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몽유도원도>의 신비 [시각예술]

글 입력 2019.01.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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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권축의 제찬시를 지은 문인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현실적 의미로 몽유도원도를 해석하는 유가적 입장이고, 둘째는 초월적, 환상적 의미로 몽유도원도를 해석하는 도가적 입장이다. 유가적 입장은 도원을 현실 치세의 이상이라고 보고, 도원이라는 상징을 통해 백성들이 평화로운 환경에서 기쁜 마음으로 노동하며 자득 자락(自得自樂) 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현실적인 유가의 처세를 반영하였다. 따라서 다양한 도가의 신선적 전고(典故)를 이상 국가인 ‘도원’의 황홀함과 아름다움을 묘사하여 신선 같은 삶을 현실에서도 구현하고자 하는 건설적인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다. 이러한 유가적 태도를 보인 문인으로는 신숙주, 이개, 하연, 김담, 고득종, 강석덕, 박연, 서거정, 김수온, 박팽년 등이 있다.


반면 도가적 입장은 속세의 부귀영화, 또는 권력과 명예에서 느껴지는 허망함으로 인한 속세 탈피 욕구 등의 내면적 세계를 다루고 있다. 도가적 태도를 보인 문인으로는 송처관, 정인지, 김종서, 윤자운, 이예, 만우, 최수 등이 있다. 아래에서 본문은 <몽유도원도>의 제발시를 통해 더욱 자세하게 ‘몽유도원도’라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유가와 도가적 입장이 어떤 식으로 공존하며 또 어떤 식으로 차이점을 드러날 수 있는지에 관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몽유도원도4.PNG


 
유가적 입장과 도가적 입장의 공존


우선, 21편의 제찬시는 모두 ‘도원몽’을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유사한 구성요소를 가진다.

첫째로, 각각의 제찬시는 모두 <몽유도원도>의 ‘화면’에 근거하여 내용을 구성한다. 즉 화면을 상세하게 묘사하거나, 화면 속에 담긴 정취를 짚어내서 그림에 관해 자신의 상상을 더 하여 논의하는 식인데, 이들의 공통된 특징으로는 야산(野山)에 대한 묘사를 거의 하지 않고, 시구의 대부분을 ‘도원’에 대한 묘사에 할애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각각의 제찬시는 모두 나름대로 ‘해몽’을 하고 있으며, 안평대군이 ‘꿈을 꾼 행위’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논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도원에 대한 상이한 해석이 나타나게 되는데 한 가지 공통된 부분은 도연명의 <도화원기> 속 무릉도원을 떠올리고 이를 각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하고 있거나, ‘꿈’이라는 특성에 집중하여 꿈 자체에 대해 논하는가 하면 중국의 전고(典故) 중 꿈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수 인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박팽년의 제찬시는 아예 전반적으로 ‘꿈’에 대한 논의만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몽유도원도>의 제찬시는 화면을 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제화(題畵)적 요소와 도원을 해석하는 시인들의 개인적인 사상적 요소로 구성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제찬시를 분석할 때, 우리는 제화적 측면과 사상적 측면에서 각각의 시인들이 어떤 식으로 그림을 언어화하는지, 또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생각은 어떤 식으로 차이점을 보였는지는 파악해볼 수 있다.



유가의 사실적인 화면묘사 VS 도가의 상상적인 화면묘사


사실적인 화면묘사란, 화면에서 관찰될 수 있는 구조, 색채 등에 충실하여 그것을 ‘시’라는 형태로 풀이한다는 것인데, 구조와 색채 같은 화면적 요소를 가장 효과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신숙주의 제찬시이다. 20수의 칠언절구 중에서 3 ~ 13수는 화면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그는“연기 자락 아련히 산기슭을 감싸고 있고, 동구 밖 어귀에는 구름 안개 항상 피어오르네. 때때로 떨어진 꽃잎 물 따라 흘러오는 것 보이지만, 도원이 어드메인지 알 길이 없네!” 라는 구절부터 시작하여, “무너져 내릴 듯한 절벽에 물줄기 굽이쳐 구슬 같은 방울이 튀고, 깊숙한 곳 산허리 휘도는 곳에 연기 같은 안개 피어나네. 아득히 뻗은 길 몇 구비를 맴도는가? 채찍 드리우고 곧장 용사굴을 찾아든다 ... 우거진 숲 끝나는 곳에서 갑자기 길이 탁 트이더니, 황홀한 경지에서 삼천으로 접어드니 별천지일세 ... ”라는 구절에 이르기까지 현실계와 경계부에 대해 묘사하며, 마침내 “띠풀 지붕 흙 섬돌은 누구의 집이런가? 사립문은 바람이 부는 대로 여닫히며 반쯤은 기울었네 ... 만 그루 싱싱한 복숭아나무 비단에 수놓은 듯 펼쳐져 있고, 신선 바람이 멀리서부터 찬란한 안개 불어 보내네 ... 신선들 이곳에서 삼천 년을 놀았다니, 인간 세상 일 년에 꽃 한 번 피는 것과는 다르다네” 라는 구절로 도원 부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는 좌에서 우로 전개되는 화면의 구도를 차근차근 따른 것이며, 다른 제찬시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상세한 묘사의 나열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 고득종, 강석덕, 박연, 이개, 김담, 하연 등은 주로 도원 부분의 묘사에 집중하였는데, 고득종의 제찬시를 살펴보면 그는“강물 줄기는 스스로 파도를 일으키니 배 홀로 뒤뚱거리고, 비췻빛 나는 하늘은 첩첩 산봉우리를 에워싸고 있네. 고개를 돌려보니 하늘만 넓고 푸르고 사람 하나 없는데, 복숭아나무 숲 햇볕에 마냥 화사하기만 하구나. 빨간 꽃봉오리와 푸른 잎은 띠풀과 어우러져 반짝이고, 멀고 가까운 곳에 아지랑이 일고 봄볕은 사람을 미혹게 하네!” 라는 구절을 통해 화면상의 뚜렷한 색채에 집중하여 이를 시적 언어로 전환했다. 이처럼 유가적 입장의 제찬자들은 회화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화면을 가능한 면밀히 관찰 및 묘사하여 회화와 시문의 융합을 표현하길 시도했다.

반면 도가적 입장의 제찬시는 화면에 나타나지 않은 풍경, 사물, 또는 인물 등을 짚어 제찬자의 상상적 세계를 나타낸다. 이에 대해서는 이현로의 도화부 묘사를 살펴볼 수 있다. "옥으로 지은 궁전에 때는 바야흐로 이른 봄, 구리 항아리 시계는 더디기만 하구나. 상아 침대에서 베개 베고 누워서, 비단 창문에 휘장 내렸네 ... 풍백이 앞장서서 인도하고, 뇌사가 길을 헤치네. 흰 사슴에 올라타고, 푸른 용에 채찍 하며 나갔다네. 옥 구슬 허리에 차고 구름 깃발 휘날렸다네 ... ”  라는 구절에서, 그는 화면에는 등장하지 않는 갖가지의 상상물을 더하였고, 또한 “시냇물에는 금고의 붉은 잉어가 뛰고, 들판에는 군달의 푸른 소가 풀 그늘에 몸을 숨기네” 라는 구절에서는 붉은 잉어, 푸른 소와 같은 도교적 소재를 삽입했다. 그리고 이적의 제찬시 “짚신 신고 막대 짚어 발자취를 찾아보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멋있게 노니네!” 라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아무도 없어야 하는 도화원에 개인적 상상을 더 해 아이와 어른을 등장시켰다.

이렇듯 도가적 입장의 제찬시를 살펴보면, 그것들은 대부분 신계(神界)를 지향하며 도원을 신선이 사는 곳으로 매칭하고, 시인 그 자신도 신선이 되는 듯 한 환상을 나타낸다. 이러한 환상에 심취한 시인들은 따라서 실제적인 화면에서 벗어나 그림에 구속을 당하지 않는 자유롭고 넓은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유가사상의 표출 VS 도가적 사상의 표출


유가적 입장의 제찬자는 안평대군의 꿈을 ‘치세의 계시몽’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적극적인 현실 개정을 추구하거나 현실 안에서의 탈속을 지향하는 유가적 사상을 나타낸다. 고득종은 “꿈속에서의 맺음은 그림자가 형체 따르듯, 옥으로 만든 베갯머리에서 맑은 경지 계시받았다네 ... 원컨대 게으르지 않으며 더욱 노력할지니, 다스리는 방법은 마땅히 선인의 책에서 구하여야 한다오. 신선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야기할 만한 것이 못 되나니, 세상 다스림에 있어 아무런 공도 없다네. 바라건대, 주공의 충성심을 있는 대로 본받아서, 아무쪼록 나라의 앞날이 주나라와 같게 하소서” 라고 하며 괴력난신을 부정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이상적 방법을 논의하는 등의 철저한 유가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박연 역시 “골똘한 생각으로 꾸는 아름다운 꿈은 반드시 징험이 있을 터, 황제가 화서씨 나라에서 이상사회 보았다는 것도 믿을 만한 이야기.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형왕이 베개맡 꿈속에서, 부암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무협으로 향하였음을. 그대는 또한 알지 못하는가? 장주가 병풍 맡 꿈속에서, 주공을 흠모하지 아니하고 호랑나비를 그리워하였음을 ... 문장과 도덕은 은하수 가에까지 뻗쳐 있고, 제도와 경륜은 임금님의 정사를 보필한다네. 세상의 도리와 백성들의 풍도를 못내 걱정하여, 주공의 마음과 공자의 뜻을 한결같이 추구한다네.”라는 구절을 통해 안평대군의 꿈을 현실을 도원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징조를 담은 ‘아름다운 꿈’이라고 해석하고, 중국의 황제가 화서를 꿈꾸고 이상적인 정치를 했다는 전고, 그리고 공자를 찬양하며 장자의 호접몽 등을 헛된 것이라 비난하여 유교적인 사상을 드러냈다.

이외에, 서거정은 “인간 세상 화덕 같은 불덩이는 날로 열기 더하며 타오르는데, 신선들 사는 마을 아득히 이 세상의 저 끝만 같아라. 옥을 갈아 먹는 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은둔을 하려 해도 산을 살 돈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랴? 두보의 청정반 찾을 것 없고, 창려의 옥정련 생각도 부질없는 일.” 이라는 구절을 통해 속세에 대한 개탄, 그리고 신선을 부정하고 현세적인 도에 힘을 쓰고자 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유가의 사상을 드러냈다.

이와 대비되어, 도가적 입장에서는 안평대군의 꿈을 신선계를 노니는 선유(仙遊)몽이라고 해석하고, 제찬자 자신도 속세에서 탈피하여 이러한 선유에 동참하길 바라는 이상을 나타낸다.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호접몽을 도원몽에 비유하는 것인데, 그 예로는 최형, “이 몸이 나비된 줄 뉘라서 알았으리, 이곳이 정녕 선계라고 서로들 놀라워하였네.” ; 만우, “잠자는 동안 훨훨 날으던 베갯머리 나비, 깨어나니 웬일로 다시 침상 위의 몸.”  등이 있다. 또한, 도가적 제찬시는 도원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현실을 묘사하고, 인생의 허망함, 불안함 등을 나타내어 현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정인지는 “오호라, 시끄러운 티끌 세상에 갇혀 답답한 이모, 빽빽하던 양쪽 귀밑머리 어느 것 헤성하여졌구나 ... 놀을 먹거나 밤이슬을 마실 필요도 없이, 답답하고 누추한 티끌 세상을 훌쩍 뛰어넘으셨네” 라는 구절을 통해 현실 세계를 시끄러움, 답답, 누추 등의 키워드로 형용하고, 속세에 대한 노골적인 부정을 나타낸다. 이러한 부정은 유가적 태도에서 수양을 통해 현실의 자신을 보다 낫게 고치고자 하는 것과 매우 다른 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유가적 입장과 도가적 입장이라는 두 개의 다른 차원에서 동시대의 문인들이 어떤 식으로 ‘몽유도원도’를 해석하고, 더 나아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지 그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는 조선초기의 ‘회화’라는 것이, 문인들의 정치적 이상 또는 그에 대한 회의를 시각화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림의 제작과 감상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거나 감상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현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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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안휘준, 이병한, 『安堅과 夢遊桃源圖』 (개정판. ed.), 서울: 藝耕, (1993).
2. 고연희, 「夢遊桃源圖 題讚 硏究」, (1990).
3. 이형대, 「15 세기 이상향의 풍경과 추체험 방식 -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 와 그 제찬 (題讚)을 중심으로」, 『한국시가연구』, 7, 375, (2000).
4. 고연희, 「조선초기 산수화와 제화시 (題畵詩) 비교고찰」, 『한국시가연구』, 7, 343, (2000).
5. 권현희, 「몽유도원도 의 심미(審美)와 창신(創新)에 관한 도교 미학적 고찰」, 『미학 예술학 연구』, 47, 215, (2016).


[한선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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