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위스, 그래도 좋았다 (1) [여행]

글 입력 2018.11.2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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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을 떠난 것이 작년 9월이었으니, 여행을 다녀온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나는 한 달간의 여행을 다녀온 뒤 소위 말하는 ‘여행병’이라는 것에 걸렸었다. 몰랐다면 모를까 여행의 맛을 알고 나니 계속 맛보고 싶었다. 그때 마음 같아서는 세계 일주라도 떠나야 성이 찰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요즘 좀 잠잠해졌었는데, 유럽여행에 관한 글을 쓰려고 그때 사진을 들춰보니 다시 여행병이 도질 조짐이 보인다. 이 병은 완치도 없이 수시로 재발하는 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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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여행은 생각보다 운이 좌지우지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여행을 하다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운이 좋아서 혹은 나빠서 가지각색 다양한 경험을 겪는다. 이게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묘미겠지만, 나는 여행 중에 운이 나빠서 닥친 돌발 상황에 대처할 영어 실력이나 담대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들을 예방하려고 노력했다. 방심하면 당한다는 유럽의 소매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주인인 나조차 열기 힘든 소매치기 방지용 가방을 산다든지, 여행 중 생길 수 있는 질병을 대비하여 걸어 다니는 약국처럼 다양한 비상약을 챙긴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내가 어쩔 수 없는 게 있었다. 바로 날씨였다.

 

유럽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떠나기 몇 개월 전부터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보통 장기간 떠나기 때문에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비행기, 숙소, 교통 등은 빨리 예약해놓을수록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행보다 몇 개월 앞서 준비한 계획에 당연히 날씨는 고려사항이 아니다. 당장 내일의 날씨도 장담하지 못하는데 어불성설이다. 날씨는 그야말로 ‘운’인 것이다. 야외활동 위주로 계획한 날에 부디 날씨가 화창하길 바라는 수밖에는 없다.

 

내 유럽여행의 날씨 운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잦은 비로 유명한 영국에서도 비가 거의 오지 않았고 이외에 다른 나라에서도 화창한 날이 많았다. 하지만 산과 관련된 장소에서는 운이 확실히 나빴다. 그리고 산은 내가 기대하던 여행지인 스위스의 중요한 장소였다.

 

스위스는 유럽여행 일정의 세 번째 나라였다. 인터라켄에서 3박 4일을 머물며 2일 차에 융프라우요흐 전망대에 가고 3일 차에 그린델발트에서 액티비티를 하는 것이 주요 일정이었다. 스위스에 도착한 날은 날씨가 좋았다. 비록 오후 늦게 도착해 본격적인 구경을 할 수 없었지만. 내가 머물렀던 한인 게스트하우스의 룸메이트들은 그날 그린델발트를 다녀왔다고 했다. 그들은 들뜬 얼굴로 “여행지 중에서 제일 좋았어요. 진짜 끝내줘요”라고 말했다. 인터넷과 여행책으로 스위스 경치가 멋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방금 그것을 보고 온 사람의 상기된 얼굴과 흥분된 목소리로 직접 후기를 들으니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었다. 여기가 바로 나의 최고의 여행지가 되겠다는 생각에 나도 덩달아 설레었다.


그때 같이 온 동행자가 말했다. “일기예보 봤어? 내일부터 흐리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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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하고 한적했던 인터라켄
 


내가 인터라켄에 머무는 내내 흐린 날씨가 예상되었다. 인터라켄은 융프라우의 경관을 보는 것 외에는 딱히 할 것이 없어서 정말 난감했다. 아기자기한 마을을 구경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작고 한적한 마을이라 금방 둘러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착한 뒤 남는 시간에 이미 돌아본 터였다. 그렇다고 모든 걸 취소하고 다른 도시로 가기에는 비용부담이 너무 컸다. (여기가 물가 높기로 소문난 스위스라는 걸 잊지 말아 주시길) 게다가 날씨란 워낙 변덕스러운 녀석이라 내일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맑아질 줄 누가 아는가? 난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잠이 들었고 다음 날 본 융프라우 윗자락에는 구름이 자욱했다. 왜 항상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가.
 

누가 봐도 융프라우요흐 전망대에 가도 기대하던 경관을 보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나와 동행자는 그곳을 가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더 기대했던 건 융프라우요흐보다 그린델발트였기 때문에 다음 날 날씨에 희망을 걸며 융프라우요흐를 반쯤 포기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어찌 됐든 여기까지 왔는데 가보자 하여 열차를 타고 올라갔고 예상보다 훨씬 아무것도 안 보였다. 온 세상이 새하얬다. 구름 속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너무 춥고 눈부셨다.

 

이럴 줄 예상하고 올라왔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내려갈까 고민하던 와중에 구름이 이동하면서 언뜻언뜻 산이 조금 보였다. 왠지 구름이 걷힐 것도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 수도 있지만. 동행자와 조금만 더 있어 보기로 하고 구름이 걷히길 간절히 빌었다. 보일 듯 안보일 듯 융프라우요흐의 밀당 아닌 밀당에 포기할 때쯤 정말 기적처럼 구름이 걷혔다. 맑은 날씨처럼 확 트인 시야는 아니었지만 내가 보고 있는 건 분명히 융프라우요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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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언뜻 보이던 융프라우요흐

 


구름이 살짝 걷히자마자 너무 좋아서 뛰어나갔다. 약간 감격스럽기도 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거기 있던 외국인과 되지 않는 영어로 너무 아름답다며 즐거움을 나누기도 했다. 이런 순간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모르는 사람, 그것도 외국인에게 스스럼없이 대화를 걸지 못했을 것이다. 5분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 아름다운 광경을 만끽하니 다시금 구름이 완전히 가려버렸다. 이제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왔다. 여기까지 인가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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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걷혀가는 융프라우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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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모습을 드러낸 융프라우요흐

 


황당한 소리 같겠지만 화창한 날씨에 융프라우요흐를 봤다면 구름이 잠깐 사라졌을 때 보았던 것보다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화창한 날씨였다면 내가 본 것보다 더 황홀한 경관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안 보이던 상황 속에서 잠시 잠깐 보인 그 모습은, 그 기적 같은 순간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다. 그 순간만큼은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었으리라. 융프라우요흐의 절경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더라도 그 감정은 언제고 옅어지지 않을 것이다.



To be continued...





[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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