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시큼하고 쌉싸름한 맛

무엇을 담아내도 좋을 공간 "Art insight"
글 입력 2018.11.02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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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요?

음식이라. 생각해보면 전 딱히 어떠한 음식에 가장 인상 깊었던 적이 없던 것 같아요. 그러니 한때 친구들이 맛집 투어를 다니자 했을 때도 시큰둥했어요. 먹으면 먹고, 안 먹으면 안 먹는. 그렇기 때문에 음식에 애정을 가져본 적도 없고 당연히 추억도 없어요.


그런데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떤 한 기억이 떠오르긴 했어요. 왜 하필 이 기억이 떠올랐는지. 참 당황스럽게. 저도 이 기억이 떠오른 거에 놀랐어요. 저 밑에 밀어놓고 잊었던 기억이었거든요.


그 기억은 좀 시큼하고 쌉싸름한 맛이랄까요. 키위를 생각하면 입안이 시어서 군침이 목 뒤로 꿀꺽 삼켜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전 그 기억을 생각하면 코가 시큼하고 입이 쌉싸름해지는 것 같아요.



라임.jpg
 


학기 중반 즈음인가, 어느 날 반에서 왕따가 됐어요. 내 옆에서 늘 팔짱을 끼던 아이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져서 혼자 점심시간을 때우고 혼자 체육 시간에 나가고 혼자 밥을 먹어야 했죠.


아직도 그날들의 분위기와 제 모습이 생각나요. 혼자 밥을 먹던 첫날, 은색 식판 안에 들어있던 음식들이요. 파와 계란이 동글동글 뭉쳐있는 계란국에 제가 싫어했던 줄기가 세고 맛이 밍밍했던 초록 나물무침. 빨간 정체 모를 생선조림. (고등어일 거라 유추해봐요) 그리고 하얗고 고슬고슬한 쌀밥.


그땐 우걱우걱 밥을 집어넣었어요. 무언가를 맛있어서 먹는다기보다 그땐 아무렇지 않게 먹는 내가 중요했거든요. ‘난 괜찮다.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 되새기며 밥을 먹었어요.


있죠. 사실 저는 가끔 그날의 교실 창밖에 서 있어요. 그때의 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나의 잘못도,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철들지 못했던 때의 일이지만, 교실 안으로 들어가 등을 두드려 주고 싶어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했지만, 마음은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던 고작 15살이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기억이란 건 참 신기해요. 가끔 기를 쓰고 기억하려는 기억은 잊어버리고 마는데 잊어버렸으면 하는 기억들은 잡초처럼 계속 살아있어요. 흙을 비집고 자꾸 고개를 디밀어요. 잊어도 될 일이잖아요 사실.


그래도 예전과 지금의 다른 점은, 이젠 쫑긋 오른 잎사귀를 보듬어주며 예뻐해 줄 수는 있더라고요.

뭐든지 그렇겠죠?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고 그 위에 흙이 덮어져서 살아가잖아요. 저도 그래요. 이젠 괜찮아요.




Art insight

그리고 나


좀 어두운 이야기였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라 좀 행복했던 음식에 관련한 추억에 대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저도 놀라긴 했어요. 그래도 음식이 다양하듯 추억도 다양하다고 넘겨볼게요.


사실 이런 이야기는 민망하고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해요. 뭐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거짓말하지 않고 말하는 건, 그것도 아트인사이트에 말하는 이유는 아트인사이트가 모든 걸 포용하는 공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지난 4개월 동안 일기장에나 써놓을 감정을 글로 옮기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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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누군가 되고 싶은 너에게

서울 살이는

Around : 주위를 돌다



제가 쓴 모든 글이 저를 표현하겠지만, 저라는 사람을 더 보여준 글이었던 것 같아요. 뭔가 제 아리고 연약한 부분에 가장 맞닿아있는 글이랄까요.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글을 씀으로써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를 더 알게 되었어요.


사실 누군가 알아주길.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난 이랬다고. 그래서 많이 아팠다고. 일기장에 쓰는 건 나만 아는 고백이니까. 어느 날엔 이런 이야기를 일기장 밖으로 꺼내고도 싶었거든요. 그걸 가능하게 하는 곳이 아트인사이트라 감사했어요. 무슨 글이든 다 좋다는 말이 참 용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했던 지난 4개월이 정말 행복했어요. 제가 쓰고 싶었던 글들을 맘껏 썼거든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난 왜 이렇게 글을 쓰고 싶을까. 글을 쓰는 것이 좋아 관련 대외활동을 해보며 깨달은 게, 저는 제 글을 쓰고 싶다는 거였어요. 내 느낌과 내 생각이 담긴 내가 쓰는 글. 내가 해석하는 글. 내가 바라보는 세상. 앞으로도 이런 글을 쓰고 싶어요.


이런 이야기가 당신에게 어떠한 살이 되어 붙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써보려 해요. 전 밝아보이지만 어두운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이것들을 풀어내는 일이 참 좋아요. 그러고 보면 전 천성이 조잘조잘 대는 걸 좋아하는 아이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이 글을 통해 저란 사람을 조금은 더 알 수도, 이 글을 통해 자신을 더 알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게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아트인사이트에 들르는 모든 사람이 좋은 감정을 얻고 공유했으면 해요. 저 역시도 더 그럴 생각이고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쓰고 나니 이것도 일기장 같은 글이네요. 후련해요! 저의 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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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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