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을 욕망하고, 욕망할 때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보고
글 입력 2018.12.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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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대본이 없기 때문에

늘 실수투성이고 초라한 겁니다.

 

- 시라노 연애조작단 中 -



꾸밈없는 사랑이란 존재할까? 사랑도 결국 느끼는 감정의 한 부류이므로, 어찌 보면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랑은 어떠한 방법이든 간에, 표현하게 되면서 나름의 꾸밈이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사랑을 얼마나 포장하는지에 대한 정도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내가 좋아하지 않은 것들도 좋아하는 상대방을 위해 애써 내색을 하지 않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얻기 위해 말투와 표정, 옷차림, 행동까지 모든 걸 조작하는 ‘가면’을 쓰는 것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꾸밈만 존재하는 사랑을 정말로 ‘사랑’이라고 보는 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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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감독의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그에 대한 물음을 잘 드러냈다. ‘100% 성공률에 도전’한다는 이름으로 기획된 4인의 시라노 에이전시는 연애 감각이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연애를 진척시킬 방법들로 의뢰인을 이끈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신상 정보를 토대로 의뢰인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면서도, 상대방이 설렐 수 있는 요소를 꾸준히 자극하며 두 사람이 사랑을 이루게 한다. 탄탄한 스토리와 검증된 연출을 바탕으로, 의뢰인을 성공적인 사랑의 무대로 끌어올리는 배우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 안 한다’라는 신조는 그들이 하는 일과 꽤 잘 어울린다. 타인에게 드러내기에는 조금 석연치 않으면서도, 의뢰인의 사랑을 확실히 이루어내기 위한 극본을 만드니 말이다.


하지만 연애에 서툰 펀드매니저 ‘상용’이 찾아와 부탁한 의뢰는 완벽한 듯한 그들의 ‘연애조작단’에 대한 또 다른 물음을 제기한다. 상용이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에이전시 대표인 ‘병훈’의 전 여자친구인 ‘희중’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영화가 전개되면서 병훈은 대표로서 은연중 희중의 의도를 꺾고자 노력하는 한편, 기억으로부터 묻어나오는 감정으로 인해 이따금 의뢰를 제대로 잘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는 병훈이 희중에게 아직도 연정을 남았기에 생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병훈의 의도가 투영된 상용의 행동은 사랑을 하는 주체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행동을 꾸며내는 ‘병훈’일까? 아니면 행동을 실천해내는 ‘상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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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Jacques Lacan)의 말은 시라노 에이전시와 더불어 희중을 둘러싼 두 남자의 행동을 간단히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이 욕구하는 욕망은 타인으로 인하여 규정된다. 쉽게 말하자면, 타자에게 인정을 받거나 호감을 얻기 위한 감정에서 욕망이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얻기 위해 갖은 수를 쓰며 노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두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을 욕망하고 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부차적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할 사안들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진심으로 두 남자가 희중을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랑을 표현하는 게 서툰 상용은 병훈을 통해 사랑을 쟁취했고, 병훈 또한 결과론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희중이 더 나은 결과를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므로 가면을 쓴 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을 충실히 욕망하며 걸맞은 책임 또한 잘 수행했다면 진실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병훈이 만들고, 상용의 입으로 뱉은 고백 멘트는 진실하고 본능적인 사랑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성경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그중 제일은 사랑이라.

한때 저는 그 말을 이해 못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 제일은 믿음이 제일이라 생각했었죠.

 

(중략)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믿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믿는다는 것을.

그냥… 조금만 더 사랑하면 다 해결될 문제인데,

왜… 행복한 순간은 그때 알아채지 못할까요.”

 

- 시라노 연애조작단 中 -


    

사랑은 생각하거나 마음에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떠한 형태로든 표현하는 데 있어 상호작용하는 가치를 지닌다. 시라노 에이전시도 사랑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일종의 수단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마치 우리가 더 나은 외모를 가꾸기 위해 성형이나 화장을 하고, 머리를 다듬는 것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설령 꾸밈없고 진솔한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나’라는 주체에 의해 사랑은 표현할 때 필연적으로 꾸밈을 받게 된다. 이후 병훈이 감정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자, 상용이 스스로 말하는 고백 멘트를 조금 더 살펴보자.



“그만큼 사랑했으니까요, 희중 씨.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거… 이것은 제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날 것 그대로의 제 마음이에요.

꾸미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제 마음은...

이 한마디 뿐입니다.”

 

- 시라노 연애조작단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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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중의 사랑을 욕망하는 상용이 주체적으로 호감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욕망의 정도에 차이가 존재할 뿐,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간다. 그 자체가 나쁘거나 부정적이라고, 혹은 무엇이 옳다고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대상과 방법에 차이가 존재하는 선에서 사랑하는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일 테니.




영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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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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