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07. 차별을 지우는 방법, '용기'와 '연대'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세상은 움직인다
글 입력 2018.12.0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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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이라는 단어는 무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멀게 느껴진다. '차별'이란 둘 이상의 대상을 차이를 두어서 구별하는 것으로,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사회에는 수많은 차별이 있지만 유독 내게 인종차별은 먼 과거의 일만 같다. 만일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인종차별을 떠올렸을 때 흑인에 대한 차별이 가장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지 않을까.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러 인종차별 중 흑인에 대한 차별은 특히 심각했다. 버스 안에서 자리에 앉지도 못하게 하고 심지어 흑인 전용 화장실까지 따로 만드는 때가 있었다. 노예제도 폐지 후에도 흑인들을 노예로 취급하는 시선이 만연했다. 1960년대에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여러 인권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그들은 비로소 차별과 배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흑인이 심한 차별을 받던 시기를 잘 알지 못한다. 소설과 영화 속에서 간접적으로만 봐왔기에 현재 인종차별이 없다고 느낄 만큼 공감대가 약해졌다. 하지만 지금 현재, 차별은 정말 사라졌을까?


이번 [사각지대]에서는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해보고, 영화 <헬프>를 통해 차별을 지우는 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나'를 지워버리는 차별



'화이트워싱'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더러운 곳을 흰색 페인트로 덧칠하거나 결점을 숨긴다는 '화이트워시(White Wash)'에서 비롯된 용어로, 원작과 다르게 백인 배우가 동양인인 것처럼 연기하거나 동양인 역할을 백인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화이트워싱 논란에 휩싸인 영화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경우 닥터 스트레인지의 스승, ‘에이션트원’은 원작에서 티베트인이지만 백인 배우 틸다 스윈튼으로 캐스팅됐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공각기동대>도 일본인 주인공 역할을 스칼렛 요한슨이 맡으며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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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캐스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영화가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을 고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백색인종이 아닌 흑인과 동양계 배우들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조력자 또는 악역에 불과했고 그런 역할이 당연시돼 왔다. '당연한 것'은 없기에 영화 속에서 인종적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사회를 적나라하게 반영했다고 믿게 만드는 '영화'라는 매체는 이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 아직 화이트워싱이 할리우드 내에 만연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바람이 불며 영화 원작 캐릭터의 인종을 중심으로 캐스팅을 하는 영화가 생기고 있다. 이처럼 관객과 제작사가 화이트워싱을 인지하며, 오랫동안 할리우드가 지속해 온 인종차별은 조금씩 옅어지는 중이다.


영화에 출연한 그 배우 자체를 향한 노골적인 인종차별도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가 개봉하면서 한국 사회 내에서도 때아닌 인종차별 논란이 있었다. 이 영화의 중심 인물인 배우 수현은 키얼스티 플라와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영어를 할 줄 알았냐, 영어를 읽을 수 있었냐"와 같은 무례한 질문을 받았다.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의 공식 SNS에서도 수현을 소개하는 글에 다른 동양계 배우 사진을 게재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차이가 차별이 되고 마는 것, 어쩌면 할리우드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관객은 특정 인종의 배우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역을 가장 잘 담아내는 배우가 보고 싶을 뿐이다. 영화에서 배우의 인종은 '차별'적 요소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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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종차별은 할리우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다문화가정이 증가하며 이들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학교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학생은 어머니가 러시아 사람인 다문화가정 자녀였다. 이 사건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어떻게 규정하고 배척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피해 학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차별과 따돌림, 폭행 등에 노출돼왔다고 한다.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쏠리게 되자, 학교폭력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대책 마련은 이제야 논의되고 있다.


물리적 폭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향한 시선도 우리가 생각해볼 문제다. 나도 한 번쯤 길거리에서 흑인이나 외국인을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쳐다본 경험이 있다. 수현에게 무례한 질문을 했던 리포터처럼 나 역시 비슷한 질문을 외국인에게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시선과 편견 자체가 폭력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우리도 가해자의 위치에 서서 차별을 일삼고 있지 않은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HELP, 용기 내 서로의 손을 잡아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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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차별을 지워나갈 수 있을까. 영화 <헬프>는 용기와 연대에서 해답을 찾는다.


<헬프>는 격변의 시기인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조연, 아니 엑스트라에 그칠 수 있는 흑인 여성 가정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신문사에 취직한 '스키터'는 살림 정보 칼럼을 위해 친구의 가정부 '에이블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흑인들에 대한 폭력이 지속되고 '흑인 가정부 전용 화장실' 마저 설치되자 그 둘은 어느 누구도 관심 두지 않았던 흑인 가정부들의 인생을 글로 쓰기로 결심한다.


영화 속 흑인 가정부들은 '가정부로서의 삶'이 당연한 줄 알았기에 다른 인생은 꿈꿔보지도 않고 가정부가 된다. 다른 인생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큰 벽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에 자녀에게도 자신과 같은 길을 권하기도 한다. 이렇게 차별과 인간으로 살 권리의 박탈은 대물림되고 만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스키터와 에이블린은 고군분투하지만 자신이 겪은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불법인 시대이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과정은 쉽지 않다. 하지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용기를 내기 시작한 그들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내고 미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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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세상은 움직인다는 것을 말한다. 즉 사각지대에 놓인 '나'를 구하는 것은 나 자신과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 '우리'라는 것이다.


맞다. 불편함을 입 밖으로 낼 때, 우리는 연대할 기회가 생기고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차별이 만연한 사회를 바꾸기란 더 힘들다. 차별을 겪은 누군가가 자신이 겪은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를 조롱하는 이들, 차별을 부정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헬프>에서도 이야기를 꺼낸 주체는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이었지만 이야기의 장을 열어준 것은 흑인 가정부들의 '아가씨', 스키터였다. 결국 아름답게 포장됐지만 사실 시원한 해답은 없었다.


<헬프>가 보여준 가정부들의 연대와 용기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그 이상의 무언가가 더 필요함을 안다. 사각지대의 사람들이 참다못해 자신의 이야기를 터뜨리기 전, 그들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조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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