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일상을 위협하는 악에 대하여, 연극 '빌미'

글 입력 2019.01.1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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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에 대하여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제시한다. 나치의 소속의 행정 공무원인 아이히만이 전후 전범재판에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했음을 설파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악의 근원에 대한 고찰을 결론짓는다. 아렌트의 주장에 의하면 악은 누구에게나 있는 평범한 그 무언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악은 범죄자로 여겨지는 특정한 누군가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렌트는 누구나 특정한 상황이나 환경에 노출되면 자신도 모르게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한다. 즉, 평범함이란 누구나 그렇게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악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덕목이다. 이를 극복하고자 아렌트는 사유를 통해서 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악은 동양에서는 개인의 수양 부족으로, 서양에서는 중용을 지나친 상태로 여겨진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어쨌거나 악은 필요 이하나, 필요 이상의 단계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본다면 악은 결코 마주하기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일상은 철학이 고민하고 우려하던 문제와 상당히 가까이 있다. 인문학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인 것처럼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대소사에는 선과 악, 미와 추 같은 깊은 사고를 요하는 일이 많다.


 


파멸의 빌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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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인 <빌미>는 악의 근원에 대한 고찰을 일상의 요소에서 자아내는 작품이다. 오랜 시간 이웃으로 지내온 두 가족 사이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다. 작품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딸의 유학 송별회를 위해 펜션에 온 최교수 부부에게 딸 승연은 자신의 약혼자 진성필을 데려와 결혼을 인정해 달라고 호소한다. 성필이 자신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승연을 유혹했다고 판단한 최교수 부부는 둘 사이를 뜯어말리고, 흥분한 진성필이 천식발작을 일으키며 돌연 질식사한다. 최교수는 성필의 사망이 펜션을 관리하는 김철수의 아들 하늘이 때문이라고 뒤집어씌운다. 경계성지능장애를 가진 하늘은 본의 아니게 이들이 감추고자 하는 과거의 행적들을 들춰내기 시작하는데...

 

갑작스레 일어난 죽음으로 인하여 두 가족은 죽음의 책임에 대한 갈등을 겪는다. 살인을 중심으로 굴종과 유착관계를 토대로 일어나는 일상의 위협, 이른바 폭력이 얼마나 무자비한지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극중 최교수 부부는 우리사회에서 권력을 지닌 자를 암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것들을 갖은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제거한다. 은폐, 공갈, 회유, 협박 등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가하며 자신을 챙기기 급급하다. 이 과정에 살인 또한 마찬가지다. 살인은 극도로 이기주의적인 양상의 끝으로 사회 곳곳에서도 권력에 의한 폭력이 만연함을 은연중에 알리는 사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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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빌미>는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서 거짓을 일삼는 인간의 파렴치한 모습을 묘사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동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타인에게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조명한다. 작품이 비추는 말미에는 권력에 굴복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네 부조리한 사회가 있다.


동시에 부조리한 사회는 자신을 챙기고 타인을 위협하는 것이 악인 줄도 모른 채, ‘바람직한 진실’과 ‘바람직하지 않은 거짓’의 경계를 무시한다. 또한, 행위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 판단 무능의 만연함을 묘사하기도 한다. 따라서 극중 인물과 사건을 통해서 일상을 위협하는 요소는 곧 그 자체로 악이며, 사유를 통해서 악과 선을 구분할 것을 강조한다. 그렇게 해야만 인간의 삶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정신적 가치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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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빌미>는 2014년 제1회 서울연극인대상 대상, 연기상, 극작상을 수상하고 ‘한국연극베스트7’에 선정된 연극 ‘변태‘와 2018년 제5회 서울연극인대상 대상, 연출상을 수상한 연극 ’불멸의 여자‘로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극단 인어의 대표 최원석이 작·연출을 맡은 2019년 신작이다. 그가 이번에는 인간의 악의 본성을 밑바닥까지 집요하게 파헤쳐 극사실주의적이지만 매우 소극(笑劇)적인 방식으로 두 가족 간의 살인사건을 무대화할 예정이다.




극단 인어



2012년 창단 이후 극단 인어는 연극 <변태>, <불멸의 여자>, <극장 속의 인생>, <창밖의 여자>, <인어를 사랑하다> 등 일련의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을 통하여 현시대를 지배하는 자본 및 권력과 폭력의 문제를 탐색하는데 집중하여 왔다. 또한 사실주의 연극형식의 현대적 수용을 완성하기 위해 생략과 압축을 바탕으로 한 비사실적 무대와 극사실적 연기의 결합을 지속적으로 시도하여 왔다.


극사실적 연기라 함은 인간의 행동을 재현하는데 있어 그럴 듯한 통속적 감정과 감상성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과학적인 태도로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고 복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작업방식을 통해 극단 인어는 무대장식에 묻혀 점차 왜소해져가는 배우의 존재를 회복하고 최종적으로는 온전히 배우가 구사하는 말의 힘을 주축 삼아 관객들과 동시대의 문제점을 공유할 것이다.




공연정보



공연명

연극 <빌미>


공연일자

2019.01.25.(금) ~ 2019.02.03.(일)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공연시간

평일 20:00

2월 1일(금) 16:00 20:00

주말 16:00 | 월요일 쉼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 비지정석


러닝타임

120분


관람연령

14세이상 관람가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극단 인어


출연

박정순, 김철리, 홍윤희

송현서, 한규남, 이종윤, 조수정


스태프

작·연출 최원석

무대 심채선 / 조명 신호 / 의상 김정향

분장 이동민 / 무대제작 김충신 STAGE ONE

조연출 조성관 이정경

기획·디자인 조수나 별별창작소 / 홍보 김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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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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