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는다는 것에 대하여 [사람]

글 입력 2018.12.2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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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만치가 인생이다 저만치.


비탈 아래 가는 버스

멀리 환한

복사꽃


꽃 두고

아무렇지 않게 곁에 자는 봉분 하나


- 홍성란, <소풍>



기말고사가 한창이던 목요일이었다. 밤을 새운 뒤 아침 일찍 시험을 치뤘고, 또 다시 곧장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밥을 다 먹고 일어나려던 순간 나에게는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 간의 정적이 흐르고, 수화기 너머로 떨리는 엄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할머니의 죽음은, 급작스러운 것이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기억을 잃어버리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순간을 깜빡했다가, 그 다음에는 모든 것에 낯설어 지기도 했다가, 이윽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 둘씩 알아보지 못하게 되셨다. 충청도의 시골집에서 홀로 지내시던 외할머니의 병세는 그렇게 악화되었고, 결국에는 요양병원으로 입원하실 수 밖에 없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올해 여름, 내가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는 나를 이따금씩 알아보지 못하셨다. 할머니가 오로지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엄마 뿐이었다. 엄마의 엄마는 딸의 손을 매 순간 놓지 않았고, 매 순간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할머니의 세계에는 마치 엄마만이 곁에 있는 것 같았다. 그 때, 그렇게 얼른 다시 오겠다는 마지막 인사만을 남기고 할머니와 이별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영원한 작별인사가 되었던 것이다.


수화기 너머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은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다가, 이윽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다가, 또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를 반복했다. 울면서 핸드폰을 부여잡고 서둘러 유고결석 신청을 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마치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생경해 보이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내내 꿈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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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 도착해 꽃에 둘러싸인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자 비로소 나의 심장은 내려앉았다. 나는 곧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액자는 놓여져 있는데 할머니는 그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다. 장례식장으로 향해 오는 동안 담담하기만 했던 동생도 액자를 보자 무너져 내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나는 알 것 같았다. 나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는 과정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생의 세계를 건너 사의 세계로 갈 가족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생과 사의 개념을 잘 알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 겪었던 외할아버지의 죽음과 지금은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나는 외할머니의 인생을 꽤 오랜 시간동안 지켜보았고, 그녀가 삶의 종착점으로 향해 가는 것을 또한 볼 수 있었으며, 이윽고 할머니가 삶을 건너간 지금에도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밤을 지새우는 시간은 생각보다 금세 지나갔고, 또 다시 날은 밝아왔다. 할머니를 비로소 보내 드려야 할 아침이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은 이른 아침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화장터로 향했다. 눈이 부시도록 맑게 개인 아침, 화장터로 향해 가는 길에는 들녘 너머 막 떠오르는 해와 떼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들의 모습이 넘실거렸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화장터에 도착해 할머니의 시신은 곧바로 옮겨졌다. 육신은 이제 타고 없어져 한 줌의 재가 될 것이었다. 그 사실은 나에게 몹시도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하염없이 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윽고, 할머니의 몸은 그렇게 하얀 가루가 되어 항아리 안에 담겨졌고 우리의 품에 다시 안겼다. 우리는 화장터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납골당에 할머니를 안치시켜드렸다. 혈관이 비칠만큼 투명하고 주름졌던 할머니의 손 대신 만져보았던 항아리는 어쩐지 따뜻한 느낌이었고, 그렇게 나는 할머니와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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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끝, 함박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던 날 나에게 일어난 외할머니와의 작별은 내게 연결되어 있던 할머니의 세계를 떠나 보내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사랑했던 하나의 세계를 잃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게 급작스럽고, 또 동시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나를 이루던 세계의 한 조각을 통째로 잃어버린 듯한 그 순간의 느낌은 가히 지옥처럼 느껴 지기도 했다. 아마 할머니의 사랑하는 딸이었던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할머니를 더 넓은 우주로 온전히 보내 드렸던 발인 날, 동생과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할머니의 세계는 떠났지만, 그 세계의 흔적은 나에게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할머니의 선한 눈, 손등의 주름, 고단했던 세월에 한껏 굽은 등은 이제 다시 볼 수 없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눈빛, 우리를 향한 사랑과 걱정과 위로가 한데 섞였던 말씀들, 혹여 먼지가 묻지는 않을까 가장 소중한 곳에 보관해 두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들과 같은 것들은 아직 여기에 남아 있었다. 오히려 눈을 감으면 그런 작고 소중한 것들은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결국 나는 내가 사랑했던 한 사람의 삶이 지는 순간을 목도했던 이번 겨울날, 그렇게 가장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만약 죽음을 통해 한 사람의 세계가 떠난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를 계속해서 그리워한다면 그는 그렇게 그리움으로 혹은 흔적으로 내내 곁에서 살아있으리라는 깨달음이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를 그렇게 내내, 살아가는 순간마다 내 곁의 영원한 그리움으로 추억할 것이다. 긴 여행을 떠난 사랑하는 할머니, 아주 오랜 후에 다시 만나요. 아주 많이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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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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