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운명, 선택, 삶, 바다 [도서]

글 입력 2019.01.0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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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마음대로 하라지. 그게 네 운명이라면.

 

30.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미 곰의 죽음 또한 자신을 숲으로 이끌기 위한 운명의 한 단계였으리라.

 

88. 자신의 운명을 마주할 시간이 임박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90. 그 내면에는 오직 자신의 운명을 따라 걸어온 작은 곰을 향한


  

책 <작은 곰>을 읽는 내내, 꽤 자주 등장하는 ‘운명’이란 두 글자가 마음에 걸렸다. 어려웠다. 운명이 있다고 믿는 편인데도 그랬다.



[운명]

 

명사

1.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네이버 국어사전

 


운명에는 ‘이미 정하여져 있’다는 뜻이 있어서, 운명을 믿는다고 말할 때 나름 조심스럽다. 운명을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믿는 운명은 수동적인 의미보다 안정적인 의미에 가깝다. 나에게 운명의 ‘이미지’는 나의 선택을 부질없게 만들 불가항력이 아닌, 그 선택이 모여 어떠한 모양이 되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실마리 같은 것이다. <작은 곰>에서 말하는 운명도 비슷한 이미지 같았다. 그러니까 운명이란, 주체의 선택을 아무 쓸모없게 만드는 폭력이 아니라, 주체의 주체성이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다는 걸 가정했을 때 필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외부의 어떤 힘이다.


 

30. 삶과 죽음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도록 치밀하게 짜 놓은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완전무결한 자연의 이치이기에, 살아 있는 한 그저 이끌리는 곳을 향해 걷기만 하면 된다. 그 후의 일은, 죽음은 그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삶은 한 번 발사된 탄환과 같다. 발사되었으므로, 직진하는 것이다. 때론 쉬기도 하고 여유를 즐기기도 하지 않냐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것 또한 완전한 멈춤은 아니다. 일단 계속된다는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탄환에 작용하는 저항력이 속도, 진로 방향, 최종 도달 지점을 결정하듯, 마찬가지로 삶의 고난과 어려움은 각각의 삶의 패턴이나 모양을 결정한다. 이 모양을 만드는 절대적인 힘을 ‘운명’이라 하는 걸까. 그러니까, 삶이라는 게임 법칙의 설계자를. 설계자라. 그렇다면 삶과 운명의 출발점은 같은 것인가. 또 그렇다면 운명이 삶인가.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살게 되는 것이 존재의 운명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이 같은 삶에 어떤 존재는 ‘내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다. 내던져진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걷는 것이다. 주어지는 숙명은 무언가를 깨닫고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살게 된 이유에 관하여, 나를 살게 하는 무엇에 관하여. 사명이나 꿈, 선과 악, 혹은 바다에 관하여.


비극은 여기서 시작이다. 삶 외부에 있는 운명이란 힘은 주체의 인지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 알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운명이 줄 수 있는 답은 단 하나, "너는 절대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58. 작은 곰은 대자연의 신비 앞에서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한 이 숲의 악을 모두 없애고 말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다졌다.

 

86. 사명 따위는 잊었다. 삶과 죽음, 선과 악에 대해서도 더 이상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어딘가에 있을 바다를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애초에 삶은 작은 곰의 의지로 시작된 게 아니었다. 그가 삶을 선택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작은 곰이 어떤 이로운 결과를 예상하고 자신만의 의지로 선택한 것들이 부른 ‘진짜 결과’는, 얼마든지 작은 곰을 소외시킬 수 있었다.


작은 곰에게 선과 악은 단순한 문제였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삶에 속한 내부자에게 삶의 외부를 조망할 방법은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삶을 읽어낼 수 없다. 이 같은 관점에서 '선과 악'을 심판하려 한 작은 곰은 너무 순수하거나, 오만했다고 볼 수 밖에. 삶은, 주체가 ‘그렇게 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윤리나 양심을 거스르는 일을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능숙하게 비웃는다. 그러니 어떤 일에든 주체는 ‘옳은’ 선택을 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삶은 그런 주체에게 ‘사명 따위는 잊도록’ 만든다.


주체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는 그래서 축복인 것 같은 재앙이다. 자신의 의지라 마치 자신이 휘두루는대로이루어질 것처럼 은연중에 확신하게 되며, 그 확신은 자주 주체를 배신한다.



18. 작은 곰은 덜컥 겁이 났다. 머리 뒤로 입구에서 비춰 들어온 햇빛이 아직 어렴풋이 느껴졌다. 아직 늦지 않았어, 초원에서 나뒹굴며 허기나 채우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운명은 주체가 하는 선택에 ‘얼마만큼’ 관여하는가.


예를 들어, ‘어째서인지’ 내키지 않는 마음 때문에 초원을 벗어나 미지의 땅으로 걸음을 옮기는 작은 곰의 선택은 온전히 주체적인 선택인가, 혹은 운명이 관여한 결과인가. ‘진창에 빠지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의지는 온전히 작은 곰의 소유인가, 아니면 운명이 그런 의지를 발휘하도록 작용했나. 운명은 존재를 어느 정도까지 용납(주체가 운명에 거스르려 할 때)하고, 또 운용하는 걸까.



93. 운명은 여기까지다. 작은 곰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으로 운명은 제 역할을 다했다. … 작은 곰이 선택할 차례다.

 


운명은 주체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힘인지, 주체는 운명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작은 곰>에서 한 가지 분명한 건 운명이 이끄는 단계가 있었고, 주체가 선택하는 단계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운명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문장 정도로 결론지을 수 있겠다.


‘운명은 주체를 어디론가 인도한다. 운명이 주체의 선택에 얼마 만큼 관여하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주체는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진 않더라도, 그렇다고 선택의 결과를 완전히 장악할 수도 없다.’

 

*


어쩌면 삶은, 운명은, 애초에 작은 곰에게 사명 따위를 부여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사명’이란 건 작은 곰 스스로 생각한 목적이었다. 그게 아니라 차라리 운명이 곰에게 바랐던 건 다른 게… 그러니까 단순히 바다를 바라보는 것. 그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이상한 결론도 없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사는 존재는 각자가 ‘사명이라고 믿는’ 한 가지씩 갖고 살아갈 것인데, 그게 얼마나 유효한 것일지. 거대한 사명을 갖고 삶에 배신(삶은 주체를 배신할 목적이 없었다.)당하며 살 것인지,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선과 악 따위는 뒤로 던져둔 채로 살 것인지, 그 둘의 사이를 적당히 배회하며 살 것인지. 이상한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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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목: 작은 곰
분류: 문학 / 한국문학
글·그림 : 이희우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8년 11월 19일
판형: 130*195(mm)
페이지: 96쪽
정가: 12,000원
ISBN: 979-11-965176-1-8 03810
CIP제어번호: CIP2018035052


책소개

홀로 외롭고 고단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건네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 우화

《작은 곰》은 ‘어른들을 위한 잔혹 우화’라는 문구처럼 숲속 동물들을 만나며 인간 군상과 삶을 알아 가는 작은 곰의 잔혹한 여정을 다루고 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 《길 위의 토요일》이 자전적 이야기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했다면, 《작은 곰》은 홀로 외롭고 고단한 길을 걷는 이들을 위로하며, 아무리 혹독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함께 하는 작가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같은 날 낳은 새끼 한 마리를 먼저 떠나보내서였을까, 작은 곰을 향한 어미 곰의 사랑은 각별했다. 그날도 싱싱한 송어를 맛보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어미 곰은 작은 곰을 데리고 강가로 향한다. 송어 사냥에 정신이 팔린 사이 밀렵꾼이 나타나, 작은 곰은 그만 어깨에 큰 상처를 입고 어미 곰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 눈앞에서 어미를 잃은 작은 곰은 밀렵꾼에게서 겨우 도망쳐 캄캄한 고목 속에서 며칠을 보낸다. 그리고 덩굴 가지가 얼기설기 엉켜 휘휘 하고 휘파람 소리를 내는 구멍 안으로 홀린 듯 발을 들이는데…….


작가 소개

이희우는 필명이다. 2017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길 위의 토요일》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설을 쓰기 전에는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지금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책 속으로

막 상처가 아문 터였다. 작은 곰은 몇 주 동안 꼼짝도 않고 캄캄한 고목 안에서 보냈다. 밖으로 나오자 청명을 찌를 듯 높게 솟구친 가문비나무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췄다. 사방을 덮은 초록색 이끼와 무성한 고사리로 고요한 가운데 숲은 깊게 잠든 듯했다. 잎에 맺힌 물방울이 조그마한 웅덩이로 떨어지는 청아한 소리와 멀리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만 들려왔다. 평온해 보이는 숲속 오후의 풍경이다. 하지만 작은 곰에게는 적막으로 느껴졌다. 그날의 어미 곰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9p

어느 곳이든 끝은 있기 마련이다. 진창에 빠지더라도 허우적거림을 멈추지 않는다면 하늘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설령 그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맞아 다시 진창 속으로 고꾸라지더라도 끈기만 있다면 절대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겁을 먹고 진창 속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겁쟁이나 하는 짓이다. 물론 다시 밀렵꾼을 만날까 봐 두려워 돌아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겁쟁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굳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미지를 향한 호기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
---19p

“바다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마침내 독수리가 입을 열었다.
들어 봤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왜일까. 작은 곰의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작은 곰은 그곳에 가면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휘파람 소리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31p

한때는 어서 자라 어미 곰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미 곰은 힘이 무척 셌다. 호숫가 일대에서는 가히 덤빌 자가 없을 정도였다. (중략) 어미 곰이 싸움에서 진 것은 밀렵꾼과 마주친, 바로 그날 딱 한 번뿐이었다.
41~42p

“금방 돌아올 거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다음에는요?”
“네?”
“다시 떠날 거죠?”
이 이상한 감정은 대체 무얼까. 작은 곰의 가슴 한쪽이 천둥새의 번개를 맞은 듯 심하게 아렸다.
---47p

“이해 못 할 거예요. 태어난 그 순간부터 평생을 약자로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이란 이렇듯 무섭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불안에 떨면서 숨어 지내는 삶이 너무 아깝잖아요. 잘 마른 나팔꽃 씨앗을 찾아서 던져 주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으니, 설령 저 짓눌린 토끼들처럼 죽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름대로 고군분투한 거죠.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어차피 나도…….”
---51p

천공을 반으로 가르는 전나무들 사이로 어느 전설에나 등장할 만한 거대한 동물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려 꽂아 놓은 듯 세월의 무게를 모두 벗어던지고 장렬히 고사한 전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다. 그 높이와 두께로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족히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전에 뿌리를 내린 듯하다. 지금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 고사목이 처음 싹을 틔우기도 훨씬 전,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된다.
--61p

하나의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더욱이 그 땅이 햇빛과 영양분 모두 충분한 울창한 숲이라면 씨앗은 금세 싹을 틔우고 튼튼한 줄기로 자라난다. 줄기는 수일 내에 땅속 깊숙이 촘촘한 뿌리를 내려 무성한 가지와 잎을 만들어 낸다. 악도 그 성질과 비슷하여 한번 뿌리를 내리면 빠르게 자라난다.
---70p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이 잎맥을 따라 한데 모였다가 또르르 떨어지면서 퐁 하는 소리를 냈다. 먼저 떨어져 땅에 고여 있는 빗물을 밀어내는 소리다. 현재가 과거를 매몰차게 내리치는 소리다. 그래도 자꾸만 옛 생각이 나는 것은 어째서일까.
---73p

작은 곰도 어미를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깝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잃은 슬픔을 안다. 그러나 그 슬픔이 아무리 클지라도 새끼를 잃은 어미의 심정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무너진 하늘의 파편에 가슴을 찔리는 것보다 더 아프다.
---80p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슬픔과 목적을 지닌 두 마리 맹수가 한자리에서 상대방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목적이란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자 사명을 행하는 힘이다. 이는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이끌려 움직이는데, 이것이 바로 운명이다.
---81p

작은 곰은 울부짖으며 족히 수 킬로미터를 달렸다. 어쩌면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달렸을지도 모른다. 거리야 어찌되었든 상관없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숲을 빠져나와 캄캄한 밤, 다시 혼자가 된 후였다. 
‘지금껏 나는 무엇을 한 걸까…….’
멀리 새끼 잃은 어미 새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소리 없이 울렸다.
---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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