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모두 실패한 '파수꾼'

영화 '파수꾼' 그리고 계간 영화잡지 '프리즘오브(PRISMOf) 9호'
글 입력 2018.09.0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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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수꾼 (Bleak Night, 2010)

꽤 오랜 시간 만났던 친구와 관계를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야. 스스로가 중요하고, 내 상처가 먼저고, 내가 다치는게 두려우니까. 너도 그게 더 이상 참기 힘들어서 나에 대한 감정이 변했을 거고, 이런 결말이 온거겠지. 우리의 방식은 서로 달랐어.

관계는 한 순간이다.
말 그대로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는 균열을 일으키고, 틈을 만든다. 누구에게나 보호해야 할 자신만의 '무엇'이 있다.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혹은 그 관계를 다시 돌려놓기 위해 주먹을 휘두른다, 말로 타인을 찌른다. 결국 선을 넘는다. 그렇게 관계는 끝이 난다.

영화 <파수꾼>은 가장 찬란한 시절, 미성숙한 소통의 오해로 인해 친구를 잃고, 사랑을 잃고, 끝내는 스스로를 잃은 안타까운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학교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기태와 동윤, 희준은 솔직하지 못해서, 관대하지 못해서,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해서 비극적인 파국을 맞이한다. 세 친구들 중 누구도 아프지 않은 캐릭터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현실의 기태가 될 수도, 동윤이 될 수도, 희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수꾼>이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감정이입하게 된다. 단순하게 중,고등학교 시절(남자든 여자든)을 떠올리는 것뿐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만들었고 또 부숴 온 수많은 '관계'를 회상한다. 기태와 동윤과 희준이 '미성숙한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게 아니다. 우리는 저 시절을 무사히 지나 살아남은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나 지금 당장이라도 타인과의 관계를 망치고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기적인 우리는 여전히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끝끝내 아들의 죽음의 진실에 다가서지 못했던 기태의 아버지처럼 말이다.

우리는 모두 실패한 파수꾼...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였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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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리즘오브

2-1. 프리즘을 통과한 무지개와 같이.

영화를 보기 전에 평점을 찾아보고 후기를 읽어보지만, 영화를 보고나서도 리뷰를 읽어본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영화를 봤는지,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비교를 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영화든 공연이든 책이든 혼자 사색하는 것보다 타인과 생각을 나눌 때 사고가 확장되고 더 많은 깨달음이 뒤따른다.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했을 문제를 풀게 되고 따라서 단순했던 내 경험이 풍부하게 변한다. 이것이 바로 다양한 관점과 시각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건 마치 '프리즘'과 같다.
프리즘; 빛의 분산이나 굴절 등을 일으키기 위해 유리나 수정으로 만들어진 기둥 모양의 광학 장치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분산시키면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이 생긴다. 빛은 7가지 무지개색 띠가 된다. 확장되고 풍부해진다.

'영화'라는 빛은 계간 영화잡지 <프리즘오브>를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고, 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은 독자(관객)에게 전달되며, 그렇게 관객의 영화적 경험이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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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프리즘오브 파수꾼

<프리즘오브> 9호는 영화 <파수꾼>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리즘오브>는 9호를 출판하기까지 1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를 시작으로 '이터널 선샤인', '다크나이트', 'HER' 등의 여러 영화를 살폈다. 나 또한 모두 인상 깊게 봤고 좋아하는 영화들이라 모두 구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프리즘오브>가 9호의 영화로 <파수꾼>을 선택한건 더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영화 <파수꾼>은 2011년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제작 지원비 5천만원으로 제작된 영화다. 이렇게 규모가 작은 독립영화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독립영화계뿐 아니라 한국 영화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잡지에서 <파수꾼>이 가진 독립영화로서의 의미를 알아보는 섹션이 가장 첫 부분을 장식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호는 <파수꾼>이 개봉한 2011년 3월 이후의 한국 독립영화 계보를 살펴보고, <파수꾼>이 한국 독립영화계 내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파수꾼이 어떤 영화인지'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의 촬영기법 및 내러티브를 분석한다. 기태와 동윤, 희준이라는 인물이 영화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각각의 캐릭터의 관점에서 주요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에 대해 탐구하고, 인물 간의 관계를 알아본다. 또한, <파수꾼> 속 주요 공간인 기찻길과 집, 학교에서는 시나리오 형식을 통해 각 공간이 상징하는 바를 살피며, 마지막으로 핸드헬드, 클로즈업 등 영화에서 주로 사용된 촬영기법의 효과를 찾아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바로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과 다각적인 해석이 담긴 '스펙트럼' 섹션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실제 청소년 관객들의 '대담'이 인상적이었는데, 영화 속 주인공들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는구나" 놀라워 하다가도, 마치 나 또한 청소년들에 대해 쉽게 생각하고 쉽게 아는 체 하는 어른인 '척'하는 사람 같아서 불편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파수꾼>을 인상 깊게 봤던 나는 <프리즘오브> 9호를 읽고 영화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 영화적 경험을 확장할 수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프리즘오브> 9호는 <파수꾼>이 사랑받는 이유를 살피고, 인터뷰와 기고글을 통해 독립영화의 역할을 조명하는 등 한국 영화계 자체에서도 매우 의미가 깊은 잡지가 될 것이다. 소위 많은 사람들의 '인생영화'로 꼽히는 <파수꾼>이기에 이번 호 또한 그만큼 소장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프리즘오브> 10호는 <라라랜드>던데, 계간 잡지라니.. 기다림이 길게만 느껴질 것 같다. 어서 만나보고 싶다.





파수꾼
- 프리즘오브(PRISMOf) 9호 -


펴낸곳 : 프리즘오브 편집부
분야 : 잡지 > 예술/대중문화
규격 : 175mm x 250 mm
쪽 수 : 160쪽
발행일 : 2018년 7월 30일
정가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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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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