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등학생도 코딩 해야할까? [문화 전반]

초등학생이 지금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있는 이유
글 입력 2019.01.0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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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기린을 넣는 방법을 물어 보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냉장고보다 덩치가 훨씬 큰 기린을 과연 어떻게 넣어야 할 지 처음에는 막막한 기분도 들고, 이걸 접어야 할지 아님 심지어 썰어야 하는 건지 좀 무서운 상상까지도 하게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보다 문제의 답은 간단하다. 단지 세 개의 단계만 거치면 된다. 냉장고 문을 열고, 기린을 넣고, 냉장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 이것은 알고리즘의 기초와 매우 유사하다.


사실 이것을 완전한 알고리즘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냉장고는 기린보다 작기 때문에 실제로 기린을 넣기 위해서는 냉장고가 기린 이상의 크기가 확실한지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결과에 따라 기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넣을 지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답의 핵심은 모든 과정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씩 명시해주었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냉장고에 어떤 물체를 넣는 과정을 타인에게 설명해야 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장고 문을 열고 닫는 과정을 생략해서 말한다. 심지어는 누군가 그 방법을 물어보았을 때 그걸 도대체 왜 모르는 지 이해를 하지 못해서 가르쳐주지 않는, 혹은 너무 당연해서 표현을 찾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르쳐 주어야 하는 대상이 ‘컴퓨터’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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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멍청하다. 소프트웨어를 다루기 위해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미 습득했기에 당연하게 알고 있고 무의식적으로 취하고 있는 행위들을 컴퓨터는 모른다. 아직 학습을 거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막 만들어진 컴퓨터는 갓 태어난 아기와 비슷하다. 우리가 하나하나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 유명한 코딩 교육 방법 중에 ‘코딩 샌드위치’라는 방식이 있다. 질문자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땅콩 버터를 바른 샌드위치를 만드는 법은 무엇인가요?” 5성급 쉐프 만이 만들 수 있는 고급 샌드위치를 만드는 방법을 물어본 것이 아니다. 토스트기로 구운 빵의 한 면에 잼이나 땅콩 버터를 발라 다른 빵을 붙여 만드는 간단한 샌드위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많은 아이들이 이 질문에 정확하게 답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 이 질문을 접했을 때 이렇게 답할 것이다. “빵을 들고, 그걸 토스트기에 넣고, 꺼내서 잼을 바르고 다른 빵을 붙이면 돼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 대답을 그대로 실천했을 경우엔 결코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빵을 몇 개 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토스트기에 어떤 방향으로 넣어야 하고, 잼을 어떤 방식으로 바르는지 컴퓨터는 모른다. 심지어 다른 빵을 붙여야 하는 그 단면이 빵의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코딩은 손님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행위와 비슷한 원리이다. 나는 많은 손님들에게 “넌 참 길을 못 가르쳐 주는구나”, 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꾸 내가 아는 방식으로만 길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지하철 역에서 버스를 타고 와야 되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최근 우리 집에 방문한 사람에게는 길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4번 출구로 나온 후 횡단보도가 있는 곳까지 걸어 가서 01번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내린 후 직진해서 걸으면 돼.” 역에서 우리 집까지는 대략 15분이면 오는데 꽤 오래 걸리기에 물어봤더니, 그가 내게 왜 반대 방향을 알려 주냐고 말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횡단보도가 있는 곳에 닿기 위해서는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모퉁이를 한 번 꺾어야 했으며 심지어 버스에서 내린 후에는 앞에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었다. 내겐 매일 다니는 익숙한 길이기에 미처 몰랐던 부분이었다. 여기서 나는 프로그래머고, 손님은 컴퓨터와 비슷하다. 우리 집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에게 그 곳까지의 모든 여정을 빼먹지 않고 알려 주어야 한다. 하나라도 잊고 말해주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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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수원시)



현재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은 이렇게 컴퓨터와 코딩의 대략적인 원리를 익히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스크래치’, ‘파이썬’ 등의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실제 프로그래밍을 실습할 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이 일상을 침범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많은 것들이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들은 모두 복잡한 소프트웨어에 의해 작동하지만 사용자 친화 인터페이스를 통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용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개발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쉬운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으며 변화의 시기는 계속해서 앞당겨지고 있다. 결국 이 시대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 빠르게 더 높은 지점에 도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에게 현재 2, 30대가 배우고 있는 것과 유사한 수준의 프로그래밍까지 가르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현재의 2, 30대가 유년 시절 배우지 않아도 되었던 것들이 지금은 당연히 알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되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초등학생이 유투버를 꿈꾸고 또 실제로 도전해서 성공하는 시대다. 현재의 초등학생들은 컴퓨터와 친숙하고, 어른보다 능숙하게 기계를 다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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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초등 코딩 교육은 너무 이론적인 부분에 치중해 있고, 초등학생의 수준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대부분의 수업이 ‘스크래치’ 등의 간단한 도구를 통해, 버튼을 누르면 결과물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 코딩 자체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공교육 자체에서 너무 높은 수준의 과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학부모들이 공교육 자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녀에게 큰 돈을 투자해 어려운 내용에 대한 과외를 붙이기도 한다. 교육 자체가 실습 위주가 아닌, 많이 사용되는 구문에 대한 암기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문제이다.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우기 전부터 이미 컴퓨터를 다룰 줄 안다. 단순히 게임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어른이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정보에는 아이들도 접근할 수 있다. 나 또한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도비 사의 포토샵 프로그램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 때부터 흥미를 가지고 독학했으며 그 때 익힌 것은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의 교육은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컴퓨터 자체의 원리이고, 그것을 통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가능성이다. 지금 세대는 만들어진 컴퓨터를 어떻게 사용하는 지는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구는 언제든 배울 수 있다. 흥미를 가지고 배우는 것 이외에, 필수적으로 파이썬이나 자바를 초등학생 때부터 가르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기야 말로 문제 해결력을 기르기 가장 좋은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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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사회에서의 윤리 교육도 강화되어야 한다.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특수성으로 과거에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왜 교육 내용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익명의 편리한 사이버 세계에서는 현실 윤리와 조금 다른 새로운 윤리 규범이 필요하고 아이들에게는 그런 것을 가르쳐야 한다. 결국 초등 코딩 교육은 예견된 결과였고 이제는 필수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제대로 된 교육 과정의 정립과 교사에 대한 사전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부터 저지른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이야기가 있듯, 이 시기의 교육은 미래를 결정하기에 무척 중요하다. 그럴수록 교육 과정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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