고양이라고 했다. 한 시간 넘게 먹이 주변을 배회하다가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쯤에야 낚아채듯 먹어치우고 다시 어디론가 숨어버린다고 했다.

필경 깊은 마음의 상처가 있을 거야. 절대로 낫지 않는 상처도 있는 법이지.'

- page 279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다 보면, 보이는 게 있다. 어떤 고양이는 손을 할퀴고서 최선을 다해 먹이를 물고 도망을 가버린다. 어떤 고양이는 막 사람에게 엄청나게 애교를 떨다가 밥을 주고 나면 손목의 약점을 물어버리고 밥을 먹는다.

우리 집 고양이 절반 이상은 길고양이를 아기 때 주워서 기른 애들인데, 신생아들과 달리 인간에게 한번 버림받은 아이는 2년 6개월이 지나도 아직 우리 가족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다른 고양이들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다. 구내염이 심해 이빨이 모조리 빠져서 버림받은 듯한 그 아이는 혀로 햝아서 사료를 먹곤 한다. 씹지 못해 늘 고통스러워한다. 병원에 데려가도 치료를 해주는 것도 잠시, 다시 이빨을 나게 해줄 수는 없으니까. 얼마나 사람들은 사악해질 수 있는 걸까. 왜 동물도 그대들과 같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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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새끼들에게 더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가 된 것이다. 계속 먹이를 주면 새끼들은 자기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추락하고 만다. 날지 못하는 새! 새 중에서 제일 불행한 새가 아닐까 싶다. 새의 양육 방식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혹시 나는 계속 먹이를 들이대며 날지 못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조금 날아보다가, 힘들면 언제라도 둥지로 돌아와도 좋다고 속삭이지는 않았는가? 아니, 어쩌면 둥지가 비는 것이 두려워 아이들을 떠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툰 날개짓이 있어야 비상하는 법도 알게 된다.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나서야 굶지 않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둥지가 비어야 비로소 나도 나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엄마의 둥지에, 아빠의 먹이에 익숙해 있던 아이들이 시시때때로 둥지로 찾아올 것이고, 먹이를 갈망할 것이다. 그럴때마다, 너무 비대해져 더는 날지 못하는 새를 떠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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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글쓴이 엄마는 이제 나로 살기로 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아이들을 보살핀다. 하지만 어디서 그랬다. 왜 자기계발을 하며 살아야 하고 꿈을 이루면서 살아야 하느냐고, 자신의 꿈은 누군가를 보살피면서 행복을 얻는 거라고, 그런 사람도 있다고. 모든 엄마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엄마, 누군가의 엄마는 그랬다. 엄마가 젊은 시절의 꿈을 못다 한 것은 정말 슬픈 일이지만, 엄마는 마치 보살피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우리가 다 독립해버리니 할머니를 보살피러 갔다. 매일같이 병원에 출석해서 간호인으로 착각 받을 정도라고 한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일까? 아니면 엄마는 그렇게 하는 데서 존재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 무엇보다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엄마가 그리워지는 어느 날, 또는 자녀들이 그리워지는 날 한번 읽어보면 정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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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니까
- 마침내 엄마 사표, 이제 '나'로 살기로 했다. -


지은이 : 박영숙

출판사 : 디스커버리미디어

분야
에세이

규격
변형 신국판(143*195), 전면 컬러

쪽 수 : 288쪽

발행일
2019년 1월 10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88829-07-1 (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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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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