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찌질한 사랑을 응원합니다 [음악, 문화 전반]

우리는 왜 노래 속 찌질이에 열광하는가
글 입력 2018.09.2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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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한 체크무늬 셔츠와 다 늘어난 바지, 사각 뿔테의 안경과 왠지 자신감 없어 보이는 표정. 흔히 사람들이 ‘찌질한 사람’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하는 이미지들이다. 단순히 촌스럽고 옷차림이 후줄근하거나 말을 더듬는 것과 같은 외적인 모습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찌질하다는 것은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는 뜻의 ‘지질하다’에서 파생된 신조어로 알고 보면 생각보다 방대한 의미를 포괄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눈치도 용기도 없으며 그렇기에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맺어진 관계 내에서조차 주체성을 상실하고 필요 이상의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쿨하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모습’이야말로 전형적인 찌질이의 특성일 것이다. 더불어 그들은 종종 무언가에 깊이 심취하는 ‘오타쿠’적 기질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그 대상이 되는 것은 보편적으로 관심을 받는 존재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만약 그 분야에서 그가 높은 성취를 이룩해 낸 경우 그는 단순 찌질이에서 ‘괴짜’로 격상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사실 지금껏 사람들이 생각해 왔던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이성에게 인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내가 굳이 과거 형을 사용한 이유는 그것이 벌써 옛날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현재 찌질이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백치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서 ‘백치미(美)’라고 이름 붙였듯, 사람들은 찌질이에게서 어떠한 아름다움을 찾아 내 그를 ‘찌질미(美)’라 이름 붙였다.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 ‘찌질미’ 내지는 ‘너드미(nerd+美)’를 검색하면 각종 연예인들의 찌질한 모습을 모아 나노 단위로 앓는 글이 넘쳐 난다. 이 글은 그들이 어째서 찌질한 모습에서 매력을 발견하게 된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날 좋아해줘 아무런 조건 없이 니 엄마 아니 아빠보다 더 서울 아니면 뉴욕에서도 어제 막 찾아온 사춘기처럼 내가 아플 땐 더욱 더 나근대는 목소리로 속삭여야 해 뜨거운 말로 내게 믿음을 줘 그래도 내가 싫어진다면 그건 아마 너의 잘못일 거야 날 좋아해줘 월요일 아침에도 내 옆에만 있어줄래 오빠 날 잡아줘 날 감싸 안아줘 니 피부 속으로 날 숨겨주겠니 내가 아플 땐 더욱 더 나근대는 목소리로 속삭여야 해 뜨거운 말로 내게 믿음을 줘 그래도 내가 싫어진다면 그건 아마 너의 잘못일 거야 baby now i really wanna know. maybe now i really wanna know. baby now i really wanna know. maybe now i really wanna know. 내가 아플 땐 더욱 더 나근대는 목소리로 속삭여야 해 뜨거운 말로 내게 믿음을 줘 그래도 내가 싫어진다면 그건 아마 너의 잘못일 거야 날 좋아해줘 아무런 조건 없이 니 엄마 아니 아빠보다 더



검정치마의 노래 ‘좋아해줘’는 찌질함이 어떻게 찌질미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가장 효과적인 예시이다. 전반적인 가사의 내용 속에서 주체는 하나의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날 무조건적으로 좋아해 달라는 맹목적인 관심의 갈구. 이 노래는 ‘날 좋아해줘 아무런 조건 없이 니 엄마 아니 아빠보다 더’라는 다소 파격적인 가사로 시작된다. 주체인 내가 사랑하는 대상인 당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적반하장으로 그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모습은 꽤 신선하다. 이 노래 속에서 주체의 상황은 대상과 서로 사랑하는 애인 관계로 추측될 수 있다. 그리고 아마 이들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연애 초기는 가장 열정적으로 서로를 사랑할 때이면서도 아직 사랑을 확신할 수 없는 단계이기도 하다. 찌질한 주체는 이 단계에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길 두려워하면서도 그가 자신에게 확신할 만한 사랑을 주길 원한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해 달라는 주체의 말은 뒤집어 말하면 자신이 이미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자기가 그를 좋아하는 만큼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은 경우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며 그만큼의 사랑을 애원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래도 내가 싫어진다면 그건 아마 너의 잘못일 거야’라는 가사에서 더욱 명료하게 나타난다. 그는 사랑의 실패를 자신이 아닌 타인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이는 책임을 회피함으로서 자신을 상처로부터 지키려는 자기방어기제의 일종이다. ‘날 좋아하든 말든 내가 널 좋아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식의 깔끔한 방식과는 거리가 먼, 반드시 ‘주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돌려받고 싶다.’는 태도는 관계에 필요 이상으로 매달리면서도 자기가 손해보고 싶진 않아하는 찌질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욕망은 결핍에서 오기에, 나를 사랑한다면 관계에서 기꺼이 ‘을’이 되어 달라 요구하는 그의 모습은 곧 자신이 그 관계 속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나는 뭐랄까 음 아주 오래전부터 너를 음 조.. 조.. 좋아했었다고 늘 지금 말한다면 뭐가 달라질까요 달라질게 없는 맘을 가진 너는 마치 뿌리 깊은 나무 같아서 신이 곱게 빚은 한 송이의 Flower 사라지지 마 달라지지 마 내가 너를 좋아해도 Nobody knows 다른 여잘 봐도 Nobody's like you 용기가 없어서 I'm sorry 더 맘껏 비웃어 그래 나는 너를 사랑하는 찌질이 찌질이 그래 나는 머저리 머저리 난 너한테는 거머리 겉절이 이 세상 너 하나면 돼 Baby I'm only yours I'm only yours Oh no 나나난난나난 결국에 난 난 사랑 앞에선 늘 찌질이 음 음 나는 뭐랄까 아직도 많이 좋아할 것 같아 왜 대체 말을 못할까 기죽은 어린애 같다 음 음 다른 사람 만나지 마 내 가슴 무너지게 그러지 마요 빈틈없는 그대에게 난 무리일까요 텅 빈 맘은 공터인데 머릿속은 터지네 Oh 맘 언제 이렇게 돼버렸나요 내가 너를 좋아해도 Nobody knows 다른 여잘 봐도 Nobody's like you 용기가 없어서 I'm sorry 더 맘껏 비웃어 그래 나는 너를 사랑하는 찌질이 찌질이 그래 나는 머저리 머저리 난 너한테는 거머리 겉절이 이 세상 너 하나면 돼 Baby I'm only yours I'm only yours Oh no 나나난난나난 결국에 난 난 사랑 앞에선 늘 찌질이 유토다 네가 나의 추억이 돼 보고만 있어도 힘이 나네 이 하늘에 빛이 나네 내 맘이 너에게 닿기를 바라 말하지 않아도 Know know know 언제나 내 맘은 너 너 너 아름다운 그대와 걸어가고 싶어 Everybody knows 한가지 말할 게 있어 Listen to my heart 난 네 앞에 서면 떨려 그래 Love you love you love you Like you like you like you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하는 찌질이 찌질이 그래 나는 머저리 머저리 난 너한테는 거머리 겉절이 이 세상 너 하나면 돼 (Everybody says) 눈누난나 너와 나 (My baby) 눈을 감아 뭐 할까 (뽀뽀) 구구까까 Butterfly 이제야 난 나 사랑 앞에선 늘 빛나리



펜타곤의 ‘빛나리’에서도 우리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찌질함을 엿볼 수 있다. 검정치마의 경우와 달리 이 노래 속 주체는 자신의 일방적인 사랑을 대상에게 감추고 있으며 그러한 자신이 ‘찌질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가사 속에서 우리는 주체가 대상을 오래 전부터 좋아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보고만 있어도 힘이’ 난다거나 ‘이 하늘에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의 크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스스로를 찌질이라 정의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그는 ‘용기가 없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신이 곱게 빚은 한 송이의 Flower’,’빈틈없는 그대’로 표현될 만큼 완벽하게 느껴지기에 그는 차마 고백할 용기를 가지지 못한다. 그래도 대상이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그에 크기를 키워 달라 뻔뻔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검정치마의 경우와 달리 펜타곤의 사랑은 예측할 수 없다. 일방적인 사랑이기에 나는 대상의 마음을 알 수 없고, 나의 사랑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것은 대상에 대한 환상일 뿐이다. 대상이 이 환상 속에서 완전해질수록 주체는 상대적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주체인 ‘나’는 그러한 관계 속에서 결국 자신감을 상실하고 찌질하게 용기를 내지 못한다. 재미있는 점은 그러한 관계는 오직 주체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주체는 ‘찌질하기에’ 결코 대상에게 이러한 관계를 암시 조차 못하며 ‘대상이 모르는 곳에서’ 주체는 그와의 관계를 ‘혼자서만’ 확장해 나간다.



Wanna be loved… Don’t wanna be fool wanna be cool wanna be loved 너와의 same love Baby I want it 니가 올리는 모든 사진마다 좋아요 남발하는 처음 보는 저 남자 누구야 아 맞다 나 이제 남자친구 아니지 자연스레 니 번호 눌렀잖아 전화나 카톡하자니 꼭 지는 것 같고 뭐라도 안 하면 날 신경도 안 쓸 것 같어 왜 싫어요 버튼 은 없는데 싫어 저 삼십 몇 명 중 하나가 되는 게 여기도 좋다고 저기도 좋다고 한번만 놀자고 왜 그리 곱냐고 Uh f**k that all stupid b*******s 이젠 내 꺼도 아닌데 왜 뺏기는 것 같은지 하하 넌 나 없이 참 잘 사네 눈꼴 시려우니까 노는 것 좀 살살해 목까지 올라온 저주를 삼키고 오늘도 좋아요를 누르지 shit 넌 남이 되고 오히려 더 좋아 보여 pretty woman Yeah Yeah Yeah Yeah 오 얄밉게도 여전히 넌 좋아 보여 pretty woman Oh pretty woman Don’t wanna be fool wanna be cool wanna be loved 너와의 same love I know it’s over Don’t wanna be fool wanna be cool wanna be loved 너와의 same love Baby I want it 친구 놈이 누른 좋아요로 보이는 니 얼굴은 훨씬 좋아 보여 새 남친과 찍은 사진 속 tag tag 덕분에 추억 속으로 난 backspace 그 세상은 어느새 다들 멈춰있는데 난 왜 여전히 그 시간에 걸쳐있는데 Ha 넌 내 생각을 할까 할까 고민하며 좋아요를 누를까 말까 수십 번을 반복해 너의 마음은 마치 단두대처럼 나를 싹둑 가차없이 잘라냈지만 난 도깨비 감투 몰래 다가가 너의 일상생활을 맨날 보네 그때마다 머릿속은 백팔번뇌 Oh shit 내 생각은 할까 할까 고민하며 좋아요를 누르지 말자 넌 남이 되고 오히려 더 좋아 보여 pretty woman Yeah Yeah Yeah Yeah 오 얄밉게도 여전히 넌 좋아 보여 pretty woman Oh pretty woman Don’t wanna be fool wanna be cool wanna be loved 너와의 same love I know it’s over Don’t wanna be fool wanna be cool wanna be loved 너와의 same love Baby I want it  너 요즘에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 보니 좋아요가 빛나 나 없이 잘 사는 니가 왜 생각났지 찾아온 건 한심만 더 나도 누르고 갈게 니 글 위에 난 요즘 너 없이 이렇게 지내 Know you want it 넌 남이 되고 오히려 더 좋아 보여 pretty woman Yeah Yeah Yeah Yeah 오 얄밉게도 여전히 넌 좋아 보여 pretty woman Oh pretty woman Don’t wanna be fool wanna be cool wanna be loved 너와의 same love I know it’s over Don’t wanna be fool wanna be cool wanna be loved 너와의 same love Baby I want it



이와 비슷한 경우로 방탄소년단의 ‘좋아요’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선 이미 사랑을 끝낸 후에도 미련을 보이는 ‘찌질한’ 전남자친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노래의 가사를 요약하자면 한없이 짧아지는데, 대략 SNS에 새로운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올린 전 여자친구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래가 찌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SNS에 버튼 하나로 피드백을 표시하는 간단한 과정을, 주체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덧대며 상당히 복잡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는 찌질해 보이지 않으려 아무렇지 않게 ‘좋아요’ 버튼을 누르지만 사실 그 속에는 특별한 존재였던 과거와 달리 ‘저 삼십 몇 명 중 하나’로 전락해버린 것이 싫은 솔직한 마음과, 더불어 ‘나 없이 잘 사는 니가 왜 생각났지 찾아온 건 한심만 더’로 대변되는 자조적인 마음이 양립해 있다. 찌질해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주체는 한껏 찌질해진다. 주체는 대상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알지 못하길 바라면서 이중적이게도 알리고 싶어한다. 대상과의 관계가 끝난 것임을 알면서도 매달리고 싶지만, 자존심은 지키고 싶고, 또 이미 그녀에겐 새로운 남자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끝난 이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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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셋의 공통점은 주체가 그와 대상만이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를 구상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그 세계 속에서 현실을 재창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체는 대상을 사랑하고 대개 그 사랑은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다. 주체가 대상에게 사랑을 주는 만큼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기에 그는 ‘찌질하게도’ 자신의 사랑이 보답 받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그 속에서 원하는 미래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이거나, 시작하기 전이거나, 끝난 후라도 그것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단순 연민이 아닌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사랑 앞에서 가장 충실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것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나와 내가 사랑하는 대상만이 존재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기까지 하는 그들의 모습은 꽤 귀엽다. 자신을 그 정도로 사랑하는 이가 미워 보이기는 사실 쉽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찌질이는 누구로 특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사랑 앞에서 찌질한 순간이 있었다. 없었더라도 삶과 사랑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찌질하다는 것은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감정에 최선을 다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했기에 그 사랑 앞에서 찌질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 사랑의 모습을 찌질하지만 아름답다고 말하며, 그의 찌질미를 미(美)라고 바라볼 수 있는 이유이다.






[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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