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자본주의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온 느낌, 분노하세요

글 입력 2019.01.0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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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자본주의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온 느낌

분노하세요


연극 <분노하세요>는 생생한 라이브 현장으로 기억된다. 연극을 본지 어느덧 몇일이 지나가는 지금도 필자가 그날 방청객 알바를 하고 왔는지 의문스럽다. 무엇보다 그 단촐한 아르코 소극장을 촬영현장으로 탈바꿈하는 극단의 연출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필자가 최근에 본 문화 콘텐츠 중 가장 다이나믹한 재미를 준 연극이었다. 연극은 시도때도 없이 공간과 시간을 넘나든다. 연극이 한 공간에 묶여있다는 프레임을 재미있게 깨부수고 싶다면 <분노하세요>는 일순위로 추천될만하다. 사실 연극 <분노하세요>가 최종적으로는 전하는 메시지 자체는 어디에서 본 시구를 다시 읽은 것처럼 흔한 편이었다. 고전적인 메시지란 그만큼 반복해도 좋지만, 사실 너무 많이 접해왔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연극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가 프레임을 갖고 논다는데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 연극에는 무려 네개의 공간이 등장한다. 연극은 <무대-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촬영장-촬영장 속 가상 공간-카메라를 끈 뒤의 연극 속 현실-광고> 라는 무려 5개의 프레임을 자유롭게 오간다. 달리말하자면, 관객들은 이 연극 하나에서 <연극 관객-리얼리티 프로그램 시청자-촬영장을 훔쳐보는 관찰자>의 역할을 오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 하나하나가 섬세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지 넘치는 연출과 농담으로 가득하다. 연극의 가장 재밌는 부분은 많은 씬들이 여러 프레임을 넘나든다는 점이다. 어디까지가 '연출'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애매모호하다.

연극은 처음부터 현실과 연출을 애매모호하게 막을 올린다. 갑자기 띠를 두른 사람들이 정말 선거유세를 하러 온 사람들처럼 관객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후보를 홍보하기 위한 춤을 춘다. 관객들은 지하철에 난입한 상인을 보는 것처럼 어안이 벙벙해지지만, 이윽고 그들의 띠가 '숭구리당당'이라는 것을 알고 연극의 장치라는 것을 깨닫는다. 계단을 오르는 방지턱, 선거 유세에 쓰이는 포스터와 옷 등이 만들어낸 디테일은 현실을 놀라울정도(숭구리당당과 같은 대충 지은 이름을 제외하고는)로 모사해냈다. 이 과정은 매우 우스운데,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지도교수님을 따라하는 고학번 선배를 떠올리면 비슷할 것 같다.


이어서 연극은 선거 운동을 하는 두 청년들을 괴롭히는 꼰대 할아버지의 갈등 상황을 보여준다. 점점 열받아 하다가 결국 드라마틱하게 화를 내는 배우를 보면서 관객들이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할 즘에 리얼리티 프로그램, <분노하세요>의 구호와 함께 mc가 등장한다. 그들의 분노가 프로그램의 연출이었다는 것을 알게해주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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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세요>는 출연자들이 분노하는 상황을 연기하고, 얼마나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트를 느끼게 했는지에 따라 수상하는 리얼리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가장 분노를 '잘' 터뜨린 사람은 거액의 돈을 움켜쥘 뿐만 아니라, 광고출연의 기회가 있다. 이윽고 등장한 잘생기고 군더더기 없는 MC가 정장을 입고 출연자를 이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정된 포즈로 서있는 예쁘고 섹시한 여성 출연 보조자가 등장한다.

이윽고 우리 시대의 '힐링 메시지'를 전하는 스님과, 정신의학의 전문가이자 엘리트인 정신과 전문의, 옛날에는 조폭이었지만 성경을 읽고 철든 전도사가 등장한다. 이들은 여타 서바이벌 프로그램처럼 참여자들의 분노를 평가한다. 이들은 국민들의 화를 적절히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존재들이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의 정치적 의도처럼, 이들은 분노를 '분석'하고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그 틀에 맞는 사람에게 포상을 준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볼때마다 느꼈던 이질감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계급을 나누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후보자들의 감정과 행태를 그누구보다 냉혹하게 결론지어내버린다. 연극 <분노하세요>는 시청자들의 어두운 면을 비추지 않고, 그들이 연출된 분노가 아니라 정말 분노할 수 있음을 여지로 남겨두었다. 필자는 사실 연극보다 현실이 좀 더 어둡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보다 앞서서 그들의 태도를 규정하고, 계급을 나누면서 계속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것 또한 우리 시청자들 아니었는가.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높이 세우고, 아프다고 하면 아프지 말았어야 프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시청자들 아니었는가.


그 과정 자체는 오락이기에 윤리의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현실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분노하세요>라는 감정 평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등장한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좀 더 극화시킨 것 뿐이다. 문화를 움켜쥐고 있는 그들에게는 계급과 생존의 논리를 재미있게 노출시키고, 부드럽게 내재화 시키는 힘이 있다.

이런 굵직한 주제와 흥미로운 연출 뿐만 아니라, 연극 배우들의 변화를 보는 것도 게 다리에서 맛있는 살을 빼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연극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배우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어서 너무 맛있는 파트였다. 수많은 배역을 맡는 배우들, 현장에 있는 배우와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단역 취급하는 '갑'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양한 역할을 놀라울정도로 소화해낸다. 문득 노마드 극단의 <햄릿>이 생각났다. 배우들은 광대나 바보들처럼 우스꽝스럽고 비천해보이지만, 묻은 것을 파헤친다. 억울하게 죽은 햄릿이건, 숨겨진 보물이건. 돌이켜보면 그것이 예술가다.

제목을 '자본주의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온 느낌'이라고 서술했다. 이처럼 쉴 틈없이 이리저리 튀는 연극은 후반부까지 재미와 메시지를 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의 마지막 단말마(?) 후에는 평이한 선로를 달리는 것처럼, 끝은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마지막 씬에서는 소위 말하는 '윗 사람들'이 나와 연극의 메시지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그들의 대사는 솔직히 진부했다. 실컷 재밌는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갑작스럽게 땅에 내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감정의 정치화, 예술의 정치화, 더이상 진실의 장막을 들추지 않는 장막과 문화. 모두 적절하고 재밌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대놓고 '빅브라더'들 노출시켜 연극의 메시지를 그대로 노출시킨 점에 아쉬움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연극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좋은 연극임이 틀림없고, 신나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에 마음이 들뜬다. 극단의 다음 연극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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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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