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행복제시대의 취향저격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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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는 어떻게
포승줄이 되었나?
‘취향’은 지난 시즌 ‘오롯이’에 이어 요새 유행하는 단어인 듯하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나 경향을 뜻하는 이 말은 ‘아싸’인 척 하는 ‘핵인싸’들의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트렌드 밖에 위치한 비주류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오롯이 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취향을 짜깁기하여 설계하고, 남 보기 좋게 디자인한다. 이들이 오늘날의 주류를 이루어 우리 대부분이 되었다. 매우 개인적인 영역인 듯한 취향에는 누가 봐도 선명한 계급이 나누어져 있다.
취향이라는 단어가 유행이기도 하지만, 유행인 것들이 취향이 되기도 한다. 취향과 유행이 의미를 공유하면서 취향이 취하고 있던 향은 서서히 죽었다. 컴퓨터, 그 이후의 우리에게는 이 ‘취향저격’의 발생이 더 잦아졌다. ‘역대급’ ‘가격실화냐?’를 외치게 하는 ‘예쁨 주의’, ‘고퀄’은 ‘소장 욕구’를 자극하여 ‘득템 찬스’를 놓칠 수 없게 한다. 여행은 자고로 ‘한 달 살기’여야 진짜 현지의 ‘소확행’을 누릴 수 있으며, 자유롭고 젊은 영혼이라면 기필고 ‘퇴사’를 하여 ‘디지털 노마드’가 된 뒤 여러분들은 괜찮으냐고 묻는 조용한 에세이나 사진집을 내는 것이 취향을 저격하는 순리로 여겨진다.
인터넷 창에 뻐끔 떠오른 취향 저격이라는 단어는 도대체 누구의 취향을 뭘로 보고 어떻게 알아 저격한 것일까. 매번 당하는 것이 지나고 보면 약이 오른다. ‘내가 넘어가나 봐라.’ 굳게 마음 먹고 터치와 클릭의 비트를 따라 파도를 탄다. 분명 내 스타일이 아니던 것이 금세 눈에 익어 괜찮게 느껴진다. 심지어 꽤 멋있게 느껴져서 내가 취하고 싶던 것이 바로 이것인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가진 취향은 이렇게 쉽게 저격당한다. 컴퓨터는 유행을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넓게 퍼뜨렸다. 그렇게 슬그머니 다가온 유행은 얼마나 많은 취향을 죽였을까.
컴퓨터는 늘 거기에 있었다. 내 첫 기억(이라 말할 만한 것)은 엄마가 일하던 컴퓨터 학원에서 시작한다. 나는 큰 모니터와 뜨거운 열기, 웅웅 대는 본체 사이를 뛰어다녔고, 여드름이 나기 시작한 언니들은 가끔 “젝스키스랑 HOT랑 누가 좋아?” 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내게 동생이 생기자 엄마는 아예 집에다 컴퓨터 교실을 열었다. 수업이 끝나도 학생들은 바로 집에 가지 않고 타자 연습을 하고, CD를 사다가 놀이동산을 짓고, 유선 인터넷을 연결해 큐플레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동네 그 또래의 사랑방이 된 그 집에선 “신화 좋아해, god좋아해?”로 조금 바뀐 질문이 오갔다. 함부로 대답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은 그대로였다. 예닐곱 대의 컴퓨터가 전부인 방 한 칸짜리 살롱에서는 이미 아무도 취향이 공유되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이제 컴퓨터는 언제나 여기에 있다. 손바닥 아래에도 있고, 손바닥 위에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똑똑하고 작은 컴퓨터를 휴대하길 좋아한다. 콘센트가 없어도 충전할 수 있도록 보조 배터리까지 들고 다닌다. 전원이 꺼지는 일은 상상도 하기 싫다. 세계는 취향을 묻는 거대한 공간이 되었다. 이젠 PC라는 말도 옛말이 되면서 작고 가벼워진 대신 그 자리에는 모바일 인터넷이 군림한다. 컴퓨터는 이제 ‘어디서나, 언제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연결된 각자의 스마트폰은 더 이상 개인적이지도 않다. 취향을 포함한 유행을 끝없이 실어 나른다. 도쿄에서도 멕시코에서도 한국 가수를 목 터지도록 부르짖는다. 한국에선 그 목소리를 빠짐없이 실시간으로 듣고 파악하여 다음 전략을 짠다. 넓은 세계 속 우리는, 작은 화면 안, 그 곳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 취향을 찾는 척하며, 또는 찾고 있다 생각하며, 유행을 향한 긴 줄을 서 있다.
향을 싼 종이에선 향이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난다는 공자의 말이 있다. 엄마는 자주 이 문구를 내게 건네며 좋은 취향을 가진 품격 있는 친구를 가까이 하라고 조언했다. 엄마의 착한 딸이 되고 싶었지만 때로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자주 실패했다. 모든 종이가 향을 싸고 싶어 한다면, 생선은 대체 어디에 싸야 할까. 종이로 태어난 모두가 향을 싸고 향을 품게 되면, 계속 모두가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떨 땐 향을 싸고 어떨 땐 생선을 싸면 어떨까. 얼마 전까지 파도를 넘나들던 비린 숨결이 향보다 더 향기롭다 생각하면 그건 취향일 수 없는 걸까.
취향은 꾸준히 하나만 좋아하고 먹어 온 사람이어야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편식이 골고루 먹어본 사람이어야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취향을 이해하는 건 “개취 인정”이라고 말하는 순간, 얼마든 너그러울 수 있는 일이다. 취향을 말하는 건 오랜 고민이 필요한 일이다. 취향을 저격당하는 일은 사실 기적에 가깝다. 취향은 손바닥 위에서 공유되어 손쉽게 전염된다. 취향은 동네 사랑방에서 와글와글 묻는다. 취향은 비행기로 서른여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까지 시시때때로 소곤소곤 이야기된다. 취향은 “뭐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데서 시작하겠지만, 그것을 대답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취향을 묻는 데에 우리 너무 쉽지는 말자.
[조서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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