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용서하거나, 용서받지 못할 기묘여행 [공연]

견뎌내는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삶'이 가능한가
글 입력 2018.12.1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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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묘한 무대가 펼쳐져 있었다.

다양한 빛을 반사하는 종이가 무대 뒤편으로 막을 치고 있었다. 카오루의 아버지 꿈에서 갑자기 저 종이가 찢어질 때 나는 그 자체보다 앞에 관객분이 놀라는 모습에 더 놀라고 말았다. 무대 자체를 찢어지게 하는 연출은 조금은 충격이 있다.

변하지 않을 거로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무대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있던 것이기에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 앞에서 악몽에 시달리며 고개를 꺾고, 두 팔이 어딘가로 끌려가듯 이상한 형상을 취한 카오루 아버지의 모습은 시각적으로 두려움을 주었다.

"잠들지 못하는 아빠가 괴로워,
일어나지 못하는 내가 괴로워?"

카오루의 신나거나 분노한 모습, 아버지 옆을 내내 따라다니며 명랑하게 소리치는 카오루의 모습도 연출이라면 연출이었다. 그때의 아버지가 지켜주지 못해 카오루는 연극 내내 아버지 옆을 따라다닌다. 아버지에게 살인 연장을 챙기라고 지시하고, 어떻게 죽이라고 지시를 한다. 아버지가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하면 실망을 하면서 무대 뒤로 사라져버리곤 한다.

사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제외한 남겨진 부모들에 대해 이야기라고 했기 때문에 카오루가 분노와 아픔을 표현하는 것이 처음에는 몹시 거슬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은 아버지가 느끼는 죄책감이 카오루로 형상화된 것으로 생각하니 왜 카오루를 그렇게 등장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카오루의 아버지는 끝내, 자신이 3년 동안 제대로 잠이 들지 못하는 괴로움보다 딸이 죽은 것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 여기며 복수를 꿈꿔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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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카오루의 아버지는 여행은 비일상적인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일상에서 사용하던 칫솔, 치약 등 어떤 물품이라도 가져가면 안 되고 새로운 것을 사야 한다고 했다. 일상에서 사용하던 것이 낯선 여행지에서 나오는 순간, 여행의 의미가 깨져버린다고 했다. "아냐, 그래도 이 베개는 챙겨야 해."라며 배게 하나를 챙긴다.

카오루 아버지의 악몽이 시작된다. 카오루의 아버지는 여행 가방을 싸는데, 옆에서 카오루가 엄청나게 신나면서 아버지의 가방에 왜 그런 게 들어있는지를 설명한다. 온갖 연장들과 살인 무기들이 들어있었다. 카오루는 아버지가 만든 인형을 품에 안고, 전기톱을 한번 대 보라고 했다. 전기톱을 켠 아버지는 윙윙거리는 전기톱을 들이대지만 숨을 헐떡이며 꺼버린다. 아버지는 상상만으로도 두려워했다.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그게 아무리 자신의 딸을 죽인 살인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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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동행

카오루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그리고 아내가 데려온 여성 한 분과 함께 기묘여행에 참석한다. 그 여행은 자신의 딸을 죽인 아쯔시의 면회를 가는 여행이었다. 정말 특이한 점은 가해자의 부모 둘도 함께 참석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 모인 장소는, 보는 내가 안타깝게도 노래방이었다. 그들은 좁은 노래방 의자에 꾸깃꾸깃 끼워져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다들 죄를 지은 사람들처럼, 딱히 죄를 지은 사람이 없음에도 그들은 죄책감을 안고 침묵한다. 다른 두 사람은 원망을 안고 침묵한다. 그 원망의 방향이 저들에게 향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침묵한다. 자신이 지은 죄가 아님에도 죄책감을 느끼고, 그들이 지은 죄가 아님에도 그들을 원망하기에 그 사람들은 나눌 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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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다는 말도,
사실은 부모들의 입에서 나와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괜찮다는 말도, 부모들이 할 대화냐.



피해자 부모들

카오루의 아버지는 카오루가 부르던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를 카오루는 몇천 번은 불렀을까? 그 침묵 어린 노래방에서도 카오루의 아버지는 죽어버린 딸을 생각하고 기억한다. 3년이 지났는데도 딸을 놓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속에서 더욱 커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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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가해자의 어머니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했지만, 연극은 지극히 카오루 아버지의 시각에서 진행되었다. 카오루의 아버지는 실행하지도 못할 살인을 위해, 아쯔시를 보면서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그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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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루의 어머니의 행동이 예상 밖이었다. 연극 내내 차분하고 모든 슬픔을 자포자기한 듯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감옥에서 아쯔시를 보며 공황 상태에 빠졌다. 뒤에 있는 세 사람이 단지,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들러리인 줄 알았으나 그런 공포적인 연출을 할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뒤를 보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서서히 옆으로 돌아서 팔다리, 몸통에 힘을 빼고 입을 활짝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치 위에서 밧줄로 목을 잡아끄는 것처럼. 공황을 불러오는 큰 소리의 심장박동 같은 배경음악과 함께, 어지러운 무대의 불빛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런 카오루의 어머니가 다음날 아쯔시의 면회에서는 자기가 앉아있던 의자를 들고 아쯔시가 있는 건너편의 유리창을 내려찍으며 소리를 지른다. 카오루를 돌려내! 하고 외치면서.

카오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참 다른 사람이었다. 카오루 어머니는 남편에게 처음부터 말했다. '어떻게 당신은 바로 일을 하러 갈 수 있었어?', 그러면 카오루 아버지는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온종일 울고만 있었어.'라고. 아쯔시의 면회를 오자고 한 것도 카오루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살인계획도 치밀하게 세운 카오루의 아버지가 아무런 행동도, 아무런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것에 비해서 카오루의 어머니는 그동안 쌓아온 슬픔과 증오 온갖 것을 말과 행동으로 아쯔시에게 쏟아내었다.

'내 안에는 아직도 살의가 있습니다'라고 카오루의 아버지는 말한다. 그는 아마 그 살의를, 아쯔시에 대한 복수를 영원히 접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 칭한 '무능한' 아버지답게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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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가해자의 부모들

그들은 아들이 항소를 포기했다고, 피해자의 부모들에게 항소를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해달라고 부탁한다. 항소를 포기했다는 것의 의미는 국가에서 주는 처벌인 사형제도로 목숨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 관계에서 흥미로운 점이 여러 가지 보였다. 아쯔시의 아버지는 일 년 전에서야 아버지가 된, 양아버지라는 것이며 그 살인이 자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춘기 때의 반항 정도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도 죄책감을 짊어지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죄책감을 그 정도로 최소화하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고.

아쯔시의 어머니는 아들이 살아있기만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아들을 죽이고 싶어 했다. 아들을 죽여서라도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어 했다. 사실 아쯔시 어머니의 대사가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숨을 잘 쉬지 않고 모든 말을 그냥 내뱉어버리는 듯 빨리 말했다. 정말 연기를 잘한 것이었겠지만 무슨 말인지 소화해내기도 힘들 정도로, 그녀는 '달리는 말에서 떨어질까 봐' 살아있는 내내 초조해 하고 전전긍긍했다.

자신이 길러온 아들이 누군가를 죽였다면, 그 어머니가 짊어지는 죄의 무게란, 앞으로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란 얼마나 큰 것일까. 아마 그 삶도 사는 것이 아닐 텐데 그런데도 그녀는 아들을 살리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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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외부인들

피해자의 부모 2명, 가해자의 부모 2명 그리고 외부인 2명이 더해져 여행을 이룬다. 첫 번째 외부인은 카오루의 어머니가 데려온 여자분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살인 때문에 잃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어색한 분위기의 노래방에서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애쓴다. 뭐라도 솔직한 말을 하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말을 하도록 재촉하지만 카오루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화를 낸다.

"그때 주변에서 뭐라고 했던 말 중에 우리를 진짜 괜찮아지게 했던 말이 하나라도 있었어?" 라고 하면서.

카오루의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의지하고자, 그래도 같은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니까 데려온 외부인이었지만, 이 연극에 꼭 등장시킬 필요가 있는 존재였는가 의아함이 든다. '같은' 상황이라는 거, 사실 그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같은' 것이란 건 없다는 것 잘 알 텐데, 하는 회의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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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책으로 유명한 <악어 프로젝트>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 책에서는 성희롱, 성폭력을 쓰는 남자를 악어로 그리고,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은 그대로 여성으로 표현하였다. 그 책을 보고, 세상의 일부 남성들이 비난했다고 한다. 왜 남자들은 짐승 취급하고 여자는 그대로 여자로 표현하느냐고. 책의 저자는 성적인 폭력을 행하는 남자들을 악어로 그린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일부 남자들은 악어에 공감해서 자신들이 악어가 된 상황에 화를 내는 것이다.

자식을 잃은 상처와 부모를 잃은 상처 그 두 가지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은 상처가 있는 것에 동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중한 가족을 잃는 것은 각자 다른 아픔이며, 쉽게 그것을 공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외부인을 등장시킨 것이 어쭙잖은 동질감과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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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외부인은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내려 죄수를 사형시켰던 인물이다. 그는 '나의 인권은 어디 있느냐'고 담담한 말투로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살인을 저질러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르고, 그는 그 일을 그만두었다.

나는 이 사람이 카오루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카오루의 아버지는 물론 그 복수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응당히 해야 한다고 믿는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살의를 안고, 어쩔 수 없는 살인을 해야만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살의라고 하는 이유는 카오루의 아버지가 결국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살의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딸이 죽었으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강요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생각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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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극에서 별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등장하는 세 번째 외부인.

카오루의 어머니가 면회소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김밥을 먹으면서, 카오루의 어머니를 힐긋힐긋 바라본다. 그녀는 면회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면서도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아는데도 모르는 척. 일부로 말을 섞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아버지를 면회 갔다고 하며, 한 번씩 안 오면 삐진다고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명랑하고 활발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자신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그녀에겐 몇 년의 시간이, 얼마나 많은 증오와 분노가 필요했을까.

이 세 번째 외부인을 극에다 넣은 것은, 살인자의 가족은 결국 살인자를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가족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 그녀의 삶 일부가 되고, 그녀를 제외한 세상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흘러갔을 것이다. 오직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만을 제외하고.

아쯔시가 만약 항소하고, 사형을 받지 않는다면 아쯔시의 부모들도 세번째 외부인과 같은 태도로 면회실에 오지 않을까. 아들이 물리적으로 감옥에 있어서 가끔 면회를 가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을 제외하고 그들의 삶은 그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지 않을까. 가해자의 가족은 아무런 죄가 없지만, 가해자들은 결국 법이 주는 처벌이라는 명목으로, 감옥 안에서 안전하게 있으면서 가끔 가족들의 따뜻한 위로 한마디로 외로움을 없애면서 어쩌면 가장 인간적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세상은 이미 자신의 죄를 알고, 자신은 국가가 주는 처벌을 정당히 받고 있다는 핑계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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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가끔이라도 자신의 가족을 볼 수 없는 피해자의 가족은?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남겨진 이들이 아닌가.

연극은, <'견뎌내는 삶'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삶'을 위하여> 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었다. 그들은 살기 위하여 자신의 딸을 죽인 살인자를 보러 갔지만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 것인가. 그 일을 계기로 그들은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기묘여행은 여행이었지 현실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마 여행 이후에도 견뎌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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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쯔시,

왜 아쯔시를 극에 등장시켰는지도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남겨진' 이들만 나올 줄 알았던 그 자리에 살인자까지 등장해서 그의 죄책감, 뉘우침까지 알아버렸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온갖 죄책감과 나약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외부 사람들이 절대 닿을 수 없는 벽에 둘러싸여서 그는 '보호 받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살인을 저지른 자가 얼마나 살인을 후회하고 뉘우치고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반성하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살인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이다. 어떤 동기에서든, 어떤 상황이었든.

카오루 아버지의 환상인 카오루는 옆에서 소리를 지른다. 저놈이 그랬다고, 저놈이라고. 카오루가 묘사하는 칼날에 찔리고 베인 상처가 너무나 실감 나서 또 내 앞자리 관객분이 놀라고 말았고 나 역시 놀랐다. 처음에 갈라진 배경 흰색 종이가 붉은색으로 물이 들고, 카오루가 그때의 상처를 회상하면서 자신의 몸속에서 뭔가가 터져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카오루의 아버지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나약해 보이고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아쯔시를 죽이지 못한다.

아쯔시의 태도가 그저 나약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쯔시는 이 극에서 어떤 형태로든 등장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의 태도 때문에 카오루의 부모가, 피해자의 부모가 결정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의 등장 이후로 연출이 더 훌륭했더라도 그는 등장하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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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 연극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니 한 번으로 충분했다. 나에게 주는 이미지들과 무게감이 너무 커서 다시 한 번 소화를 시키지 못할 것 같다. 한 번 더 보는 게 두려울 정도로, 그 정도로 훌륭한 연출이었고 훌륭한 심리묘사였고, 대단한 연기력이었다.




 
기묘여행
- 극단 산수유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 -


일자 : 2018.12.06(목) ~ 12.30(일)

시간
화-금 오후 8시
주말, 공휴일 오후 4시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 동양예술극장 3관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기획
극단 산수유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관람연령
만 15세 이상

공연시간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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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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