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독과 침묵 사이를 걸으며

찬란함을 발견하다_ 책 『지중해의 영감』
글 입력 2018.12.24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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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 알았습니다. 제목이 왜 지중해의 영감인지. 장 그르니에는 여행지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침묵과 고독.’ 그는 이 부분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침묵과 고독이라 한다면 조금 부정적으로 와 닿는 단어죠. 쓸쓸해 보이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장 그르니에가 여행하며 느낀 침묵과 고독은 찬란함으로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 고독과 침묵이 찬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 책을 읽고 생각난 제 몇 가지 단편들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여행이란



아디오스.jpg
  


레탕의 산책길에서
나는 자주 뱃머리에 조가비가 박힌,
그 뒤집힌 나룻배의 빛나는 존재에서
위안을 얻곤 했다.

나는 무용한 작업의 시간들을,
생산적인 게으름의 시간들을,
 그리고 망각에 기울여야 했을 시간들을 생각했다.

p.25


당신은 여행을 왜 가나요?


전 무언가를 얻어가기 위해 갔었습니다. 철저하게 계획을 짜서 이걸 구경하고, 저걸 구경하고. 한 번은 해외프로그램에서 그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박물관을 데려갔는데 뭔가 대단한 것이 전시된 것 같긴 한데 죄다 일본말로 쓰여 있고 들려와서 시간만 보내다 온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1년 전쯤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에서 어쩌다 혼자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게 제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 여행이었습니다. 고작 그 7시간이요.


저와 친구가 되어준 존재는 오로지 주변 나무들이었고 길이었고 버스였고 건축물이었습니다. 쉴 틈 없이 말을 걸어줘 혼자라 외롭다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떤 것이 엄청 인상 깊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딱히 어떠한 역사를 알게 된 것도 아니고 그냥 계속 걸었을 뿐이었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마음속에 많은 것들이 비워지고 새롭게 맑은 것들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침묵과 고독이 오히려 저를 다시 보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시간에서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어요.


나를 누르고 있는 무언가를 잊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죠. 내가 누구고,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끝없는 고민. 그놈의 고민은 줄지도 않고 계속 쌓여가는 것 같아요. 내 뒤에서 누군가 계속 생성시키듯이. 싫지만 그런 것들에 의해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가고요. 그게 가치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하면서도 말이죠.


똑같진 않아도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장 그르니에가 여행을 하며 느낀 고독과 침묵에 대한 감정이. ‘익명이 될 것.’ ‘자신을 잊을 것.’ ‘세상 속에 뒤섞일 것.’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듯 받아들일 것.






가시 없는 장미라는 목차에 나오는 문장인데요. 책의 거의 끝부분에 나옵니다.



일상의 생활을 눌러 짜보라.


그러면 거기서 시가,

시작 없는 날들이,

끝이 없는 밤들이,

서정적인 삶이,

어둠과 한데 섞인 빛이 뿜어 나올 것이다.


p.179



“시가 밥 먹여주진 않아.” 전에 같은 국문과 동기가 들은 말이랍니다. 이 말이 듣는 당시에도 ‘쿵’하고 와 닿았는데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걸 보면 “그래도 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지만, 꽤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책에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안도했습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가는 길이 모두에게 맞진 않아도 틀린 건 아니구나 싶었달까요. 이것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는 밥으로서 떠먹고 안 떠먹고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체내에, 내가 밟고 있는 땅에, 내가 보는 모든 도처에 뿌려져 있는 것이라고요.




죽음



여기, 고독과 침묵 사이를 걸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은 무엇이건

 다 힘들거나 무용하다고 느껴지는 그런 순간에,

무덤 저편에서 말을 걸어오는 이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서 누구든 보쉬에의 말처럼

“자신의 삶과 죽음 사이에

어떤 간격을 두고” 싶은 사람은

이곳에 와볼 필요가 있다.


p.78



흥미롭게도 이 책에선 무덤과 묘비에 대한 이야기가 꽤 길게 서술됩니다. 여행과 죽음이라니. 어울리지 않을 법하지만 지나칠 수 없는 그 나라의 인생이기도 하죠. 누군가의 인생을 듣는다는 건, 감사한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그 누구도 슬퍼지거나 우울함에 빠지는 장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휴식과 명상의 장소가 됩니다. 그저 죽음을 다루는 태도를 듣는 것이죠. 더불어 우리가 이어가고 있는 삶까지요.


장 그르니에는 다양한 묘비명들을 실어놨는데요. 글귀 중 어떤 건 일생을 짧은 한 줄로 묘사하기도, 서정적인 단어들로 써놓기도, 부드럽게 팔을 잡고 말을 건네는 것 같기도 합니다.






메디나의 골목에선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건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허를,

자신들의 몸 한편에 입을 벌리고 있는 상처를

즉석에서 메우고자 한다.


*


그 점을 부정하기보다

인정하는 편이 더 낫다.

인간은 그 자체로서

충분한 존재가 아니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하여 그 부족한 빈 부분에 해당하는 충만을

다른 곳에서 찾기 위해서

그 점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p.55



전에 설국열차라는 영화를 보고 결말에 대해 이리저리 이야기 나눴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열차 안에선 꼬리 칸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누군가를 죽여 앞으로 나아가거나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습니다. 열차 바깥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추위라, 언젠가부터 그곳에선 사람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기에 문이 있어도 절대 열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있는 동안 알게 모르게 바깥은 점점 따뜻해졌습니다. 아무도 열차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으며 살육을 하는 그사이에요. 결말에서 열차 문을 열고 나간 유일한 생존자가 바깥을 바라보는 것처럼요.


아마 이런 것이었을까요. 그르니에가 밤의 어둠 속에서 깨달은 것이. 그 밤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을 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낮일 땐 볼 수 없었던 옅지만 분명한 빛을.



지중해의영감-표1.jpg
 

이 책을 쓰는 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쉽지 않은 책이었고 그만큼 읽었을 때 보답도 큰 책이었네요. 여행 산문이라 해도 어딘지 다른 책들이랑은 다른 느낌이었는데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 그 이유가 삶에 대한 깊은 통찰 때문이었던 걸 알았습니다.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 삶과 죽음 그리고 글이란 것까지. 이 책에 그 고민과 생각이 아주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다소 무거움을 느낀 게 당연할 것 같네요.


다 읽고 들은 생각은 참 찬란한 책이구나 싶었습니다. 동쪽에서 뜬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그 빛이 점점 발하는 느낌이었어요. 언젠가 지중해를 여행한다면 꼭 그가 걸어간 곳을 따라 걷고 싶네요.


지성에게 말을 건네는 빛이 있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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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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