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 읽다] 파블로 네루다 - 메타포는 어디에나 있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땅에도. 사랑에도
글 입력 2018.12.0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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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jpg
 


한 서점. 유리문이 열리자 바람종이 청아한 소리를 낸다.


주인 : 어서 오세요.

손님 : 마리오 히메네스라는 작가가 쓴 시집이 있을까요?

주인 : 마리오 히메네스라. 잠시만요.

없네요. 이 사람이 쓴 거 맞나요? 어디서 보셨어요?

손님 : 책 속에서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죠.

주인 : 그럼 현실에는 없겠죠.

손님 : 역시 그런가 보네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속 이슬라 네그라에 사는 사람이죠. 저는 이슬라 네그라를 생각하면 푸른 바다가 가장 먼저 생각나요.

주인 : 바다요?

손님 :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죠.






잠자코 그 바다를 상상해보자.


햇빛을 잘게 받은 바다가 끝도 없이 수평선을 따라 펼쳐지는 그곳은 칠레, 해안가 마을 이슬라 네그라에 있다. 그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엔 한 시인의 집이. 매일 그 집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 우편배달부가 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__.jpg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마리오 히메네스”의 이야기다. 그들의 우정과 시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마리오 히메네스는 우편 배달부 일을 하며 네루다를 만난다. 다만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알아도, 시를 알지는 못했다. 어떤 것이 시고, 어떻게 시를 쓰고 말을 하는지. 그런 그에게 시인이 단순한 물음을 던진 것이다.



"무슨 일 있나? 전봇대처럼 서 있잖아."


"창처럼 꽂혀 있다고요?"


"아니, 체스의 탑처럼 고즈넉해."


"도자기 고양이보다 더 고요해요?"


"마리오, 온갖 메타포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건 부당한 일이야."


"뭐라고요?"


"메타포라고!"


"그게 뭐죠?"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p.27



그래서 진지하게 생각이란 걸 해보는 마리오를 보며 네루다는 말한다.



생각을 하려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는 말인가?

시인이 되고 싶으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당장 포구 해변으로 가라고.


바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메타포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p. 29



이 순수한 청년은 그래서 해변을 걸었다. 걸으며 메타포를 떠올리려 노력하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가 걸으며 무의식중에 생각한 모든 것이 다 메타포였다. 그렇게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있는 메타포를 끄집어 준 것이다.


이에 베아트리스와의 불꽃 같은 만남은, 그가 입을 놀려 사랑을 노래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렇게 마리오는 변해간다.


더 이상 옆에 위대한 시인 네루다가 없어도 네루다의 시를 차용해 표현하고, 직접 시를 짓기에 이른다. 그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낸다. 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은 과정이다. 베아트리스와의 사랑도. 마리오 그 자신의 삶도. 시로 인해 달라졌다.




메타포는 어디에나 있다



시도, 메타포도 몰랐던 마리오의 모습은 마치 우리의 모습 같다.


나는 늘 시를 쓰는 것이 어려웠다. 내가 생각해온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멋지고 대단한 일이지만 그건 나의 숙명이 될 수 없는 것. 전공 중에 오랫동안 망설인 강의가 있었다.


시를 한 편 써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괴담처럼 전해내려 와 듣기 전부터 부담스러웠던 강의. 결국 듣는 걸 택했고, 시를 쓰려고 할 때 깨달았다. 시를 쓰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내 주변이었다. 빤-히 관찰했다. 깊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시는 그렇게 내 속에서 나왔다. 그럼 '시' 라는 건, 넣어놓고 까먹은 바지 주머니에 있는 동그란 동전을 하나 꺼내는 일일까.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것을 “메타포”라고 부른다는 것을.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메타포가 된다. 산과 바람과 들과 나무와 햇빛과 내가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만질 수 있는 것들. 그 이상의 것들. 그것들을 입에 담으면 그건 하나의 시가 되는 거였다. 시는 어디에나 있다. 그럼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을 구성하는 것들은 모두 한 편의 시라고.






이 책이 재밌는 또 한 가지는 주인공인 파블로 네루다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수많은 메타포를 그렸던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향한 헌사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허구와 실재를 절묘하게 섞여 전개된다.


책의 저자는 안토니오 스카르레타이지만 책의 주인공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소개하고 싶다. 읽는 내내 난 그라는 사람과 시에 빠질 수밖에 없었으니.



파블로 네루다

(1904.07.12 ~ 1973.09.23)

시인.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파블로네루다.jpg
 


그의 이력들을 죽 훑어본다. 칠레 파랄에서 태어난 파블로 네루다는 정치적 활동을 활발히 한 시인이었다. 1945년 공산당 상원의원으로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칠레 대통령 후보 살바도르 아옌데를 적극 지지했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 파리대사로 임명받는다. 하지만 아옌데 정권이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무너지고, 얼마 되지 않아 암이 악화돼 운명을 맞고 만다.



"칠레에서는 모두가 시인이야" - p. 28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 p. 85



전자는 파블로 네루다의 대사, 후자는 마리오 히메네스의 대사지만 두 대사를 듣자마자 파블로 네루다를 떠올렸다.


네루다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었다. 사랑에도 있고 단순한 것들에도 있고, 칠레 민중에게도 붙어있었다. 그는 칠레 민중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시로 옮겼다. 마치 시를 통한 사람과 세상의 변화를 믿은 것 같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그걸 책 속의 마리오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을까. 시를 통한 한 사람의 변화. 시는 그러한 힘을 가졌다는 것.


난 그런 위대한 시인의 마지막이 비극적이었던 것이 아쉽다. 그러나 책 속의 진한 우정을 나눈 마리오 옆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영원한 멘토로 살아있겠지. 그가 보고 싶을 때 다시 책을 펼쳐보려 한다.



*



파블로 네루다 <시>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도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두드렸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김현지.jpg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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