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Episode 6.

작정하고 슬퍼해볼까 해
글 입력 2018.10.0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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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화가 날 때는 마구 발을 구르고 책상을 두들겼고, 웃긴 일이 있을 때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어 젖혔다. 정의감이 불타오르거나 동정심에 마음이 흔들릴 때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뭐든 저지르고 봤다. 억울할 때도 속상할 때도 외로울 때도 감동적일 때도 눈물을 쏙 뺐고, 그럴 때면 발갛게 부어오른 눈을 하고 거울 앞에 달려가 주체하는 법을 모르는 얼굴을 들여다봤다. 이다지도 잘 웃고 잘 울고 소리치길 반복하는 삶의 다이내믹함을 관찰했다. 이게 내 천성인가 싶어서 가끔은 배우가 될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때와 장소를 가리는 법을 아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는 울음을 삼켰고 진지한 상황에서는 웃음을 참았다. 화가 나도 눈치껏 책상을 두들겼고(집에서 쾅쾅 두들긴다면 다른 데에서는 콩콩 정도 아닐까 싶다.) 적당히 누를 끼치지 않는 선을 아는 법이었다.


날씨가 날로 차가워진다. 투명하고 선명해진다. 그런 날들에는 종종 창밖을 멀거니 보고 있는다. 눈이 시려서 눈가를 쓱 문지르면 눈물 한 방울이 딸려 나왔다. 버스 안에서 쉼보르스카의 유고 시집을 읽다가는 코가 찡했고 지하철 안에서 강성은의 시집을 읽을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소라 노래를 들을 때면 꼭 한 번 울고야 말았고 뜨거운 걸 한 모금 집어삼키는 거 같았다. 전화음이 뚜,뚜, 뚜, 끊길 때 눈물이 뚝, 뚝, 뚝 났고, 실은 누구에게 전화를 할까 헤아릴 때부터 울락 말락 했다. 사람이 많은 데에서 우는 건 창피해서 어떻게 하면 눈물을 삼킬까 여러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따금, ‘왜 또 우냐, 나 정말 왜 이러냐’ 하며 짚어 나가면 그냥 슬픈 게 다였다. 나는 나도 슬펐고 나 말고 모든 것이 이따금 슬펐다. 이 문장 속 이 단어가 이 자리에 놓인 사실도 슬펐고 그럴 수밖에 없던 사정들도 슬펐다. 바쁘게 뛰어가는 뒷모습들과 친구들의 가벼운 농담 속 자조와 끼니를 거르는 습관들. 그런 것들은 모두 명백한 슬픔이었다. 해결해 주지 못하는 고민들과 외로움이 슬펐고 무언가 꾹 누르고 참고 있는 것들도 역시 슬펐다. 보잘 것 없는 내 슬픔이 나를 더 보잘 것 없게 만드는 거 같아서 나는 이를 악물고 손톱을 쥐어 뜯었다.


커다랗고 대단한 것들이 가깝고 작게 느껴졌다. 삶, 죽음, 운명. 그런 것들. 내 사소한 글에 과연 어울리기나 싶을 그런 것들이 빼곡하고 자잘하게 일상에 침투하는 순간,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눈물이 나곤 했다. 사는 일과 죽는 일,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들 앞에서 나 몰라라 하고 살다가도 그런 것들은 실재했고, 실감하고 마는 순간에는 꼭 눈물이 났다. 멀게만 느껴졌던 것들은 멀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실 애초에 울 일이 많도록 설계된 세계를 비뚝비뚝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울고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커다란 거부터 작은 거까지. 모든 것들이 죄다. 영영 알 수 없을 것만 같던 것을 짐작해보는 일이 잦아졌다. 너의 외로움, 너의 막막함, 너의 분노가 꼭 내 것처럼 느껴졌고 울컥하고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대신해 울었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아픔들 앞에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는 일밖에 없다는 걸 알아 버렸을 때, 서러워서 울었고, 울 수밖에 없어서 울었다. 주체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 빈번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철봉에 매달려 숨을 참고 팽팽히 당겨진 채로 이를 악무는 게 쉽다. 대신 울거나 되려 울거나 그냥 우는 일은 여전히 부끄럽다. 아무 쓸모도 없는 일이지 뭐야, 싶은걸…. 하지만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고 했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아득하지만. 당신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슬픈 게 많은 사람이 되는 건,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썩 괜찮은 일일지도 몰랐다. 자랑스러운 일이라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슬퍼하는 일뿐이라면 조금 더 예리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슬퍼하고 싶다. 사실 나는 너를 위해 슬퍼하고 싶다. 우리에게 닥쳐 오는 수많은 것들 앞에서 명백한 슬픔을 기리고 싶다. 무작정 우는 대신 나는 제대로 슬퍼하기 위해 작정하고 슬퍼할 거다.




*박준의 시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를 읽으며.

*데이빗 소파David Soffa의 사진입니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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