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 읽다] 레이먼드 카버 - 손잡을까요

책 『대성당』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글 입력 2018.12.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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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의 여지 없이 레이먼드 커버는

나의 가장 소중한 문학적 스승이었으며,
가장 위대한 문학적 동반자였다.


_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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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 이 책은 어떻죠?

주인 : 이봐, 이건 방금 내가 꽂아놓은 거잖아.

손님 : 보시는 걸 봤어요. 주인장의 추천은 좋은 법이죠. 재밌나요?

주인 : 내가 이 서점에 있는 책을 다 읽는 줄 아나?

손님 : 이걸 읽은 것 정돈 압니다. 밖이 춥군요. 이런 늦은 시간엔 발길도 끊기죠.

주인 : 못 말리겠군. 여기 앉게. 따뜻한 차를 내오겠네. 이야기가 꽤 길어질 것 같아. 지금도 꽤 여운이 남아있거든. 아, 이 책에 빵이 빠질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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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 이 책은 소설집이라네. 12편의 이야기가 들어있지.

난 그중에서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가장 좋게 읽었어.


손님 : 무척이나 긴 제목이군요. 무슨 내용인가요?


-


주인 : 난 요약엔 영 재능 없지만 해보겠네.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날이라 할 수 있었지. 아들의 여덟 번째 생일이 다가와 케이크를 주문하는 그런 행복한 나날. 그런데, 그렇게 평화롭게 진행될 거라 생각한 아이의 생일날, 아이가 차에 치이는 사고가 나. 아주 끔찍한 사고지. 금방 일어날 거란 기대가 무색하게 아이는 결국 죽어. 그리고 “아이(스코티)를 기억이나 하냐.”는 이상한 전화가 계속 오고, 부부는 그 전화가 아이를 친 뺑소니이자 케이크를 주문한 빵집 주인이라 생각해 곧장 찾아가지.


하지만 아니었어. 그는 그저 삶이 고되어 퉁명스러워 보이는 사람이었지.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나쁜 인생을 살아오지도 않았고. 모든 게 오해였지만 그는 진심으로 사죄하며 빵을 권하지. 그리고 여태껏 자신이 살아온 삶을 얘기해. 부부는 그의 말을 한없이 듣는 다네. 그리고 부부도 그들의 이야기를 하지. 그렇게 하루 종일, 동이 틀 때까지 이야기를 계속하며 이야기는 끝나.


-


주인 : 세상엔 참 많은 일이 일어나지.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찾아오기도 한다네. 신의 장난처럼 말이야. 꼭 나여야만 했을 일들.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날 것 같았던 일들. 이 책에선 그런 이야기를 하네.



“뭘 좀 드셔야겠습니다.”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갓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거요.”



그들이 배가 고팠을까. 그래 고팠을 거야. 마음에 너무도 허기가 졌겠지. 자식을 잃은 슬픔은 너무도 클 테니. 별것 아니지만 빵집 주인의 말과 들어줌이 그들의 믿을 수 없는 허무함을 채워줬을 거야. 고작 빵을 건네는 일이 도움이 된다는 게 이해가 안 가나? 때론 위로 명언보다 포옹과 눈 맞춤에 눈물이 왈칵 나는 것처럼, 가게의 온 빵을 내어주는 빵집 주인의 투박한 위로가 부부에게 그랬을 걸세.



그는 기다렸다. 그들이 각자 접시에 놓인 롤빵을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할 때까지

그는 기다렸다. 그들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부부는 동이 틀 때까지 긴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를 진정 보낼 수 있었을 거야. 그리고 그들의 삶을 다시 이어나갈 수 있다는 걸.


새로 시작할 수 있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네. 우리가 한 번 열병을 앓고 난 후엔 깨끗이 났듯. 언젠가 지나가. 분명 그 일은 그 부부에게 잊을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괜찮아. 모든 건 지나가고, 나아질 걸세. 우린 기억만 하면 되는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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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 일상에 균열이 생기면 우린 그때로 돌아갈 수 없네. 그때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게 맞아. 하지만 조금 더 단단한 인간이 될 거야. 굳은살이 배기겠지.


인생이 최악의 내리막길만을 걷지는 않네. 자네도 알지 않나. 인생이란 롤러코스터처럼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반복된다는 걸. 우리는 그걸 인정해야 해. 그리고 여기가 끝이 아닌, 희망이 있다는 것도. 그런 점에서 빵집 주인은 그 부부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장소가 됐고.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그렇다네. 우리 주변에서 다분히 일어나는 것들. 우리의 일상을 깨뜨리는 사건들. 그건 끔찍한 사고일 수도, 하루아침에 집을 잃는 것일 수도, 낯선 이의 방문을 맞이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어쩔 땐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나에게는 없을 일일 것 같고 남에게만 생길 것 같은 일들. 하지만 우리 가까이 일어나고 그 주인공이 내가 되기도 해. 그래서 당황스럽기도 하지. 그게 사람이고 인생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


손님 : 단편인데 꽤 깊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


주인 : 그게 레이먼드 카버의 큰 매력이지. 그는 이미 미국 문학에서 유명한 소설가지만, ‘카버의 진면목은 단편소설에서 볼 수 있다.’라고 할 정도네. 나는 이 책으로 그의 매력을 알게 됐어.


세상을 아주 똑바르게 관찰하는 느낌이야. 아주 담담한 필체로 보여주지. 하지만 그 담담함에 놀랍도록 큰 울림이 숨어있어. 그대가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이야기 외에도 <열>과 <대성당>을 추천하겠네. 이 세 단편만은 읽어 봐야 해. 그래야 그를 알 수 있어.


-


손님 : 책을 사가겠어요. 집에 가서 읽어봐야겠어요.


주인 : 그러게. 그대가 카버를 알게 된 거는 큰 행운일걸세.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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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1938년 5월 25일 - 1988년 8월 2일, 미국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체호프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불린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소설집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에세이 『장편소설가 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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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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