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엔 까미노! 당신의 무탈한 순례를 기원합니다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글 입력 2018.10.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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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길을 걸으며 나를 만났다. 꽁꽁 숨겨뒀던 '나'였다. 잘난 척하는 나, 착한 척하는 나, 인색하고 꽉 막힌 주제에 너그러운 척하는 나, 멋진 척 하는 나, 강한 척 하는 나, 귀신같이 핑계를 찾아 책임을 회피하는 나 그리고 용기 없는 약해빠진 나를 만났다. 그런 내가 싫어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나였다. 아닌 척 하느라 힘들었던 거라는 케이트의 고백처럼, 아닌 척 했지만 무겁게 짓누르던 내 안의 돌멩이는 나였다. 뻔뻔하게 다시 외면하지 말자.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다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 같이 가자. 내가 손을 잡지 않는다면 누가 잡아주겠어." /217p



생장을 출발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한 그녀의 여정은 생각대로 길고 힘겨운 싸움이었다. 막연한 기대를 안고, 조금은 즉흥적으로 떠난 길이었기에 저자는 "어떤 것을 깨달았다"고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를 읽으며, 그녀와 함께 이 길고 긴 순례길을 걸었다. 그녀의 이야기와 길에서 만난 그녀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슬플 땐 나도 같이 눈물을 흘리거나 기쁠 땐 미소 지으며 희노애락을 함께 했다. 마침내는 남아있는 길이 줄어들수록 아껴서 걸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저자를 보며 나도 아쉬움을 느꼈다. 책을 읽으며 스페인 저 먼 곳에서 날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법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 했다.

저자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손을 내밀기까지. 분명 순례길에서 만난 그 많은 이야기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남들이 하는대로 인생을 살기 위해 눈 앞의 성공을 향해 바쁘게 달려가며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동안 참 많은 것을 잃었다. 그리고 그건 결국 '나'로 귀결된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책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는 그녀가 평생을 살며 잃어버린 것을 찾는,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를 찾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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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걷다가 심장마비나 사고로 죽음에 이른 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게 되기를 꿈꾸며 이 길로 달려온 사람이 오늘 내 앞에 있었다. 까미노는 삶을 찾기 위해 걷는 길이다. 어쩌면 시슬리아는 이미 삶의 길을 찾아내고 당당히 그 길에 선 사람일지도 모른다. 언니의 여정에 기꺼이 함께하는 에바 역시 그 누구보다 까미노가 주는 해답에 가까이 가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 삶이 언제나 축제인 것은 아니듯 죽음이 언제나 저주일 리 없다. 길 위에 선 우리는 삶뿐 아니라 죽음에도 공평하게 축복의 기도를 올렸다. /153p



까미노는 삶을 찾기 위해 걷는 길이다. 저자에게는 이와 동시에 죽음이 무엇인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이기도 했다. 사망 선고를 받고 평생 소원이었던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었던 시슬리아, 그런 언니와 함께하는 에바, 자살 시도를 한 아들에게 되돌아간 레베카, 죽을 고비를 넘겼던 헨드릭까지(모두 가명). 순례길에서 만난 저자의 친구들에게 죽음은 불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에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순례길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불행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이를 고백함으로써 가장 큰 위로를 받는 사람이 되어 이기는 게임이 있다. 저자의 말처럼 모두 노팅힐 브라우니 게임에서 승자였다.

이처럼 까미노는 기존의 편견을 버리고 생각을 키워 자신을 단련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편견 속에 살고 있나. 까미노는 나의 기준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경건한 가르침을 준다. 우주에 혼자 남겨진듯 걷게 되는 길 위에서 세속의 모든 것들은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린다. 순례자에게 중요한 일은 단 두가지, '위장을 채우고 창자를 비울 수도 있는 카페가 언제 나타날 것인가.' 그리고 '잠자리가 있는 다음 마을까지는 얼마나 걸어야 하나.'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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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혼란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나을지 모르지만, 뭐라도 상관없을 것도 같다. 오늘까지 어렴풋하게 배운 게 있다면 불평하지 않는 것이다. 불평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누구도 날씨를 미리 알 수 없고, 자연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첫날부터 하드코어로 겪었고, 2주가 다 되어가는데 매일매일이 그랬다. 한 걸음씩 걷다 보면 닿겠지. 아무리 빠른 사람도, 아무리 늦은 사람도, 한번에 딱 한걸음 이상 걸을 수는 없다. 한번에 한 걸음씩 가다 보면 결국 닿을 것이지만 닿지 못하면 또 어떠랴. 내일도 비가 오든, 천둥 번개가 치든 난 간다. /119p

순례자로 겪은 고통이 칭찬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이유는 단 하나. 고통을 당하는 자의 아픔을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통을 이겨낸 것과 같이 고통 당하는 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순례자.' 우리는 모두 세상에 온 순례자였다. 그제서야 무감함이 깨지고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317p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굳이' 선택해서 걸을까? 책을 읽기 전 마음 한 켠에서 자리 잡고 있던 질문이었다.

어느 유명 트로트 가수의 노래 가사처럼, 산다는 건 다 그렇다. 누구나 말 못할 사연을 가지고 아픔과 슬픔 속에서, 그럼에도 살아간다. 순례자들은 육체적인 고통과 전신적인 혼란 속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이 길을 천천히 걸어간다. 인생을 살아내듯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순례길을 걷는다고 인생의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고, 이를 헤쳐나갈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고 또 웃음 지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며 저자가 순례길을 끝까지 마칠 수 있길,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인생도 꿋꿋하게 나아갈 수 있길 응원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의 마지막 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 많은 위로를 받았다. 글과 사진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난 까미노였지만, 저자의 40일이 눈 앞에 보이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천 년의 세월 동안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을 달래준 순례길은 '치유'와 '구원'의 길이었다. 비록 자본주의와 맞물려 세속적으로 변한 부분에 저자와 같이 아쉬움을 느끼긴 했지만, 나 역시 언젠간 그 길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됐다.

이 세상에 온 우리는 모두 순례자. 그들 모두에게 무탈한 순례를 기원하고 싶다.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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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 나를 만나, 나와 함께 걷다 -

지은이 : 박재희
출판사 : 디스커버리미디어
분야 : 여행 에세이
쪽 수 : 320쪽
발행일 : 2018년 9월 5일
정가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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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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