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외로움의 목적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공연]

소박하고 평범함, 가장 김광석다운 뮤지컬
글 입력 2018.11.2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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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유니 플렉스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추억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 뮤지컬이 진행 중이다. 대학 시절에 만난 5명이 밴드를 만들어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지만, 각자의 현실에 좌절해서 밴드를 그만두고 현실과 타협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공연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 연주와 함께 시작되었다. 연주를 들으며 생각했다. 노래에 저런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랑을 할까. 어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호감을 느끼고, 어떤 사랑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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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겉보기와는 달리 정이 없는 사람이라서 누군가를 쉽게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그건 친구에게도 그렇고, 어른들에게도 그렇고 '남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늘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을 시도해본 적이 잘 없었다. 만남과 이별이 당연했고, 연락이 닿지 않게 되는 인연도 굳이 다시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뮤지컬을 보면 늘 여러 명의 친구들로 이루어진 밴드가 나와서 사랑을 노래하고, 우정을 노래하는데 그들이 너무 신기해 보였다. 하나의 결속력으로 뭉쳐서 서로가 서로에게 실수해도 이해를 해주는 존재들. 그들은 나중에는 결국 현실 때문에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날도 찾아오지만, 현재에는 함께하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해도 늘 혼자 있는 느낌을 받았기에 그런 진정한 뭉쳐짐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그저 상상해보고, 대리만족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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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도 물론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였던 적은 있었다. 첫 번째는 중학교 시절 도서부 활동을 하면서다. 교실에 먼저 가는 대신 도서실에 먼저 가서 가방을 놓고 학생들의 대출을 도와주었다. 그러다 보면 도서부 친구들도 하나씩 도서관으로 들어온다. 요일별로 2명씩 배정이 되어있는데도 그럴 필요가 없다. 다들 그냥 도서실로 들어오는 게 습관이 되어있다. 자기 담당 날짜에는 데스크에 앉아서 책 대출과 반납을 도와주고, 자기 날짜가 아니면 그냥 주변에서 서성거리며 인터넷을 하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시간을 보낸다. 쉬는 시간에도 심심하면 도서실에 와서 10분간 놀다가 가곤 했다. 사서 선생님이 괜히 일을 많이 시키려고 가만히 꽂혀있는 책을 다 뽑아서 재정렬을 시키곤 했지만, 그 시절에 정말 재밌었다.

두 번째로 생각나는 기억은 고등학교 3학년 때다. 머리가 엄청나게 긴 친구, 운동해서 근육이 탄탄한 친구, 그리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웃기는 것을 좋아하던 친구 이렇게 4명이어서 늘 같이 다녔다. 야자 시간이 되면 답답함에 은근슬쩍 시내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공원에 가서 컵라면을 먹고 들어왔다. 선생님께서는 당연히 벌을 주었다. 엎드려뻗쳐도 그때만큼 많이 해본 적이 없다. 선생님은 그때, "이게 추억이 될 것 같지? 느그 후회한다"고 겁을 막 주셨지만, 그 시절만큼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선생님께서 우리를 혼내던 그 기억마저 추억이 될 줄은 몰랐다. 아마 선생님께서 이 글을 보시면 또 짐짓 화를 내시겠지.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성공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선생님께서 의미하시는 성공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는 있지만, 지금은 그런 성공을 향해 내 삶의 시간을 쏟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 삶에 당당한 사람이 되면 그 선생님을 찾아가고 싶다.

세 번째로 떠오르는 기억은 대학교 1학년 때다. 지금은 한양대로, 연세대로 떠나버린 친구 두 명과 건축공학과에 다니는 친구 두 명. 이렇게 5명이 어울려서 일 년 정도를 재밌게 보냈다. 자취하는 친구 집에 다 같이 모여서 잘 먹지도 못하는 엽떡을 시켜먹기도 하고, 한강공원에 가서 바람을 쐬기도 하고, 사주를 보러 가기도 하고, 잠 못 드는 밤 술을 한 잔씩 하고, 인생 어묵탕 집을 찾고, 파전집의 단골이 되고. 하나씩 자기 꿈을 찾아서 다른 학교로 재수에 성공하고, 휴학하고 남아있는 사람은 나 하나.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는 삶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싫은 것은 아니야.

생각해보면 나도 누군가와 함께 현실을 살았던 때가 있었구나. 그 시절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예 처음부터 부정해버려서 지금의 외로움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 까닭일 테지. 이제는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대학교 친구도 한 명과만 꾸준하게 연락을 하고 있으니까. 외로워서, 가버린 그들을 찾으려 하지 않았던 거야. 애원하면 구차해 보이고, 내가 외롭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니까. 외롭다는 감정은 어쩐지 모르게 찌질해보이니까. 그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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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것의 가벼움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정말 거짓말처럼 가벼운 분위기의 극이 펼쳐졌다. 기타와 메인 기타만으로 구성된 밴드에 세 명의 사람이 순서대로 찾아온다. 기타를 치는 남자는 건반을 치는 여자에게 반하고, 메인보컬은 또 학생회에서 온 여자에게 반한다. 단순히 첫인상만으로 반해서 합격을 외치는 그 모습에 나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사랑을 노래하면서 얼마나 가볍게 그 사랑을 할 수가 있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랑을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번의 만남으로 사랑에 빠지고, 기타를 치는 멋있는 모습에 반해서 두근거리는 모습이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물론 그런 모습으로 사랑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첫눈에 빠지는 사랑이 얼마나 있겠는가. 사람에게 한순간에 이끌리는 사랑이 얼마나 되겠는가. 연극, 뮤지컬이라는 특성상 빠른 상황전개가 필요해서 그런 장면들을 넣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정말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사랑에 빠지게 될까.

적어도 그가 노래하는 것만의 풍부한 만큼, 그의 목소리에 담긴 무게만큼, 사랑이 그만큼의 진지함과 그만큼의 느린 속도를 가졌음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욕심이었던 건가.

확실히 사랑하는 시대가 달랐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두 여자주인공이 나누는 대화였다. 건반을 치는 '은영'은 여자가 먼저 고백을 하면 싸 보인다는 식으로 말한다. 여자는 고백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먼저 고백을 하기보다 언제까지나 좋아하는 남자가 고백하기를 기다린다. 다른 여자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오빠'라고 하기는 부끄러우니 '형'이라고 부른다. '풍세 형'이라고 하는 모습은 정말 어색해 보였다. 우리 과에도 여고를 나와서 '오빠'라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워서 '형'이라고 하는 애가 있었다. 이제는 오빠가 많아진 환경에 적응해서 '오빠'라는 말을 잘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형'이라고 호칭을 부를 때 나까지 괜히 어색해지고는 했다.

왜 좋아하는 감정 사이에 어색함이라는, 기다림이라는, 밀고 당김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왜 '오빠'라는 단어에 괜히 설렘의 의미를 부여해서, 호칭 자체에 감정을 넣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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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노래를 듣다

남녀 사이의 감정, 사랑에 대해서는 몹시 짜증이 났지만, <바람> 밴드의 공연과 노래는 너무나 좋았다.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노래를 불렀다. 특히 밴드부가 군대에 가서 주인공 풍세가 이등병이 되었을 때 부른 이등병의 편지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기타 하나와 목소리 하나만으로 어떻게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가 있을까. 노래 중간 간주 부분에 군대를 기다리는 여주인공 두 명의 대화도 보여주어 군대 안에서의 상황과 대비되어 보여주었다.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 이등병의 편지 中-



김광석에 대한 추모 영상도 나왔다. 주변의 나이 많으신 분들이 눈물을 닦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나는 그 시대에 태어났던 것도 아닌데 어쩐지 그의 목소리에 동화되어 눈물이 나왔다.

'사랑했지만'은 뮤직넘버에는 따로 없었지만, 10번 노래 신청곡으로 받아서 들려주었다. 신청자의 사연이 인상 깊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이라는 노래를 빗물을 맞으면서도 듣고, 비 오는 날마다 베란다에서 '사랑했지만'을 읊조렸다는 것이다. 노친네에게 그런 감정이 있느냐고 나무랐지만, 사연을 보낸 분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자기가 베란다에서 '사랑했지만'을 읊조리게 된다고 말을 했다. 그 사연 뒤에 풍세가 노래를 부른 '사랑했지만'은 공연장을 눈물바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배우들이 전부 뮤지컬 전문 배우들이라 그런가, 목소리의 울림 자체가 엄청났다. 특히 '은영'을 연기했던 분은 성악을 전공했나 싶을 정도로 자그마한 몸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무대를 넘치도록 채웠다. '고은'과 '상백'을 연기한 분은 마이크 음향 설정이 잘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노랫소리가 기타에 파묻혀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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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맨의 노래

사실 가장 큰 활약을 했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경비아저씨, 진행자, 선배, 예능 담당자 등 만능역할을 하던 분, '박신후' 씨이다. 맨 앞에 앉은 관객들을 놀리는 것을 좋아하셨다. 꼬끼오하고 울면서 무대의 꺼진 불을 켜기도 하고, 박수를 쳐서 무대의 불을 껐다가 플래시를 켜서 앞에 앉은 아주머니를 자꾸만 놀리셨다. 진짜 술을 가져와서 마셔서 '오늘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느냐'고 재치 있는 임기응변도 많이 하셨는데, 내가 본 날만 진짜 술이었는지 아니면 대본 속에 있던 건가 궁금하기는 하다. 아무래도 관객에게 주는 술이 증류수로 준비되어있는 걸 보니 대본에 준비되어 있던 거겠거니 싶다. 술을 마시고서도 공연을 무사히 끝낼 수 있는 직업 정신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의 정신력도 대단하다. 풍세 씨를 연기한 '박형규' 씨는 술이 조금 약한 듯 보였다. 진짜 술을 마시고 나니 약간 표정이 굳어지기도 했다. 어찌 됐든 연기자는 극한 직업이다.

박신후 씨도 극 중에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르는데, 말하듯이 내뱉는 왠지 모르게 늙은 듯한 그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듣는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와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술 안줏거리처럼 부르던 그 목소리가 내 마음속에 새겨지듯 남아있다.

아빠가 많이 생각났다. 아빠는 노래를 정말 많이 듣는데, 특히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한다. 차를 타고 갈 때면 늘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를 틀어둔다. 내가 따라부르면 나보고 어떻게 그 노래를 아느냐고 한다. 아빠 닮아서 노래 취향은 비슷한가 보다. 아빠와 함께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아쉬웠다. 그곳에 온 많은 사람처럼 아빠와 우리 가족들도 서울에 살아서 가끔은 금요일 저녁에 이런 여유를 즐기며,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 소박하고 평범한 삶에 대한 소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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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오는 곳
- 가장 김광석다운 뮤지컬 -


일자 : 2018.11.16(금) ~ 2019.01.06(일)

시간
화,수,금 오후 7시 30분
토,일 오후 4시

*
12월 24일(월) 오후 7시 30분
12월 25일(화) 오후 3시, 7시 30분
12월 26일(수) 공연 없음
12월 27일(목) 오후 7시 30분

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티켓가격
R석 50,000원
S석 40,000원

주최/주관
LP STORY

관람연령
만 7세 이상

공연시간
130분



문의
LP STORY
02-565-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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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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