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시 달에 갈 수 있을까, 다시 꿈을 꿀 수 있을까 [공연]

베세토페스티벌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때>
글 입력 2018.11.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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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공연예술 축제인 베세토 페스티벌의 막바지에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때>를 관람했다. 제목을 통해 공연에 대해 짐작해 봤을 때, 달에 발을 디뎠을 때의 ‘환상’을 풀어내거나, 잊고 살았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 생각했다. 공연을 감상한 후, 이보다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공연장을 나와서도 계속 곱씹게 되는 이 공연을 글로 풀어나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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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소개에 따르면, Riverbed Theatre는 1998년에 창립된 단체이다.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평론가들은 이들의 ‘잠재의식적’인 작품이 유기적이고 조각적이라며 호평한다.


이 단체의 다양한 모습들이 궁금해 검색해보았다. 직접적인 대화나 소품, 움직임이 아닌 추상적인 메시지나 예술적 행위를 통해 극을 전개해 나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정확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형태가 없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무엇이든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유연하고 개방된 단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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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때>는 독특한 방식으로 극을 관람하였다. 3m정도 되는 높이에, 정사각형으로 배치된 좌석에 관객들과 마주 앉아, 고개를 숙여 관람하였다.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배우들을 내려다보는 형식이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공연에 사용되는 장치에 의한 섬세한 방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위에서 영상을 비추고 배우들은 그 영상을 활용하여 움직인다. 계속해서 변하는 영상은 배우들이 움직임의 공간에 있는 것 같은 효과를 자아낸다. 또한 그걸 바라보는 관객들에겐 환상적인 느낌과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이 극에서 등장하는 소품들은 위를 향하고 있어 완벽하게 우리가 위에서 그들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킨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모두 더해져 마치 한편의 생생한 영상을 관람하는 것 같았다. 극의 인물들도 영상에 녹아들어 함께 융화된 듯 보였다. 처음 경험해 보는 색다른 구조의 관람 형태, 이를 돋보이게 하는 각각의 요소들은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때>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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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의 줄거리는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연극에서 드러나는 주인공들의 대사, 몸짓들이 직접적이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확장되거나 축소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처음 달에 발을 디뎠을 때, 오랫동안 바라왔던 꿈같은 것을 이룬 느낌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환호했고 인간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으로 기록된다. 열망에 대한 간절한 욕망을 실현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달을 걷던 그때 즈음 베트남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은 일상을 잃었다. 꿈은 사치가 되었고 환상을 좇는 것은 남의 일이 되었다.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아픔과 상처뿐이다.


이런 두 상황은 완벽하게 대조된다. 꿈을 이룬 상황과 꿈을 좇지 못한 상황. 이 두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어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역사적인 순간인 달 착륙 시점에 우린 박수를 보내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다. 많은 책에 등장하고, 착륙자에 대한 위인전을 읽으며, 기념우표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학살과 눈물로 뒤덮인 베트남 전쟁에 대해선 위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흘러가는 역사쯤으로 기억하며 잠깐의 애도를 보낼 뿐이다.


극에서는 이와 같은 우리의 모습을 스스로 알아채게끔 한다. 충분한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의도가 없었을지 몰라도 아픔에 대해 외면했던 우리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꿈을 이룬 모습에 찬사와 감탄을 보내며 기억을 선명히 남기지만, 꿈을 잃은 이들의 모습엔 안타까움을 전하며 흐릿한 기억으로 남겨둔다. 이런 나의 모습을 3m 떨어진 먼 곳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데, 부끄러운 마음과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알아챘는지, 산소 호흡기를 건넨다. 차분히 숨을 쉬게끔, 괜찮다고 위로를 전한다.


부끄러운 나날을 인지하고 반성의 기회를 가진 관객들과, 환상과 꿈을 꿀 기회조차 없었던 전쟁의 피해자들은 호흡기를 통해 아픔을 추스른다. 그동안의 고통과 무게, 어둠을 떨치고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는 듯 했다.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멈춰있던 환상의 이야기를 다시 그려나갈 수 있도록, 모두가 품고 있는 각자의 달에 다시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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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바라본 극은 우리의 이야기를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모두의 내면을 수면 위로 꺼내어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지난날의 모습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게 했고, 이런 우리를 다시 도약할 수 있게 위로를 건넸다. 나는 아직 그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인지하지 못했던 무책임한 나의 사고에 조금 더 대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충분한 시간이 흘러 완전하게 책임과 무게를 떨칠 수 있을 때 즈음 그때 다시 달로 향하고 싶다.



[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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