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플 때 느끼는 서러운 것들 [기타]

글 입력 2018.11.2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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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스무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이라고 항상 자랑해왔는데, 오전에 기침이 시작되더니 오후에는 본격적으로 높은 열과 함께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몸살이 심하게 왔다. 덕분에 오후에 계획했던 일들은 모두 취소되었고 밤새 앓아누워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스무 시간을 자고 나니, 이제야 정신이 들면서 서러움이 밀려온다.


스무 살부터 타지에 혼자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서러울 때는 아플 때다. 아무리 혼자 끙끙대고 아파봤자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크게 아프지 않아도 당연히 받을 수 있었던 부모님의 걱정과 위로는 이젠 직접 연락해서 나 아프다고 말을 해야만 받을 수 있다. 그마저도 멀리 떨어져 있는데 걱정 끼쳐드리기 싫어서 하지 못한다.


오 년 째 이 생활을 하고 나면, 스스로 간호하는 것이 꽤 익숙하다. 수건에 물을 적셔 머리맡에 두고, 땀을 빼기 위해 전기 매트 온도를 높여두고 잔다. 따뜻한 물과 꿀물을 번갈아 마신다. 아플 때마다 찾는 단골 죽집, 병원, 약국도 있다. 알약을 잘 삼키지 못하는 탓에 약과 함께 씹어 먹을 바나나도 산다. 이를 계속 반복하면서 몸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드는 서러움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진다. 아플 때 내가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다. 아픈 사람을 매일 만나는 의사 선생님에게는 나는 그저 많은 환자 중 한 명일 뿐이다. 결국 그저 본업에 충실히 증세를 물어보고 약 처방을 내리는 그의 사무적인 말투에 나는 상처를 받아버린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약사 선생님이 덤으로 주시는 박카스 한 병, 그리고 죽집 아주머니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치유된다. 아플 때는 이렇게 작은 것에도 상처받고 감동하게 된다.


정말 슬픈 것은, 나는 이렇게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나를 제외한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단 듯이 잘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도저히 아파서 출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 아르바이트에서는 괜찮냐는 말 대신 진료확인증을 끊어오란다. 당일에 스케줄 수정하기 어려운 건 알고 있지만, 어차피 결근인 걸 똑같을 텐데 굳이 확인증을 끊어오라는 게 괜히 씁쓸하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미룰 수 없고 쌓여만 간다. 아픈 시간 동안은 시간이 멈춰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누워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여전히 흘러간다.


평소 하루 정도 온종일 쉬고 싶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렇게 쉬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서 시간만 보내니까 스트레스만 받는다. 이제는 내가 몸이 아파서 힘든 건지 스트레스를 받아서 힘든 건지 분간이 안 간다. 나만 아픈 것도 아니고, 내가 제일 아픈 것도 아닌 걸 잘 알고 있기에 혼자 방 안에서 자다 깨 문득 드는 생각들을 글로나마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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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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